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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 Dec 31. 2020

How did I get there (1) - UN

인턴 그리고 JPO @ UNDP

일단 시리즈를 쓰기로 했으니,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가볍게 풀어보는 글로 스타트를 끊어본다.

 


First Step  


국제기구에서 처음 일할 기회를 얻은 건 인턴십을 통해서였다. 당시 감사하게도 국제환경전문가과정이라는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았는데, 환경 관련 국제기구에 매년 꾸준히 인턴을 파견하며 지금도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알찬 프로그램이다. 다만 막상 인턴십 기회는 프로그램을 통해 연결받은 게 아니라 내가 이메일 돌리다 직접 구한 것이었는데, 안그래도 석사를 마무리하는 시기라 국제기구 인턴을 꼭 해보고 싶어서 무작정 여기저기 이메일을 뿌리던 와중이었다.  


최소 수십군데는 이메일을 보냈던 기억이 나는데, 대부분은 (당연하게도) 아무 답도 없었고. 그러다 우연히 긍정적인 연락이 온 곳이 바로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UNDP) 뉴욕 본부의 Global Environment Finance 팀이었던 것. 내게 답신을 해 주고 supervisor가 되어준 분이 일본 여성분이셨는데, 아마도 같은 아시안에 대한 호감이 조금은 작용했던 게 아닐까. 나도 국제기구에 몇 년째 근무하다 보니 이해할 것 같은 그런 감정인데, 그만큼 국제기구에는 소재지 가리지 않고 아직도 아시안의 (특히 East Asian) 수가 현저히 적다. 


정말 아무런 기대도 안 하고 여기저기 찔러보다 팔자에도 없던 뉴욕에 가보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생각보다 cold email은 먹힐 때가 많다. 이 글을 보는 분들도 과감하게 많이 시도해 보시길 추천한다. 


(L) 고층빌딩이 빽빽하게 늘어선 맨하탄의 일상 (R) 유엔 본부 건물. 내가 근무한 UNDP는 저 건너편이었다


뉴욕에서 보냈던 6개월은, 직장 경력도 국제기구 경험도 전무했던 나에게 첫 사회생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뉴욕이라는 공간을 경험하는 그 자체가 더 즐겁고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지하철에서 올라와 처음 맨하탄이라는 곳에 발을 디뎠을 때의 충격은… 그렇게 끝없이 펼쳐지는 skyscrapper를 보는 게 처음이라 촌놈처럼 위만 쳐다보며 한참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뉴욕은 (UN 산하기구인) UNDP 본부도 있지만 UN 자체의 본부가 있는 곳이라 한국인 외국인 가리지 않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도 되었다. (인턴 숫자도 굉장히 많아 우리들만의 social community가 활발했음) 이 때의 짧고 굵은 경험은 글 몇 개를 따로 써야 할 지경이지만 여기서는 이 정도로 줄이도록 하고.  


인턴 업무로는 UNDP의 포트폴리오 리서치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책임이 주어져서 나름 주도적으로 재밌게 할 수 있었다. 다만 이건 오피스의 core 업무가 아니었고, UNDP 프로젝트와 업무 싸이클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던 욕심을 충족시켜주진 못해서 마지막엔 다소 loose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바라본 UNDP 뉴욕 오피스는 상당히 자유로우면서도 (주 35시간 근무!) 개인적인 분위기가 강했는데, 구성원들의 국적은 다양하면서도 역시나 어메리칸 문화가 강하게 자리잡은 느낌. 각자 자기 업무에만 집중하는 문화다 보니 나로써는 다소 스며들기 힘든 기분도 있었다.  


오랜만에 꺼내본 인턴 근무 때 데스크


어찌됐건 인턴 근무는 간접적으로 날 full time job opportunity로 연결해 주었고, 그 때 UNDP에서 알게 된 분들에게 많은 커리어 조언을 얻기도 했다. 그래서 full time job을 얻게 된 건? 처음엔 인턴 경험을 이어 컨설턴트 기회라도 얻어보려 했는데 이 또한 (늘 그러하듯) 예산 문제로 쉽지 않았고. 인턴이 끝나갈 즈음 외교부 JPO 프로그램에 지원해 운좋게 합격하였고, (인턴 끝나기 몇 주 전 친구들과 오피스 근처에서 happy hour 술 마시다 합격을 확인했던 기억이) 몇 달이 지난 뒤 UNDP 가나 사무소로 파견되었다.  



