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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엠지MZ대리 Dec 31. 2023

두번째 퇴사 그리고 3년의 방황

2023년 결산 2024 다짐




1. 두번째 퇴사 

   

솔직히 이토록 빠르게 이직을 할 줄 몰랐다. 두번째 회사였던 K(aka 신의직장)에서 부서배치 1개월만에 울면서 운전했던 퇴근 길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우느라 길을 몇번 잘못들었는지 모른다. 고작 1년 반. '잠시'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그곳을 왜 거쳐갔는지 종종 자문할 수 밖에 없었다. 의미가 필요했고 스스로 납득시켜야했다. 동시에 주변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 있는 물음표도 지워야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첫번째 회사를 떠났을 때와 처지가 비슷한 듯 다른데, 첫 직장을 떠날 때는 '떠남'에 대한 의문을 받지 않았지만 정해지지 않은 '다음 목적지'에 대한 물음표를 열심히 지워야했다. 반면 두번째 회사를 떠날 때는 '떠남' 자체에 대한 물음표를 지워야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는 대답을 찾느라 정작 진짜 내 답을 찾지 못하기도 한다. 전지전능한 창조자의 계획이 그러하듯 내가 남긴 발자욱에 대한 의미는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도 두번째 퇴사에 대한 (그러니까 남들이 보기에 부러움뿐인 직장을 빠르게 떠난 것에 대한) 의미를 완전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퇴사 후 8개월, 나름의 의미를 찾았지만 '진짜' 이유인지 8개월차에서 밝힐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이유인지는 알 길이 없다.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중요한 사실은 '후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쉬움과 그리움은 남았지만 말이다.





2. 세 번째 회사


이직한 사람들의 의무랄까, 부담감이랄까 그런 것들이 있다. 나의 퇴사가 올바른 결정이었음을 입증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 그중 하나다. 특히 퇴사와 이직이 여러 사람에게 의문을 남겼을 땐 더욱 그렇다. '잘한 선택이야'라고 거듭 스스로에게 말하는 주문인듯 진심인듯 헷갈리는 마음의 흐름들. 그런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머지 않아 깨닫게 된다. 잘한 선택이었다고. 아마 이직하지 않고 머물렀어도 내 대답은 같았을 거다. 잘한 선택이었다고. 인생에는 이분법적인 정답보단 내가 의미를 만들고 정의를 내려 마침내 옳은 대답으로 만드는 과정적인 해답만이 있는 경우가 있다. 이직의 문제에 있어서도 예외없이 정답 대신 해답만 있을 뿐이다.

    퇴사/이직 한다고 말했을 때 대부분의 지인들은 놀랐고, 부모님은 (아마도) 걱정하셨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중에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내 모든 글의 열렬한 애독자이며 누구보다 내 행복을 바라는 사람, 엄마에게 이직하고 머지 않아 이런 말을 했다. "매일 매일 하루를 살아가는 내 삶의 모양이 마음에 들어. 그래서 이직을 잘한 것 같아." 엄마를 안심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내뱉은 말은 진심이었다.





3. 하루의 모양


 매일 새벽 5시에 기상해 6시면 회사에 도착했다.13층에 있는 사무실에 올라가는 대신 3층에 있는 헬스장에 갔고, 운동하고 샤워하면 7시쯤 되었다. 7시면 서울의 여러 카페가 오픈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언제나 첫번째 손님이 되었다. 커다란 아아(한겨울에도 운동 직후엔 언제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다)를 한잔 주문해 놓고 자리를 잡아도 아직 서울은 잠들어있다. 그리고 하나 둘 부지런한 직장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더욱 부지런한 나는 빠르게 나만의 세계로 들어가 버린다. 출근 전 커피를 사는 직장인들이 만들어낸 백색 소음 속에서 한시간에서 두시간 남짓, 나는 내면으로 침잠한다. 책을 읽고 사색을 하고 글을 쓴다. 8시니, 9시니 딱히 출근 시간을 맞춰야 하는 회사는 아닌지라 8시 20분이나 9시 20분 같이 애매한 시간에 출근을 한다. 엘레베이터 혼잡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대부분 이 시간에도 사무실엔 사람이 거의 없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노트북의 전원버튼을 눌러두고 카페테리아에 가서 커피를 내리고 아침밥을 챙긴다. 바로 업무를 시작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게 느긋하게 업무를 시작하면 하나 둘,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메일 교신, 온/오프라인 회의, 데이터 분석과 자료 작성(나의 주요 업무)을 정신없이 하다보면 업무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이따금씩 점심시간엔 회사 사람들이나 근처 직장에 있는 지인들을 만나 산책을 하기도 한다.

    퇴근 후엔 꽉 막힌 서울을 빠져나오는 데만 한 시간 걸리는 날이 부지기수다. 이직 후에는 줄곧 자차 통근을 하고 있다. 운전이 힘들 때도 있지만 나는 그러한 '갇힌' 시간을 좋아한다. 시간과 공간이 활짝 열려 있을 때, 선택지가 많은 우리는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고 끝없이 뒹굴며 늘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갇힌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제한적이다. 책 읽기, 멍때리기, 생각하기, 음악듣기 같은 정적인 것들이 그러하다. 우리는 정적인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동적인 것들에게 쉽게 굴복한다. 나만의 시간이 매일, 꼬박꼬박, 충분히 필요한 나에게 이러한 갇힌 시간은 축복이다. 비록 몸은 조금 고될 지라도 강제로 부여된 이 갇힌 시간 속에서 나는 하루 동안 어질러진 내면의 방을 조금 치워둔다. 먼지를 털고 큼직한 짐들을 정리한다.

