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N페르소나

나는 네가 필요하다

by 김반장

친구가 생겼다. 웃고 떠들고 엉겨 붙었다 시샘하기를 여러 날,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친구가 필요했구나.

선물을 받았다. 꽃향 핸드크림, 핑크빛 샤워젤, 붉은 립밤. 이제 나는 그것들이 필요하다.


나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실은 필요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알지 못하는 것은 어디 있냐고 물을 수도 없고, 필요로 할 수도 없다. 필요하지 않다는 건, 그것의 존재 의미를 모른다는 말과 진배없다.


필요를 느끼려면 경험자본이 있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누린 취향도, 무람없이 받아먹었던 사랑도 모두 자본이다. 자본도 중요하지만, 운용하는 사람도 중요하다. 삶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경험자본을 톺아보고 주머니를 뒤적거려 동전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다.


너는 내게 필요없는 선물을 주었다. 네 선물을 받았을 때 나는 종일 사전을 뒤적거렸다. 아무리 뒤져도 내 사전에 그것은 없었다. 이제 나는 그것을 필요로 한다. 필요는 결핍감을 만든다. 때론, 아니 자주, 어쩌면 매일 그것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 때문에 필요는 종종 불만족의 씨앗이라는 누명을 쓴다.


하지만 필요는 결핍과 같은 말이 아니다. 피천득이 <인연>에서 '사치하되 낭비하지 않는 여인'을 묘사한 적이 있다. 사치는 비싸더라도 사고 나면 그 값 이상으로 누리는 것이고, 낭비는 쓸모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필요는 사치하게 하고 결핍은 낭비하게 한다. 필요는 풍요롭게 하지만 결핍은 빈곤하게 한다. 필요는 오래 욕망할 힘이 있지만 결핍은 다급하고 분주할 뿐 인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결핍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결핍은 필요의 징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그것은 내가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결핍은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느냐고 질문을 던지고,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라고 추동한다.


잘 보면, 내게 필요한 건 모두 내 곁에 있다. 징검다리 하나 없이 여기까지 온 사람은 없다. 누가 놓았는지 모를 징검다리를 밟고 지나온 이 삶 곳곳이 금이다. 자본은 충분하다. 나는 내 주머니에 동전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원한다면 언제든 그 동전을 꺼낼 수 있다.


그러니 다급해하지 말자. 봄이 오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연이 선물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