신의한수일까 도박일까 궁금하다
길고도 외로운 두 번째 대학입시 수험생활이 시작되었다.
결심을 하고 나니 중요한 결정을 내릴 것들이 많았다. 먼저 가장 중요한 재수의 방법을 정해야 했다. 학원에서 공부하느냐, 독학하느냐, 또 학원이라면 어떤 학원을 가느냐 등 선택에 따라 내 입시결과도 달라질 것이다. 또 어느 도시에서 어떤 형태로 공부를 다시 할 것이냐는 것은 가장 중요한 기술적인 질문이 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하게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서울이냐 지방이냐, 종합반이냐 기숙학원이냐 아니면 독학이냐.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성적을 높여야 했던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내가 보고 느끼는 수준을 개화하듯 넓혀야 했다. 물론 환경 탓 남탓을 하는 것은 아니다. 성실하게 공부했지만 '열심히'와 '잘'에 대한 개인적 성찰 그리고 수준이 낮았을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실패를 받아들일 용기는 있었던 것 같다. 실패한 방법을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의식이 강했고 나는 두 번째 대학입시를 만족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가장 기본적인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바로 내 고향에 있는 소위 '동네 재수학원'이다. 나처럼 재수를 결심한 고등학교 동기들 대다수가 간다고 들었다. 내 성에 차지 않았다. 실체는 알 수 없지만 지방의 한계를 벗어나야 했다. 단순히 열심히만 했던 것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실패의 요인이라고 판단했다.
같은 반 짝꿍을 지낸 고등학교 친구 석호와 우연인지 필연인지 함께 재수를 결심했다. 참 기이한 인연이다. 그래서 학원도 함께 탐색했다. 석호도 마침 나와 같은 생각으로 서울 입시학원을 알아보게 되었다. 덕분에 독학, 지방재수학원 옵션은 손쉽게 삭제했다. 다음으로 서울에 있는 재수종합반(재종반)이냐 기숙학원이냐를 비교해 보고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먼저, 재종반을 따져보았다.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서울식 강의가 필요했다. 고3 하반기 사회탐구 인터넷 강의를 처음 경험하면서 탁월한 사교육 강의력에 흥분했었다. 서울에 가면 공부를 잘하는 전국구 학생들이 많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유명 강사들이 포진해 효율적이고 높은 수준의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도 있었다. 지방 출신인 나는 서울에 별다른 연고가 없다. 연고가 있다 하더라도 1년 동안 학원을 다니며 신세를 지기엔 피차 불편할 것 같다. 게다가, 콩나물식의 강의실과 학원 밖 많은 유혹거리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석호나 나는 모교와 가장 유사한 환경을 찾았다. 우리 학교는 야간자율학습을 밤 10시까지 철저하게 시켰기 때문에 자습은 3년간 학교에서 거의 다 했다. 이동을 최소화하며 자습을 하고 싶었다. 따라서 재종반은 어려운 선택지가 될 것 같다.
기숙학원은 어떨까? 이 선택지도 완벽한 대안은 아니었다. 기숙학원에 대한 인식은 당시 지방에서는 가관이었데 대략 '서울에서 은퇴한 나이 많은 선생님들이 많이 온다', '서울에서 강사력이 부족해 퇴출된 사람들이 많이 온다', '기숙학원은 연애하기 딱 좋다', '부모의 손을 떠나므로 위험하다' 등 온갖 부정적인 인식뿐이었고, 좋은 이야기는 그나마 '군대식, 스파르타식 교육'이라는 단어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학원의 기본적인 분위기나 강사력 등에 의구심이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경험자도 거의 없었다.
우리가 하나의 선택을 할 때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하나를 선택하기 어렵다면, 의외로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면 해답이 나올 때가 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원칙 '학교와 비슷한 환경에서 공부하기'를 중심에 두고 다시 고민했다. 그래서 재종반은 일찌감치 선택지에서 제거했고 기숙학원을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무작정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기숙학원'이라고 검색해 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학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경험담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기숙학원이 번성하고 있으니 쉽게 학원 경험담이나 비교 글들을 얻을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기숙학원이 크게 성하지 않았던 터였다. 우리는 각자 시한을 가지고 조사한 뒤 비교해 보기로 했다. 나는 무작정 이름만 보고 서울 근처다 싶으면 홈페이지부터 들어갔다.
몇 개의 유명학원 이름을 발견했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없었다. 사실 학생의 입 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실제생활과 학원의 분위기, 강사력 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학진학률이다. 하지만 학원 시설 사진조차 올려놓지 않은 경우가 거의 대다수였다. 그만큼 당시에는 기숙학원은 인기가 없었다. 되는대로 정보를 긁어모았다.