    나는 이렇게 정리되는 나의 하루가 제법, 아니 꽤 맘에 든다. 아직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지 않은 새벽에 갖는 나만의 시간, 회사에서 충분히 노력하고 애쓰는 내 모습, 주위에 충분히 본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조직,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자만 느낄 수 있는 퇴근 후의 노곤함 같은 것들이 모두 맘에 든다.





4. '서른'에 머물렀(었)다


누군가 나에게 몇 살이냐고 물으면 나는 함구한다. 말하기 싫어서도, 기분이 상해서도 아니다. 정말로 내 나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짓말 같겠지만 사실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몇 살인지 알지 못한다. 나는 내가 92년생이라는 사실만 기억한다.


나는 언제 서른이었을까?


대한민국 나이 체계가 바뀌기 전이었던 21년도? 나이 체계가 바뀌어 만 나이로 서른이 되었던 22년도? 한 가지 기록했던 점은 21년도가 될 때 이 블로그에 <2020 결산 2021 다짐>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고 그 마지막 문장이 "저, 서른 됩니다!" 였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때 서른됨을 선포하긴 했었다.

   내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나는 21년도이든 22년도이든 아무튼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쭉 서른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21년도, 22년도, 그리고 23년도까지 놀랍도록 매년 회사를 바꿔왔다. 내가 바로 말로만 듣던 '이직세대 MZ세대'의 표상인걸까. 이 지점에서 현명한 글쟁이라면 하지 않을 불필요한 문장이자 참을 수 없는 변명 욕구를 덧붙이자면, 나는 첫 직장을 나름대로 6년을 다녔다. 내가 원래 이렇게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21년도부터 23년도까지 쉽지 않은 3년이었던 건 맞는 것 같다.잦은 이직은 능력이 좋아서도 아니었고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무엇에 쫓기듯 불안했고 욕구불만족처럼 더 갈망했다. 그 어느 때보다 안정감을 원했고 그럴수록 더욱 불안을 느꼈다.





5. 다시 시작할 용기


콕 집어 말할 수 있는 계기나 사건은 아니었다. 추석 즈음으로 기억한다. 그때 관계와 물질,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나의 욕망을 빨랫감 뒤집듯 발라당 뒤집는 연관성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소득, 럭셔리카, 집, 명품과 같은 물질적인 욕망부터 명예, 인기, 트로피 파트너와 같은 관계적인 욕망까지 나의 민낯이 케케묵은 핸드백 속에 보이지 않던 먼지 털듯 탈탈 털려나갔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음을 고백한다. 처음엔 원인을 알지 못했고 원인을 알았을 때엔 그것을 바로 볼 자신이 없었다. 그저 이 욕망을 그대로 붙들고 싶었다. 더 손쉬운 선택이었으니까.

   하지만 삼십, 그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햇수를 살아온 동안 내가 자주 사용했던 방법을 다시 썼다. 바로 선인들의 지혜를 구하는 일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책 읽고 사색하기, 기도하여 절대자의 지혜를 구하기. 이번에 도움을 받은 책은 애덤 스미스의 <내 안에서 나를 움직이는 것들>과 Jeannie Suk의 <A Light Inside> 그리고 어김없이 성경이다. 특별히 올해는 <복음서>와 <갈라디아서>의 말씀이 많이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가장 중요한 점은 삶은 과정이라는 당연한 사실이다. 성과로 나를 정의하지 않는 연습, 현상 그 자체 보다 현상을 야기한 과거와 현상이 가져올 미래의 연장선상에서 관조하는 안목 같은 것들을 배웠다. 무엇보다 이십 대에 끝났다고 생각한, 혹은 끝냈어야 한다고 생각한 '실패하고 실수하는 나'를 용서하는 연습을 했다. 이십 대의 실패는 용납 가능하다. 강요받은 적은 없었지만, 어쩌면 나는 스스로 '삼십대'와 '실패' 혹은 '실수'를 같은 범주에 넣지 않았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 삶은 과정이다. 이십대에도 실수하고 삼십대에도 실수한다. 단지 배우는 영역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삼십대의 실수는 이십대 보다 좀 더 두려웠다. 다시 시작하는 데에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실수의 무안함과 실패의 좌절감,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의 무게를 알기 때문에. 몰라서 무식하게 용감했던 이십대와 달리, 알지만 그래서 더욱 굳은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배우게 되었다. 배워야 함을 알게 되었다.





6. 그리고 2024년


실패해도 모험을 시도하는 건 나 자신에 대해 계속 배우는 것


나를 더 배우고 싶다. '나'라는 우주는 알수록 신비롭고 흥미로운 존재다. 그리고 다채롭고 아름답다.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들이다. 고급스러움, 우아함, 기품있는, 환한 미소, 훤칠한, 사랑이 가득한, 따뜻한, 도시적인, 지적인, 예술적인, 포용력있는, 예의바름. 이런 이미지를 더 많이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그리고 사랑을 더 많이 실천하고 싶다. 나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겠다고 알려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나를 통해 사랑을 깨닫고 행복을 느끼고 더 나아가 삶이 구원되는 사람들이 생겨나길 소망한다. 구원이라니. 단어의 무게에 짓눌려 두 글자를 썼다 지웠다 반복한다. 하지만 마침내 용기내어 두 글자를 적는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베풀기 위해선 먼저 채워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광야에서 훈련시킨 이유가 분명히 있다. 나는 과정의 존재를 배웠고, 과정 속에서 경험과 인연을 만났다. 사랑이 아니라 사랑할 기회를, 용기가 아니라 용기낼 기회를, 용서가 아니라 용서할 기회를 알게 되었다. 또한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사랑을 경험했다. 쉽지 않았던 3년이었지만, 내 안에는 3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랑과 경험 그리고 믿음이 가득하다. 2024년에는 이것들을 베풀고 실천할 수 있는 첫 단추의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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