UNDP  


JPO라는 프로그램은 국제기구 지원자 사이에서 많이 알려져있고 정보도 많거니와, 지금은 JPO 선발과정 자체가 확 바뀐지라 내가 그 과정을 공유하는 게 그닥 유용하지는 않을 수 있겠다. 당시에는 외교부 주도로 에세이 및 국문면접, 영어그룹토론 시험을 치뤘고 (1점이라도 더 얻어보자고 되도 않는 프랑스어 speaking test도 컴퓨터로 치뤘던), 15명 내에 선발되고 난 뒤에는 말 그대로 내가 원하는 오피스를 골라갈 수 있었다 (다만 개도국 사무소 지원이 기본 원칙). UNDP 본부 경험도 해 봤겠다, 진짜 유엔기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면 필드에 가야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주변 분들의 추천을 받아 서아프리카의 가나 country office를 컨택하게 되었다.  


환경에너지가 (석사학위 때부터) 내 꾸준한 관심분야였는데, UNDP가 아무래도 다른 기구보다 이 분야에서 가장 프로그램 규모가 크기도 하고, 촘촘한 country office network도 장점이라 여겨졌다. 가나를 선택하게 된 건, 외국인 생활환경이나 치안, 사업 규모, 오피스와 counterpart 정부의 업무환경, 언어 등 여러 면에서 일해볼만 한 사무소로 추천을 받았던 이유가 크다. 당시 인턴 supervisor께서 본인 팀 소속으로 아시아 지역사무소로 (무려 방콕!) 가 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도 받았었는데, 그 당시에는 현장 실무를 하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아프리카 경험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컸었다. 그 때 방콕을 갔더라면 지금쯤 인생이 완전히 달라져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삶은 초이스의 연속이고, 나이가 들수록 그 초이스가 모인 것이 그냥 나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2013년 1월, 코펜하겐에서의 짧은 onboarding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바로 가나로 넘어가 JPO 근무를 시작했다. UNDP에서 어떤 일을 했고 조직 분위기는 어떤지, 내가 느낀 장단점이 무엇인지는 다른 글에서 더 풀어보도록 하겠다.  


UNDP Ghana. 정부에서 제공해준 건물을 수십 년간 쓰느라 외관은 다소 허름했던 오피스의 모습.


JPO는 우리 정부가 지원하는 2년 프로그램이지만, 사무소에서 펀딩을 제공할 시 3년차 연장이 가능하다. 2년을 마치고 그렇게 3년차로 업무를 이어가게 되었고, 점점 이 곳을 떠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더 이상 연장은 없다는 배수진(?)을 치고 공격적으로 여기저기 알아보기 시작했었다. (어쨌든 JPO 형태로 더 이상 연장은 불가능했고, 새로 포스트가 만들어지면 내가 지원해야 하는 형식이었음)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았다. 유엔 시스템을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P2 (JPO 직급)는 공석 자체가 거의 나오지 않고, P3를 지원하자니 최소 5년 경력이 필요하거니와 (나이도 경력도 짧았던 당시 나로써는 영혼까지 끌어모아야 겨우 채울까 말까) 또 P3는 엄청난 숫자의 유엔 로컬 직원들이 지원하다보니 (local과 international(P 직급)은 급여와 대우가 많이 다르다) 통상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기록했다. 계약이 끝나가던 3년차 말에 이르러서는 같이 프로젝트를 하던 UNEP 파리 오피스에 컨설턴트 포지션이 나왔길래 거기로 옮겨볼까 힘들게 알아보던 찰나였다. 그 와중 기적같이(?) 계약 종료 한 달 전 2015년 12월에 아프리카개발은행 (AfDB) Young Professional Program 오퍼가 도착. 여긴 지원한 건 무려 1년 전이었고 인터뷰도 그 해 6월에 했는데, 가을 내내 아무런 연락이 없고 이메일 보내도 절대 안 알려주길래 아예 잊고 있던 차였다.  


재밌는 게, 처음 AfDB 오퍼를 받았을 땐 그냥 UNEP 쪽이랑 얘기 잘 진행해서 거기로 옮길까 하는 생각이 꽤 컸다. 그 쪽 오퍼가 절대 좋은 게 아니었는데도 이미 프로젝트를 알아서 친숙해서 그랬던건지 아니면 파리에 흥미를 느낀 건지. 사실은 JPO 하고도 또 "Young…"이란 타이틀을 달아야 하나 하는 짧은 생각도 있었다. (이건 AfDB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 완전한 착각이었음을 깨달았음) 그렇게 며칠의 고민 그리고 몇몇 분들의 조언에 기대어 그 해 연말 AfDB의 오퍼를 받아들였다.  


AfDB YPP를 지원하게 된 과정과 입사까지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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