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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미 Sep 27. 2019

땅꾸러지라고 하면 안돼요?

엉뚱한 고집으로 얻게 된 표현의 자유


책에는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던 도하였다. 손에 책을 놓지 않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지만, 스스로 책을 집어 드는 일은 없었다. 아이가 스스로 읽을 것을 기대하지 말고 읽어주라데... 한번 해볼까? '독후 수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책 읽기에서 끝나지 않고 수다로 이어지는 도하와 나만의 자기 전 의식. 그 시간이 나는 너무 좋았다. 장거리 출퇴근하는 워킹맘 내가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시곗바늘은 야속하게  9시 언저리에 다. 주어진 시간은 고작 두어 시간. 막히는 시간을 피하고자 이가 일어나기 전에 집을 나서는 나에게는 아이의 눈을 볼 수 있는 퇴근 후 두어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그러함에도 애틋한 마음은 잠깐이고 종종 아름답지 못한 풍경이 연출되곤 했다. 엄마랑 놀고 싶어 하는 아이, 아이를 워야 하는 마의 갈등의 시간. 자기 싫어하는 아이를 다그치며 재운 뒤에는 늘 자는 아이 얼굴 앞에서 후회를 했었다. '하.. 이러려고 2시간 퇴근길을 달려온 게 아닌데...' 그러나 내가 읽어주는 책 속 세상에 아이가 흥미를 게 되자 잠자리로 향하는 여정이 한결 수월 해졌고, 책이 열어준 수다로 인해 도통 들을 수 없던 아이의 생각과 마음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땅꾸러지 사건

하가 여섯 살이던 어느 날, 나는 그날 사건을 '땅꾸러지 사건'이라고 부른다. 그날도 밤늦게 퇴근한 탓에 부랴부랴 아이를 씻기고 서둘러  채비를 친 뒤, 읽을 책 서너 권을 골 아이 손을 잡고 아이 방 침대올랐다. 불이 꺼진 아이방 침대 머리맡에 홀로 켜진 독서등이 자아내는 따스 분위기에 기분이 좋았고, 신푹신 커다란 쿠션에 등을 풀썩 기대면서 '아... 편하다'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정확히 어떤 책을 읽은 후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느 때처럼 도하는 재잘재잘 이야기보따리를 풀었고, 의식의 흐름대로 쏟아지는 이야기 사이사이 던져지는 질문에 나는 답을 하였다. 그러던 중 아이가 무언가를 설명했으나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6세. 아는 단어도 부족하고 표현력도 부족하고 인내심은 더없이 부족한, 열정만 앞서는 남자아이의 말을 한 번에 못 알아듣는 건 곧 원하지 않는 그림으로 상황이 전개될 거라는 예고와 같다. 



"도하야 땅꾸러지가 뭔지 엄마 정말 모르겠어"

"땅꾸러지요. 몰라요 엄마.. 땅 끝에 있는 거요"

"혹시.. 낭떠러지 말하는 거야? 땅 끝에 갑자기 땅이 없어지고 저 아래로 떨어지는 그런 곳?"

" 네..."

"도하야 그건 땅꾸러지가 아니라 낭.떠.러.지 라고 하는 거야. 우리 도하 그게 땅꾸러지 인 줄 알았구나? 하하"



그 맘때 도하는 단어의 음절을 이상하게 섞어 말하곤 했다. 리는 대로 말을 배우는 아이들에겐 흔히 있는 일인데, '도대체'는 '대도체', '한꺼번에'는 '한버껀에'로 말하는 식이었다. 그래도 이런 음절의 순서만 바꾼 단어들은 알아차리기  편이었다. 땅꾸러 아이만의 창의적인 재 해석이 들어간 탓에 치껏 알아내기 간 힘든 게 아니었다. 땅꾸러지라니... 땅 끝에 왠지 꾸러지 하게 떨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낭떠러지의 모양과 역할이 잘 묘사된 듯해서 으로 귀여웠다. 어떻게 이 사랑스러운 상황 앞에서 웃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근데 나의 웃음이 도하기분을 상하게 한 모양이다.



아니에요!
땅꾸러지가 맞아욧!!


하하하 웃는 내 앞에 인상 쓰고 씩씩 거리는 아이가 앉아있다. 편하게 쿠션에 기대 누워 대화하던 아이와 나는 정자세로 마주 앉아 언쟁이라 쓰고 싸움이라 부를만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땅꾸러지가 아니라 낭떠러지야"

"땅꾸러지라니까요!!!!!"

