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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Apr 19. 2024

경찰관은 비행기모드를 하지 않는다

“호흡에 집중하세요. 원숭이처럼 날뛰는 생각을 보세요. 명상은 내 안의 중심을 찾는 것입니다.”


  제주도 하도리의 작은 리조트에서는 매일 아침 명상 수업이 열린다. 조도를 낮춘 명상실에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은 몸의 감각을 깨운다. 느긋한 리듬에 팔을 뻗었다 몸을 웅크리기를 몇 번, 음악이 그친다. 고요 속에 앉아 들고나는 숨을 본다. 들숨 한 번에 날숨 한 번.


  처음부터 명상 수업을 들을 계획은 아니었다. 나는 에토스를 찾아 제주도로 왔다. 파토스가 감정이고 로고스가 이성이라면 에토스는 삶 전체를 관통하는 윤리, 즉 태도라고 할 수 있다.「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에서 이국환 교수는 좋은 글에서는 작가의 에토스가 드러난다고 했다. 글은 작가의 삶이 묻어 나오는 영혼의 집이라는 것이다.


  괜스레 마음이 번잡해지는 겨울밤 내가 만난 에토스는「형사 박미옥」이었다. 현장을 누비던 시절의 호칭이 좋아서 ‘반장’이라고 불러달라는 그는 한국 경찰 역사상 첫 강력계 여형사이자 최초 여성 강력반장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 그의 에토스가 나를 쉼 없이 두드리는 망치 같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원망하지 않는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가늠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계속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련도 선물처럼 누릴 수 있다.


  그 강인한 에토스의 동력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다. 그는 ‘애정 없이 범인을 잡는 일에만 성취감을 느낀다면 형사가 아니라 사냥꾼’이라며, ‘때로 삶은 더럽고 비루한 방식으로 우리의 따귀를 치지만, 옳은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그로 인해 근본적으로 훼손되지는 안’ 는다고 말한다. 현장의 혼돈에서도 애정 어린 옳은 마음으로 질문하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이다.



그 무엇도 속단하지 않고 만만하게 여기지 않으며, 끝없이 덮쳐오는 내면의 두려움조차 끌어안고 현장으로 나가는 것이 형사였다.


<모든 현장이 두려웠다> 中


다그치면 마음이 닫히지만 질문하면 열린다. 형사는 그 변화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내 목소리.... 기억하죠> 中



   그렇다. 나는 박미옥 반장님을 만나러 제주도에 왔다. 반장님이 제주도 동쪽 작은 마을에서 서점을 운영한다고 오해해서 비행기를 예약했고, 서점이 오픈 전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여행을 취소하지는 않았다. 반장님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의 에토스는 만나리라, 내가 느낀 설렘과 감동을 온전히 누리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오른 여행길에서 유채꽃 핀 무밭의 돌담을 따라 걷고 이른 아침 명상을 하고 있다. 에토스의 이정표를 붙들고 한없이 작은 내 안에 잠긴다.


  “원시인은 사자를 보면 도망갔습니다. 현대인은 24시간 사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명상 선생님의 낮은 목소리가 울린다. 내 안의 사자를 본다. 잦은 교대 근무, 눈을 감으면 몰려오는 트라우마 현장, 잔혹한 인간성 아래의 심연과 사람들의 비참한 사정, 제복을 바라보는 가혹한 시선 모두 사자 같기만 하다. 경찰관으로 살면서 사자를 피할 곳은 없다. 경찰관은 한밤중에도 비행기모드를 하지 않는다. 무전은 24시간 울려댄다. 이것은 사자의 포효인가.


  박미옥 반장님은 ‘미로를 헤치고 나아가는 자는 내 눈앞에 가로막힌 것이 벽인지 문인지 가늠해야 한다.’고 했다. 내 앞을 가로막은 사자, 이 너머에도 사람은 있다. 종잡을 수 없는 인간사 한가운데에 내던져져서 여전히, 현장에서 가슴 뛴다는 동료들이 거기 있다.  가시 돋친 국민의 불행을 아기처럼 끌어안는 동료들의 에토스를 느낀다. 사자를 넘어선 이에게 비행기모드는 필요치 않다. 폭풍 같은 사자의 포효도 산들바람맞이하듯 현장으로 나가는 그들이 있어, 벽은 문이 되고 나는 그 문을 연다.


  아침 8시. 명상실의 커튼이 열렸다. 짙푸른 바다가 보인다.


  언제나 거기에 있었던, 에토스의 바다에서 긴 날숨이 실려 간다. 아주 작은 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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