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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엠지MZ대리 Oct 07. 2024

#17 대체로 상냥하지 못한 남자

24. 4. 29



모두에게 대체로 상냥한 나와 달리 남자친구는 대체로 무뚝뚝하며 나에게만 상냥하다. 처음엔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으나 점차 깨닫게 된 서사가 있다.


함께 하는 시간을 쌓을수록 상대가 온전히 내 것이었으면 하는 갈망이 어쩔 수 없이 쌓였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그의 언행을 살필 수 밖에 없었는데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이다. 우선 내가 주위에 있을 때와 없을 때 그의 표정이 다르다. 무표정일 때의 그는, 딱히 특별하게 차갑거나 지나치게 냉정해 보이지는 않지만 다가가기 쉬운 인상을 주진 못한다. 그러나 내가 나타나면, 정확히는 내가 주위에 있다는 것이 감지되면, 남자친구의 표정은 기지개를 펴는 아이처럼 일 순간에 활짝 펴진다. 때로는 양 볼이 아프지 않은가 궁금할 정도로 활짝 웃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진작 인식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최근 깨닫게 된 부분은 목소리다. 나에게 말을 걸 때와 다른 사람에게 대답할 때의 목소리가 다르다. 더 정확히는 목소리의 높낮이와 성량이 다르다. 예를 들면 식당에서 결제를 할 때 나에게 말하던 자상한 목소리는 삽시간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무미건조해져 점원에게 돌아간다. 만약 연애 중이었다면 어쩌면 나는 이 사실이 조금 불편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사실이 썩 마음에 들었는데 나에게만 상냥하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나를 향한 애정이 타인과 구별되어 있다는 점이 좋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엔 우리의 결혼반지가 완성되어 찾으러 갔다. 나의 욕망이 투영되어 가드링이 무려 2개나 추가된 볼드한 반지는 에뜨왈 디자인으로, 별똥별에서 영감을 받아 다지인된 반지라고 한다. 새롭게 알게된 사실인데 이 디자인이 다소 여성스러운 인상을 주기 때문에 예비 신랑들은 다른 디자인으로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했다. 직원분은 “신랑님이 신부님을 잘 따라와 주셨나 봐요”라고 말했다. 전혀 눈치채고 있지 못했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오빠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반지를 출고하고 커피를 마시고 예약해둔 오마카세 가게에 가서 점심을 먹고 도산공원 일대를 산책하며 젤라또, 벨기에 와플, 소금빵을 하나씩 섭렵했다. 서재에 둘 의자를 보러 다니고, 안마의자 매장도 들러 체험했다. 한낮 기온은 30도 가까이 치솟았다. 갑작스런 더위 때문이었을까.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다녔기 때문일까. 나는 갑작스럽게 피로를 느껴 귀가 후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낮잠 자고 일어났지만 컨디션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속이 울렁거렸고, 기운이 없었다. 저기압이 남자친구에게 표출될까 나는 침실로 피했다. 남자친구는 레몬에이드가 먹고 싶다는 말에 배달을 주문하고, 아침에 청소 좀 해야겠다는 나의 말을 기억하곤 “집안의 먼지를 없애볼까!” 라며 야심차게 말하고 청소를 시작했다.


돌아보니 주말 내내 남자친구의 배려와 애정이 곳곳에 넘쳐났다. 내가 좋아하는 과일, 먹고 싶다고 말했던 디저트들, 청소를 해야겠다는 말까지 나의 입 밖으로 떨어지는 말들을 귀 담아 듣고 기억했다.



다정함이란 무엇일까. 상냥한 말, 작은 선물도 다정함이다. 하지만 나는 다정함이란 결국 상대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는 결혼식에서 아들 팀을 위해 축사를 하는 아버지가 “무엇보다 다정한 사람과 결혼하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은 어째서인지 내 마음속에 잔잔하게 표류하고 있었다. 한없이 다정한 남자친구를 만나 결혼까지 약속한 지금, 나는 영화 속 아버지의 말을 기억해낸다.



“Marry someone kind. And this is a kind man.”
다정한 사람과 결혼해라. 그 다정한 사람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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