"아니야 도하야 네가 말한 그건 낭떠러지야"

"땅 꾸러지라니까 왜 그래요!!!"

"도하야 네가 땅꾸러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근데 그건 낭떠러지라고 하는 게 맞아. 그래야 사람들이 알아들어"

"엄마 그게 아니라! 땅 끝에! 땅 꾸러지라니까! 왜 못 알아듣고 그래요!"

"네가 엄마보다 한글을 잘 알아? 엄마가 너보다 한글을 훨씬 먼저 배우고 많이 알잖아. 사람들에게 땅꾸러지라고 말해봐. 아무도 못 알아들어. 네가 다른 사람에게 낭떠러지를 말하고 싶으면, 낭떠러지라고 해야 하는 거야. 땅꾸러지라고 하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무도 못 알아들을 건데, 그때 엄마한테 하듯 지금 이렇게 화내고 그럴 거야?"



꽤 큰 말 싸움판이었다. 도하에게 좀처럼 물러설 기색이 보이지 않자 '내가 너보다 한글을 더 많이 알고 먼저 배웠다'는 쪼잔함 가득한 말까지 나와버렸다. 내가 도하보다 32살이나 많은데... 지금 낭떠러지 단어 하나로 이럴일인가 싶었고, 힘들게 고수해온 대화로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나의 훈육 방법이 아무 때나 고집부리는 아이로 키웠나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이의 내일 유치원 준비물도 살펴야 하고, 내 출근 준비도 미리 해둬야 아침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늘 수면부족인 나는 가능한 일찍 자야 하는데... 의미 없는 일에 시간이 허비되고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열이 뻗친다', '뚜껑이 열린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는 거였구나 싶었다.


'얘가 지금 왜 이럴까?'


화를 잠시 누르기 위해 말을 멈추고 아이를 바라보니 아이의 감정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보다 길게 말하는 엄마에게 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같고, 같은 말만 반복하는 자신의 부족한 표현력답답함을 느끼는 것도 같고, 제 분에 못 이겨 개구리처럼 펄쩍펄쩍 뛰고 과격한 몸짓을 한 탓에 엄마에게 혼이 날까 무섭기도 한 것 같고, 무엇보다 지금 내 침묵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알려주고 싶은 걸까?'


훈육이 필요할 땐 한 번에 하나의 메시지만을 남기자는 나만의 원칙을 마음속에 되뇌며 무엇을 알려주며 끝낼 것인지를 생각했다. 일단, 오늘의 태도는 지적하지 말자. 정확한 단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만 가르치기로 하고 말을 꺼냈다.



"도하야. 엄마도 땅꾸러지라는 말 참 좋아. 낭떠러지를 정말 잘 표현한 말 같고 더 재밌는 표현이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만약에 도하가 낭떠러지에서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사람들에게 '여기 낭떠러지로 와서 구해주세요'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걸 땅꾸러지라고 해서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으면 안 되잖아. 그래서 모든 엄마는 아이에게 정확한 말을 알려줘야 해. 엄마한테는 땅꾸러지라고 해도 돼. 왜냐면 엄마는 도하 엄마니까 도하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근데 만약에 누가 도하에게 퀴즈를 냈는데 정답이 '낭떠러지'라면 도하는 그때 뭐라고 말할 거야?"

"....낭.... 떠러지...요"

"그래 그럼 됐어. 도하가 낭떠러지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거니까. 엄마한테는 앞으로 땅꾸러지라고 해도 돼"



그날의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때 '그냥 땅꾸러지라고 해도 된다' 말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 후에도 여러 도하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냈고 그때마다 내 앞에서만 그리 말하기약속하고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 "엄마! 사람들은 오랜만에 라고 하지만 도하는 오랜만간에 라고 하잖아요. 엄마한테는 도하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해도 되잖아요" 라던가, "엄마! 사람들은 모기 소리가 윙윙이라고 생각하지만 도하는 으웨엥 으웨엥 이라고 생각하잖아요"라는 식으로 도하에겐 표현의 자유가 고, 나에겐 그런 아이의 풍부한 표현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생겼다.


엄마한테는 언제든
땅꾸러지라고 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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