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쓰는 결산글
매년 쓰는 연말 결산 글. 이 시기가 되면 한 해를 돌아보며 무엇을 했고 이뤘나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임신, 출산, 육아’ 외에는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1월에 임신하여 9월에 출산, 그리고 12월인 지금은 백 일의 기적을 바라보며 육아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결산 글은 이 이야기를 풀어갈 것 같다.
결혼과 함께 허니문 베이비를 꿈꿨다. 남편과 처음으로 결혼 이야기를 나누던 날 남편은 나에게 아이는 언제쯤 가질 생각이냐고 물었고 나는 신혼 1년 정도 후에 가지면 되지 않겠냐 했다. 딱히 깊은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으레 그렇게들 하니까. 그뿐이었다. 결혼 6개월 전에 신혼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 우리는 이미 신혼부부였다. 함께 하는 시간이 완전하게 평온하고 행복했다. “나에게 이렇게 행복한 시간이 찾아오다니. 내가 이걸 다 누려도 될까.” 엄마에게 여러 번 말했다. 그렇게 행복했기 때문일까. 함께 살기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에게 “허니문 베이비는 어때?”하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늘 웃고 있는 남편 얼굴에 더 환한 웃음꽃이 만개했다.
하지만 허니문 베이비는 생기지 않았다.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간 터라 태명도 ‘로마’로 정해놓았었는데 말이다.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건 아닐지 생각이 들 때 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2월 1일, 신혼 4개월차였다. 임신 초기에 유산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았기에 초조했지만 감사하게도 그 시기가 잘 지나가고 성별도 남자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안정기가 시작될 때 쯤 태교여행으로 하와이에 갔다. 임신 기간 통틀어 (그리고 육아를 하는 지금까지도) 가장 힘들었던 입덧도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출국하는 날 비행기에서 부터 매일매일 배려 받고 사랑을 받으며 말 그대로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태교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본격적인 임신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그 흔한 임신성당뇨 재검사도 한번 걸리지 않을 만큼 아무 이슈 없이 무탈하게 임신기간은 순항하였다. 부산으로 한번 더 여행을 다녀왔다. 길거리를 걷다가도 어느 식당이나 가게에 들어가도 나는 생명을 잉태한 축복의 존재였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에게 참 많이 축하 받았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 최고의 전성기였다.
이렇게 완전하게 행복한 그 때에 뜬금없이 에세이 <숨결이 바람 될 때> 생각이 났다. 암에 걸린 저자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남편이 떠난 후에 남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풀어간 이야기. 저자의 아내는 남편이 죽은 후 쓰던 에세이 <숨결이 바람 될 때>를 마무리했다. 남편의 유작을 세상에 출판시키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이자, 남편을 기리며 추억하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아이를 갖겠다고 다짐했을 때 문득 겁났던 적이 있다. 내가 아이를 갖겠다는 다짐을 한 것은 남편을 너무 사랑해서도 있지만, 아이를 낳아도 될 만큼 심리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면? 나 혼자였다면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도 있지만) 아이를 가질 생각은 차마 못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나에게 평화와 안정을 준 남편 덕분이다. 그런데 그렇게 든든한 남편이 사라진다면 내가 아이를 혼자 양육할 수 있을까? 이런 공포 섞인 생각을 하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딘가 비빌 언덕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현실적인 것들을 생각하면 아득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이유, 남편이 떠나더라도 남편을 추억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내가 온 맘으로 사랑했던 사람의 후손을 세상에 태어나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남편의 흔적을 이 세상에 이어갈 수 있다면… 그 이유 만으로 나는 ‘감히’ 임신을 하겠다고 결심을 했다.
나는 남편을 그토록 사랑했고 또 의지 정연하게 임신을 결심한 것이었다.
출산
‘출산은 아이가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출산을 해보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38주 0일에 양수가 터질 줄이야. 이것저것 출산휴가를 길게 쓰고 싶어서 잔머리를 썼지만 하나도 쓸모없게 되어 버렸다. 아기가 예상보다 너무나 빠르게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아기가 태어난 그 순간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이 세상에 그 기분을 대체할 비유가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열심히 설명을 해보자면, 땀을 뻘뻘 흘리며 웨이트를 한 시간 동안 열심히 하고 난 후의 뿌듯함이랄까.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잘 치르고 나왔을 때의 기분이랄까. 무엇이 되었든 그런 기분들의 만 배쯤 될 것이다. 열 달 동안 내 몸에서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참으며 잘 키워서 극도의 산통을 겪은 후에 만난 내 아기. 가끔 어떤 엄마들이 내 인생 최고의 성과가 자식을 낳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생명’을 탄생시키다니…!
