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12
어제는 막달 검사를 다녀왔다. 배가 많이 무거워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미 중기부터 매일같이 놀라던 것이라 그러려니 했었는데, 아이가 무려 3.2kg이라고 한다. 그것도 35주차에..! 놀란 내가 “선생님 저 괜찮은 건가요?” 그러니까 해석하자면 “저 자연분만 할 수 있는 거에요?”라고 물었는데, 의사 선생님은 언제나 그렇듯 차분하게 그러나 T적인 미소로 말했다. “머리가 큰 경우는 너무 흔하고, 몸통이 크면 어려울 수 있는데 이 아가 같은 경우에는 특이하게 다리가 길어서… 다리가 길어서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건 괜찮아요. 지켜보긴 해야겠지만.” 지난 번 검사 까지만 해도 다리가 특별하게 길지 않았는데 이번 검진에선 무려 다리가 38주차로 측정되었다. 나만 해도 짧은 통허리에 팔다리가 쑥쑥 길고, 남편도 팔다리가 긴 편인데 역시 유전자는 못 속이는 걸까. 내심 신기하다. 그리고 약간의 안도감이 생긴다. 그동안 머리만 커서 걱정을 했는데 말이다.
비록 추정치이긴해도 아이 무게가 3.2kg이나 된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도 가히 놀랍다. 내 배에 3.2kg의 생명체가 있다는 것, 그 무게도 새삼 크게 다가오고 ‘정말’ 사람이 들어있구나 하는 생경한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최근에는 출산휴가를 앞두고 다시 업무가 굉장히 바빠져서 매일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 쓰러지기 일쑤였는데 어느 날은 문득 뱃속의 아가에게 태담까진 아니어도 말을 걸지 않은지 꽤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초가 된 몸으로 소파에 벌러덩 누워있다가 정신없이 발길질을 해대는 아가에게 말했다. “엄마가 안 놀아줘서 혼자 노는거야?” 그 순간 이상한 감정이 들며 코끝이 찡했다. 나는 너를 매일 느끼는데, 매일 최선을 다해 사랑을 주진 않은 것 같아서. 그날 이후로는 조금이라도 말을 걸어주고 더 쓰다듬어주려 노력하고 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출산휴가도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고 (36주까지 일한 내 자신 칭찬한다!) ‘막달’ 검사를 했다는 것도 그렇고 산모수첩에 ‘진통 시 대처와 분만 안내문’이 적힌 종이가 붙은 것도 그렇고 지난 주말에 남편과 함께 출산 가방을 쌌다는 사실과 이번주에는 본격적인 아기 빨래를 시작했다는 사실들이 모두 그렇다. 아직까지 큰 이슈없이 제 시간에 자라주는 아이에게 참 고마운데 덕분에 남편과 충분한 시간도 보내고 출산할 아이를 맞이할 준비도 할 수 있었다. 역시 우리 아가는 모범생이 분명하다.
이러한 주변의 변화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변화도 크다. 30주까지도 거의 붓지 않았던 몸이라 마사지 선생님도 붓기가 없다고 감탄하셨는데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이 접히지 않을 정도로 붓는다. 무의식 중에 손을 움켜 쥐려고 하면 “아야!”하고 소리가 나와 아침에는 조심해야 한다. 집안을 걸을 때도 발바닥이 아파서 뒤뚱뒤뚱 거린다. 푹신한 슬리퍼를 사야겠다고 매일 생각하지만 아직 사진 않았다. 어제 저녁만 해도 5시에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고 오늘 아침까지 물 말고는 먹은 것이 없는데도 얼굴이며 손이며 발은 간밤에 라면에 떡볶이를 먹은 것처럼 부었다. 다리에 쥐도 자주 난다. 잠결에 몸에 힘을 주면 다리에 쥐가 나는데 갈수록 강도가 세진다. 며칠 전에는 정말이지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세게 쥐가 나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진통이 온다면 이런 느낌일까’하고 생각했다. 물론 통증의 레벨은 훨씬 극강하겠지만, 순간적으로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호흡이고 뭐고 다 안중에 없어지는 그런 상태…니까 조금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 다음의 변화는 역시 배이다. 정확히는 배의 크기와 무게겠다. 아직 30일은 더 가야하고 그 변화는 지금보다 더 크겠지만, 최근의 변화도 못지않게 크다. 우선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외출을 하면 일반인의 걸음 속도와 내 걸음 속도가 얼마나 다른지 현저하게 깨닫는다. 컨디션이 조금만 좋지 않아도 배가 당기고 방광이 눌리거나 치골이 아파서 빠른 걸음을 할 수가 없다. 땐 막달까지 회사 다니는 게 힘든 일인 것 같다가도 그럼에도 출근할 직장이 있어 몸을 더 움직이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곤 한다. (물론 건강이슈가 있는 산모라면 안정이 우선이겠지만 나는 아니니까.) 회사 사람들도 매일 같이 내 배를 보고 놀라곤 하는데, 출산이 언제냐 성별이 나왔냐 이런 질문은 뭐 수십번 대답을 했고 사실 알려줘도 얼마 있다가 또 물어본다. 그래서 이제는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는 것이 민망해서라도 진짜 출산휴가를 들어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이것도 일주일 남았다.
이런 모든 변화들 앞에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역시 3인 가족이 되기 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아이의 방으로 꾸미고 있는 작은 방을 오며가며 괜히 바라본다. 이곳에 다른 가족 구성원이 들어온다니. 또 한편으로는 남편과 단 둘이 보내는 한달 여의 시간, 특히 주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 애틋하고 잘 보내고 싶어진다. 말마따나 이제는 정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변화가 우리 삶에 들어오는 것이니까. 얼마 전 점심을 먹고 동료들에게 한 말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기한이 없는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잖아요. 수능도 끝이 있고, 프로젝트도 끝이 있고, 모든 건 끝이 있었는데 이건 기한이 없는 프로젝트가 시작된 거니까. 그게 무슨 느낌일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정말이지 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