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29
38주 0일. 충분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빠르지도 않게 쭌이어가 세상에 태어났다. 전날 밤, 왠지 모르게 뱃속의 아기가 내려왔다는 직감을 했지만 애써 부정했다. 나는 이제서야 겨우 출산휴가를 시작했고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었으니까. 그러나 새벽 4시 반쯤, 뭔가 쪼르르 흐르는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깼고 이내 튀어오르는 용수철처럼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달려가는 중에 물풍선 터지듯 양수가 터졌다. 평소에 내가 쥐가 나서 큰 소리를 내도 잠에서 잘 깨지 못하던 남편이었는데, 이번에 남편이 기상하기까지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부모의 본능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들이었다.
분만 병원에 도착하는 동안 양수는 4번 정도 더 터져 흘렀다. 속옷을 두 번이나 갈아입고, 기저귀 팬티 밖으로 양수가 줄줄 흐를 만큼 엄청난 양이었다. 정기검진 때마다 양수가 많은 편이고 그래서 아기 태동이 활발한 것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내 뱃속에 정말 많은 물이 들어있었다는 걸 실감했다. 병원에 도착함과 동시에 수축 검사를 했지만 미미해서 촉진제를 투여했다. 촉진제 투여 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진통 주기는 5분에서 2분으로 줄어들었다. 출산교실에서 익혀둔 호흡법을 열심히 따라 하려고 했던 초반과 달리 2분이라는 주기는 호흡법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게 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체력이 떨어져 그저 1분의 진통이 지나고 다시 1분의 휴식기 동안 최대한 체력을 보전하기 위해 눈을 감고 쉴 수 밖에 없었다. 잘 참아내는 산모가 되고 싶어서 꽤나 인내를 한 후에 무통 요청을 했지만 자궁문이 2.5센티 밖에 열리지 않았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진통 주기가 좀만 길어도 참아볼텐데 2분 주기는 너무 짧았다. 진행이 빨랐던 것이다.
다행히 경험치가 많아 보이는 간호사 선생님의 판단으로 진행이 빠르기 때문에 자궁문이 4센티가 되지 않았지만 무통을 투여해주겠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 순간 그녀가 얼마나 천사같아 보이던지.. 하지만 무통 천국은 나에게 없었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무통 주사를 맞고 곧바로 뜨끈한 것이 하반신에 느껴지며 감각이 무뎌진다고 했는데.. 나는 고통이 100에서 70정도로 약간 경감된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여전히 아팠다. 나중에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된 것인데 무통에도 강도가 있어서 아마 좀 더 약을 투여했으면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70의 경감된 통증이라도 감사하며 그저 소진된 체력을 보전하기 위해 눈을 감고 소리도 지르지 않고 쉬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갑자기 무통이 전혀 듣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종전까지의 진통과 다르게 뭔가가 마려운 느낌, 커다란 수박이 엉덩이로 튀어나올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것도 겪어본 적 없지만 알 수 있었다. 이제 쭌이어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것이다.
곧바로 가족 분만실로 옮겨진 나는 그 와중에도 체면을 차리려는 생각은 있었는지 남편과 단 둘이 있다는 걸 깨닫자 마자 진통 속에서 신음을 토했다. 남편은 호흡법을 도와주려고 “하나, 둘…” 말을 하려 했지만 나는 그 순간 딱 잘라 “하지마! 소용없어!” 해버렸고, 그 다음은 다시 나 혼자의 싸움이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들어와서 본격적인 분만 준비하는 동안에도 2분 주기의 진통은 쉴세없이 몰아쳤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나에게 무통 처방을 해준 천사같은 간호사님을 향해 말했다. “애기가 곧 나올 것 같아요…” 남편이 끝까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 부부가 미리 공부한 것과는 달리 남편은 분만 직전에 대기실로 쫒겨났고 나와 간호사선생님들의 분만 연습이 시작되었다. 잠시 후 의사가 들어와서 본격적인 힘주기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커다란 것(?)을 낳다가는 죽겠구나 싶은 두려움이 있었지만 어차피 낳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전쟁이라 생각했고, 웨이트 트레이닝 할 때 코어에 힘을 주었던 것들을 생각하며 온 힘을 다해 밀어냈다. 의사선생님이 오시고는 단 두 번의 진통 끝에 쭌이어가 태어났다. 간호사 선생님이 분만 후에 다시 들어와서 정말 힘을 잘 주었다고 칭찬해주셨다.
너무 경황이 없어서 아이가 나올 때의 미끄덩한(?) 느낌을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시원한 느낌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한 간호사 선생님의 외침이 기억난다. “3시 26분입니다.” 곧이어 남편이 들어와서 아이를 인계 받고 탯줄을 잘랐고, 내 품에도 아이가 안겨졌다. 빨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까매서 놀랐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느껴졌다. 경황 없는 우리 부부에게 간호사 선생님들은 아가에게 한 마디 해주라 하셨고 남편은 쭌이어에게 무어라 말하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후처치가 끝나고 잠시 누워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며 체력을 회복하고 있다가 부모님과 시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새벽에 갑자기 양수가 터졌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부터 하루 종일 마음 졸이며 기다렸을 부모님을 생각하니 씩씩하게 전화하고 싶었지만, 사실은 눈물부터 나왔다. 아침에는 “별로 안아파~”하며 너스레를 잔뜩 떨었지만 말이다. 시부모님께서는 건강부터 물어봐 주셨고, 손주를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며칠이 지난 지금, 가끔 모자 동실 시간에 양가 부모님에게 영상통화로 아기를 보여드리면 작은 스마트폰 앞에 얼굴을 콕 박고 손주를 보시겠다는 모습에, 흐뭇하고 낳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배로 커진다.
입원실로 올라온 후부터는 더욱 본격적인 남편의 케어가 시작됐다. 양말 신겨주기, 화장실 같이 가주기, 물 떠주고 밥 먹여주고 눕혀주고 일으켜주는 모든 것들을 남편이 해주었다. 아무리 자연분만 산모일 지라도 오랜 시간 동안의 체력소진과 많은 출혈이 있었던 지라 보호자가 없으면 안되었다. 출산 후 3시간 후부터 아기를 면회할 수 있었는데,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이었지만 보러가겠다고 몸을 움직였다가 면회실 앞에서 일시적으로 기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찍어준 면회실 앞에서의 내 모습은 웃음이 만개하다. 비록 링거를 꽂고 휠체어를 타고 있지만 말이다.
하루 종일 고통 속에 있었던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다른 어떤 것도 방해할 수 없는 완전한 행복과 사랑이 가득한 시간들이 우리에게 찾아온 하루였다. 짧은 면회 후에도, 찍은 몇 장 안되는 사진을 연신 바라보며 내 자식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우리는 (비록 미숙하고 아무것도 모를지라도) 이렇게 부모가 되었다.
아이를 안은 순간의 기쁨은, 품고 있던 열 달의 힘듦과 출산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커다란 것이었다. 그토록 많은 선배 부모들이 말해왔던 것이, 정말로 진실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