막달에 썼던 글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시험도 끝이 있고, 프로젝트도 끝이 있는데, 육아라는 건 끝이 없는 마라톤을 시작한 것이라 두렵다.” 실로 그 말이 적확하게 맞는 것임을 체감하는 매일이다. 퇴근도 없고, 휴게시간도 없다. 아기가 고용주라면 악덕 고용주다. 밥 먹을 시간도, 쉴 시간도, 심지어 용변을 볼 것도 허락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토록 악명 높은 고용주에게 부모들은 엄청난 노동 착취를 당함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억겹의 세월 동안 계속해서 후대를 출산하고 대를 이어간 것은 기적에 가깝다.
아기는 어른도 아니고 로봇도 아니다. 머릿속으로 이해하고 있는 문장을 매일매일의 육아 현장에서 경험으로 깨닫고 있다. 방금 기술한 문장의 무게는 아마 육아 경험자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수유텀, 깨어있는 시간, 수면교육과 통잠, 발달 체크.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모든 아이는 독립적이며 창의적인 생명 유기체이다. 모든 아이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 전에 ‘나는 저렇게 조급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초보 부모의 조급함을 예외 없이 겪고 있다. 그럼에도 조금씩 경험치가 쌓이고 내 아이에 대한 데이터가 쌓여 약간의 자신감이라도 생기려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아기의 패턴이 변한다. 아마 한동안은 이러한 일희일비의 순간들 속에서 허덕일 것이다.
사실 아직까지는 육아를 하며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남편이다. 아이는 이 존재를 매일 살려내는 것이 목적이고, 그렇기에 생각보단 육체적 노동의 투입이 많다면 이 아이를 바라보며 더 많은 정신적 노동을 쏟는 대상은 남편에 대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편에 대한 측은함이다. 어디선가 배우자가 귀엽게 보이면 많이 사랑하는 것이고, 애잔하게 보이면 무르익는 사랑으로 진입한 것이라고 했는데… 맞벌이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으로서의 부담감은 나보단 클 남편이 출산 시부터 일하며 육아를 하는 것을 보다보니 측은함.. 그리고 그것을 넘어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앞에서 언급하지 못한 내용이 있는데 아이의 건강에 대한 부분이다. 임신 기간이 무탈했기에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아기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평생 관리해야 하는 부분이라 상심이 컸다. 산후우울증까지 겹쳐 임신 자체에 대한 후회까지 들며 정신적으로 무너졌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던 시간을 지나며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마음의 고통을 느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절정으로 행복하다고 느꼈던 시기이자 안정적이고 준비되었다고 느낀 시기에 임신을 ‘결단’했다. 아이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오로지 우리의 선택이었고, 우리가 더 행복하고 싶어 욕심으로 낳은 아이였다. 그렇기에 이 아이를 지키고 최선을 다해 양육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임을, 너무나 당연하지만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책임감을 출산 이후에 서서히 건립해 가고 있다.
결코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 서서히 그러나 점진적으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가족이었다. 나는 가족에서 나와 이렇게 새로운 가족을 꾸리고 있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 그리고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은 내가 인생을 바라보는 필터에 한 가지를 더해 주었다. 길거리 모든 아이들이 예뻐 보였고, 세상의 아픈 모든 아이들에 마음아팠다. 처음엔 우리 아이를 위해서만 하던 기도는 대학병원에서 스치며 만났던 아이들로 확장되어갔다.
가장 행복했던 시기에 결정한 임신이었고 더 행복하기 위해 낳은 아이였는데 아이의 건강 문제로 인해 남은 평생의 행복을 모두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처음엔 엄마가 강해져야 한다는 말, 다 뜻이 있는 일이라는 말이 제일 듣기 싫었다. 주제 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아기가 50일 정도 됐을 무렵 친구에게 했던 말이다. “결혼, 배우자, 임신까지. 정말 완벽했는데. 네가 봐도 내 삶이 완벽하지 않았니?” 친구가 대답했다. “그렇지.” 그 말에 씁쓸함을 삼키는 침묵이 1초쯤 있었을까. 친구가 덧붙였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네 삶은 지금도 완벽해.”
