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임신 후기 일기

25.08.18

by 글쓰는 엠지MZ대리


32주차, 9개월. 임신 후기에 접어들었다. 맙소사, 9개월이라니… 초음파 상에 확인되는 아가의 크기는 이미 33~34주차 크기이고, 몸무게는 무려 2.2kg에 달한다. 우량아 당첨인걸까? (이 시기 어플이 알려주는 평균 아기의 무게는 1.8kg 이다.)



임신 후기에 들어서면 할 일이 많아진다. 우선 산부인과 방문 주기가 4주에서 2주로 짧아진다. 막달에는 1주일 간격으로 더욱 짧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출산용품 준비가 시작된다. 용품 준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분만을 하고 조리원 생활을 하는 2~3주 기간 동안 써야할 ‘출산 가방 싸기’와 출산 직후 본격적인 육아시작을 위한 육아 용품 준비가 있다. 거기에 더해 나는 최근 급격히 커지고 무거워진 배 때문에 호흡 곤란, 등 허리 통증, 수면 부족 등의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다소 급하게 집 근처에 산모를 위한 요가와 마사지샵을 예약해 다니고 있다. 아직 출산휴가에 들어가지도 않아 출퇴근도 하고 있기에 꽤나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주말마다 베이비페어를 방문하거나, 육아용품 전문 가게를 다니며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고 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식기세척기며 세탁조이며 성인 두 명이라면 무심하게 살았을 법한 집안의 ‘안본 눈 구역’을 청소하고 있다. 틈틈이 공부도 해야 한다. 용품 준비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튜브를 찾아보고 인터넷 검색도 해보며 필요 목록을 만들고 있다. 특히 카시트 같은 것은 무턱대고 구매할 수가 없어서 더 깊은 공부를 요하는데, 다행히도 이 영역은 남편이 전담해서 조사하고 있다. 요즘엔 산욕기(출산 후 신체 회복 기간)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아보고 있다. 사실 더욱 중요한 건 갓 태어난 신생아를 어떻게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가 일텐데, 이 부분은 과감하게(?) 산후조리원에서 배워보는 것으로 하고 우선은 다른 일들을 준비 중이다.



생각해보면 임신 초기에는 여성으로서 임신을 한다는 것에 대한 억울함이 있었다. 임신테스트기로 두 줄을 확인한 순간부터 산부인과에 가기 위한 시간을 할애하고,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고 동료들은 축하를 해주지만 사실은 (나도 역시 같은 마음으로) 업무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되는 불편한 상황을 감내하고, 열 달 동안 각종 임신 증상과 함께 출퇴근을 강행하며 일정 기간의 출산 휴가 (및 육아 휴직) 후 복귀하지만 워킹맘으로써 하루하루 전쟁같이 살아갈 시간들을 생각하니 아득해졌던 것이다. 특히 임신초기에는 산부인과에 방문할 때마다 뭐 그렇게 다양한 주사를 맞는 건지… 어깨며 엉덩이며 성한 곳이 없었다. 하루는 이런 억울함이 올라와 괜히 남편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 내 기준 임신 기간 열 달을 통틀어 가장 힘든 증상이었던 입덧 시기에는 정말… 이 울렁거림을 잠시라도 멈출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만큼 힘들었다. 왜 이 모든 것을 여성만 오롯이 감내해야 한단 말인가!



이러한 억울함이 빨랫감 뒤집듯 발라당 뒤집히진 않았고 다만 남편의 축적된 행동이 어느 순간 내 인식을 바꿔 놓았다. 남편은 나보다 더한 활자중독자임을 여러 글에서 밝힌 바 있는데, 이 기질은 임신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우리는 출산의 바이블과 같은 커다란 대백과 서적을 구매하였는데 남편은 매주 식탁에 앉아 이 책을 정독(!)하며 산모인 나와 뱃속 아이의 상태에 대하여 공부했다. 뿐만 아니라 틈틈이 유튜브로 ‘임신OO주’, ‘입덧’ 등 나의 증상을 검색해 보곤 하는데 나는 이 사실을 거실 TV 유튜브 검색 기록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남편의 스마트폰 갤러리에는 각종 정보에 대한 사진이 기록처럼 남아있곤 하는데, 입덧에 좋은 음식이나 임산부에게 필요한 영양소 같은 것들을 틈틈이 사진 찍어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 뿐만 아니라 남편은 그 흔한 실언 한번 한 적이 없는데, 예를 들면 나의 증상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말 같은 것들을 일절 하지 않았다. 도리어 “임신 기간을 어떻게 생각해?”라는 나의 말에 “너무 길고 고통스러운 것 같아. 절반으로 줄여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해버려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임신기간을 어떻게 절반으로 줄인단 말인가! 그만큼 나를 걱정해주는 것이리라.


가장 중요한 점은 (뱃속의 아이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언제나 아이보다도 나를 더 우선해준다는 점일 것이다. 콕 집어 어떤 사건이라고 말할 수 없이,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나의 작은 힘듦에도 가볍게 넘기는 법 한번 없이 진지하게 들어주고 몸을 먼저 생각하도록 격려해준다. 이러한 행동들이 축적되니 나 혼자만 감내하고 희생하는 임신이 아니라 함께하는 임신생활이라는 생각이 들어 억울함이 사라졌다.



언젠가는 이런 완벽한 남편을 얻었다는 기적 같은 사실과 훌륭한 아들을 길러 아쉬움 없이 나에게 보내준 시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올라와 퇴근 길에 시어머니께 애교 섞인 전화를 한 적도 있다. 9개월 차의 임신기는 육체적 힘듦이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무나 행복한 임산부야!”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ps. 그저 뭐라도 써보고 싶어서 지난 임신 기간의 소회 같은 것을 적은 것인데, 쓰고 나니 이런 글을 누가 좋아할까 싶다. 단순한 개인 기록용 정도. 역시 안정되면 글빨이 후져지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