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11
글을 다시 쓰겠다고 다짐했고, 이따금씩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얹어보지만 좀처럼 활자가 터져 나오지 않는 요즘이다. 주말에 읽은 임경선 작가님의 책에서 그녀는 ‘행복하면 글빨이 후져진다’고 말했는데, 이상한 포인트지만 묘한 공감대를 느꼈다. (변명해보자면) 나 역시 최근의 ‘후져진’ 글빨에 대한 이유는 분명 행복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평온한 삶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긴 호흡으로 글을 열심히 썼던 마지막 기억은 작년 결혼준비를 하는 8개월 간의 기록이었다. 당시 나는 행복하지 않았느냐 하면, 아니다. 무척 행복했다. 다만 평온하진 못했다. 결혼 준비는 많은 조사와 의사결정을 요구했고, 회사 생활은 한마디로 ‘카오스’였다. 그러한 시간 속에서 나는 어떻게든 균형을 잡으려 발버둥 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바로 글쓰기였다.
가정을 이룬다는 변화와 직장에서의 커다란 변곡점을 지나온 이후로 내 삶은 안정을 찾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 지점부터 글쓰기가 딱 멈췄다. 평온한 삶을 그토록 원했고 도달했지만, 동시에 글을 쓰는 만족감을 찾지 못해 이 균형을 깨뜨려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마주한 것이다. 후져진 글빨을 살릴 방법이 평온함을 깨뜨리는 것이라니. 정말 방법이 이것 뿐인 것일까.
사실 다른 방법이 한 가지 있긴 한데 그건 바로 다른 글자를 통한 자극이다. 임경선 작가님의 ‘행복하면 글빨이 후져진다’는 문장을 보고 시작된 사색이 이 글로 이어졌듯, 다른 글들을 접하며 컨텍스트 사이에서 찾아오는 사색의 시점을 통해 나는 다시 할 말을 찾아낼 수 있다.
단지 요즘 내가 읽는 책들이 주로 육아와 출산에 관련된 책이라는 점에서 사색 보다는 정보 습득이 주 목적이 되었기에, 글을 쓰기 위한 자극이라는 목적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나는 쓰는 인간이지만 (사실 생계형 작가도 아니고) 인생의 특정 시점에 마땅히 집중해야 할 역할 혹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의 나는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 그러니까 사색보다는 정보 습득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좌절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믿어본다.
동시에 짧은 단상이지만 뱃속의 아가에 관한 파편적 문장들이 종종 떠오른다. 지난 주말에는 이사를 했는데 새로운 집과 단지를 돌아다니는 내내 여러 말들을 뱉었고 그 말들이 대부분은 태어날 아이에 관한 것이었다.
“나중에 여기에 기저귀 갈이대를 놓아야 해.”
“아기 침대는 당분간 안방에 있다가 나중에 아기방으로 옮길거야.”
“이 자리는 ‘맘마존’이라 비워둬야 해.”
“나중에는 유모차 끌고 단지 산책만 해도 지루하지 않겠어.”
"유치원은 여기로 다녀야 할텐데 출근 길에 등원 시키고 가면 루트가 딱 맞겠다.”
와 같은 말들.
반면 남편은 딱 한마디를 남겼을 뿐인데 그게 “쭌이어의 첫 이사”였다.
쓰고 나서 문득 깨닫는 것인데 어쩌면 나는 평온해서 글빨이 후져진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쏟아내는 말들을 잘 들어주는 훌륭한 청자인 남편이 있기 때문에 텍스트로 남길 문장이 남아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