그렇다. 내 삶은 지금 그대로도 완벽하다. 내가 가진 것들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에 따라 온전한 행복이 내 손안에 가득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엄마라는 이유로 강해져야할 의무는 없었다. 보다 정확히는, 엄마는 자연히 강해진다. 그리고 성숙해진다. 나의 행복이 출산으로 이어졌고, 출산이 책임감으로 이어졌고, 아이의 아픔이 이 세상 모든 아픈 아이들을 위로하는 기도로 이어진 것처럼. 어디선가 본 글귀가 진정 사실일 수도 있겠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부모를 키운다.
2026년은 육아휴직으로 온전히 한 해를 보내게 될 것 같다. 휴식 아닌 휴식이 처음은 아니다. 나는 이미 스물 아홉에 첫 직장을 6년 만에 그만두고 쉬었던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험이 ‘처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나에게 육아가 생겼기 때문이다. 출산휴가로 3개월을 미리 겪어보니 육아를 하며 다른 무언가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체감하고 있다. 임신과 출산으로 체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라 뭔가 생산적인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람의 타고난 기질은 아무래도 있는 것 같다. 3개월 쯤 되니 몸은 비록 육아에 묶여있을지라도 머리가 팽팽 돌아가니 말이다. 외국어 실력은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나의 정체성과도 같았던 독서와 글쓰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무너진 체력을 보전하기 위해 운동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가계 운영은 어떻게 할지, 내 커리어는 어떻게 이어갈지(그대로 복직할 것인지) 등을 끊임없이 생각한다.
구체적인 계획은 남편과 나누겠지만, 사실 이것들은 모두 피상적인 일들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나는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어아의 인생에 있어서 온전하게 집중적으로 엄마와 보낼 수 있는 유일한 1년일테니. 그래서 선포한다. 피상적인 것들에 너무 매몰되지 않으리. 아이와의 행복한 시간에 집중해보겠다고 말이다.
두 번째 다짐은 2024년부터 다짐했던 목표를 이어간다. 바로 남편을 행복한 남자로 만드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부쩍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생기고 있다. 남편 말고 내 쪽에서 말이다. 아무리 사이 좋은 부부일지라도 육아를 하다보면 부딪힌다는 이야기가 우리 부부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하다. 남편은 변함없이 인자하고 자상하고 따뜻한 말투를 유지하니까. 변한 건 내 쪽이다. 첫 폭발(?)은 출산 후 3주쯤 되었을 때, 그러니까 조리원 퇴소하고 집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였던 것 같다. 지금은 생각도 잘 나지 않는 이유로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고 화를 냈다. 그리고 한달에 한 두번에서 일주일에 한번으로, 최근에는 일주일 사이에 서너번을 몰아붙이는 일도 있었다. 그때 내가 체력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사실로 자괴감을 느낀 이유는 단순히 감정이 상해서가 아니라 나의 목표 ‘인자한 아내가 되고 행복한 남편 만들기’에서 멀어지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부족한 면을 인정하고 또 되돌아보며, 동시에 나의 한계점을 받아들이고 감정을 공유하며 성숙한 내가 그리고 우리가 되는 것이 두 번째 목표이다.
마지막 다짐은, 매년 빠짐없이 다짐하지만 동시에 예외 없이 실패하는 것, 바로 신앙회복이다. 하나님을 외면하며 보낸 임신기간, 오해하며 보낸 출산 직후의 시간들.. 결혼과 동시에 재독한 책 <P31>을 떠올리며 새롭게 이룬 내 가정에서의 주체적인 기도자가 되어야 함을 깨달았지만, 나는 여전히 스스로의 기도보다는 다른 이들의 기도에 연명하여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내 입술로 축복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남편과 자녀, 그리고 가족과 이 땅의 모든 아이들까지. 욕심은 과하지만 태초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셨기에 다시 한번 용기내어 신뢰로 나아가보려 한다. 비록 다시 실패했지만, 실패의 수치를 인정하고 신년에도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내가 아직 미처 다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사랑을 피부로 체험하는 한 해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격동의 3년이었다. 이직을 했고, 남편을 만나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았다. 이 격변의 시간들 속에서 일희일비는 했을지라도 돌아보면 모든 것이 은혜고 감사이며 축복이었다. 내 힘과 계획으로 이룰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이뤘다. ‘모든 것이 은혜’였다. 어느 찬송가처럼 이 말을 반복적으로 외치다 보니 감사와 감동이 저 멀리 수평선에서부터 서서히 그러나 압도적으로 떠밀려 온다. 이 감동을 잊지 않고, 간절함을 내려 놓지 않는 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