날짜가 다가왔다. 석호를 만났고 우리는 서로의 정보를 공유했다. 정보가 부실해 다소 미안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석호도 마찬가지였다. 흥미로웠던 것은 똑같이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는데, 석호의 정보가 내 것과는 많이 달랐다. 석호는 사교육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기숙학원 이름들을 적어왔다. 그 기업이 경기도 광주, 남양주, 용인시에서 기숙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들을 포함해 내가 찾은 전국구로 인지도가 있는 학원 몇 개를 추가해 이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아, 석호와 나는 어쩌다 보니 같은 학원을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고등학교 동기이며 짝꿍에서 재수동기까지 되는 인연이 됐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조금은 낯선 곳에서 불안한 마음을 떨쳐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의 정보를 비교분석했다. 가장 학교와 면학분위기가 비슷하면서도 서울권이라는 장점을 가지는 학원을 고르는 것이 우리의 기준이었다. 서울권이라는 장점을 가지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지방에서 흉흉했던 강사들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진실인지를 확인해야 했다. 다음으로는 기숙학원의 생활이 어떠한지 궁금했고, 학원시설이 좋은 지도 알아야 했다. 우리는 그중에 먼저 시설을 확인하기로 했다.
한 기업형 학원에서는, 포토샵을 가지고 열심히 작업했는지 현실감이 부족한 건물 사진 혹은 간단한 도면밖에 없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경기도 소재 기숙학원들은 달랐다. 보정사진들도 있었지만 기숙학원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수많은 사진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바로 우리가 원했던 정보다. 홈페이지에는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일상은 어떤지, 어떤 시설에서 살고 있는지 등이 상세히 사진을 통해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원생 학부모들을 위해 게시판에 축적되고 있었으므로 믿을 수 있는 정보였다.
석호와 나는 참 단순했던 것 같다. 우리는 의심하지 않고 경우의 수를 그 대기업 소속 학원 세 개로 과감하게 줄여버렸다. 다음 질문은, 이들 세 개의 학원 중 어디를 최종 선택 할 것이냐는 것이었다. 조금 더 검색을 하니 이 세 가지 학원들에도 각기 특성이 존재했다. 먼저 광주와 용인은 남녀 학생이 다녔고 남양주는 남학생 전용이었다. 어이쿠. 석호와 나는 이구동성으로 어렵지 않게 남양주를 배제했다. 남고를 졸업했으므로 더 이상 남자만의 공간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철부지 없어 보이지만 진심이었다. 사실 수험생활과 무슨 관련이 있냐 물으면 크게 관련 없다. 이건 남고를 나온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해하리라 생각된다.
철이 없는 건지 나름 분별력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의견충돌 없이 하나를 걸러냈다. 어차피 여학생들이 있는 곳에 가더라도 우리가 남녀 애정의 문제(?)에 빠져 공부를 소홀히 하지만 않으면 되니까. 그러면 성격이 비슷한 두 개의 선택권, 광주와 용인이 남았다. 어디를 가야 할까. 다시 원점에서 고민을 해보기로 했다.
먼저 광주 학원에 들어가 보았다. 생활 일거수일투족을 부모님들을 위해서 사진으로 올려놨다. 덕분에 나는 학원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왜곡 없이 예측해 볼 수 있었다. 솔직히, 인간적인 곳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스파르타다, 뭐다, 이런 비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곳보다는 말 그대로 각박하지만 인간이 살만한 곳을 나름 원했던 것 같다. 기숙학원이 극도로 빡빡하다는 것 이외에는 딱히 이렇다 할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기에 거부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반면 용인 소재 학원은 별다른 사진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인생의 모험을 걸만한 신뢰가 빨리 형성된 것 같다.
한편 학원 홈페이지에 기재된 강사 소개는 보통 형식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던가.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을 보니 수업의 질을 떠 나서 그 분위기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어서 학원 선정에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대부분 젊은 선생님들께서 열심히 수업을 해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우리는 또 다른 합격점을 부여했다.
마지막으로 대단히 놀랬던 것은 학원에 '이벤트'가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단체 체육복을 입고 층고가 높고 넓은 건물 중앙홀에 그랜드 피아노 주변에 둘러싸고 즐거운 얼굴로 피아노 배틀을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모순적이기도 하다. 수험생활을 위해 간 학원에서 이런 이벤트라니? 하지만 내게는 무언가 진실되게 보였다. 학생들의 얼굴은 보니 빡빡하지만 최소한 인간적으로는 살 수 있겠다 싶었다. 웃고 있는 학생들 모습이 마냥 놀고 있어서라기보다는 뭔가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나중에 직접 겪어봐서 그 의미를 알게 됐는데, 할 때 열심히 하고 놀 때 제대로 놀 수 있는 시스템 덕분에 저런 가식 없는 그리고 순수한 미소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입구를 들어가 양옆으로 시원스럽게 뻗어 있는 높은 층고가 있는 2층까지 뻗어있는 게단들과 탁 트인 로비가 인상적이었다. 기숙학원하면 골방 같은 교실에서 다닥다닥 책상에 앉아 그저 적막하게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인터넷 강의처럼 마이크를 들고 강사들이 수업을 하는 모습과 시원시원한 교실 그리고 뻥 뚫린 로비의 모습이 내가 생각했던 처참한 재수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였다. 삐까번쩍하면서도 마치 어느 호화청사에 온 듯한 로비를 보고 시설하나는 좋겠구나 싶었다.
마지막까지 용인과 광주를 비교하다 또 다른 결정적인 기준 하나를 얻었다. 바로 직영과 협력이다. 사교육 대기업이 직영하는 광주 학원과 이름을 빌려주고 운영에 일부 협력하는 용인 학원이었다. 용인은 이 기업 인터넷 일타강사가 원장으로 있어 솔깃했다. 하지만 여러 정황상 직영인 광주를 택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우리는 광주학원으로 최종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