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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Nov 24. 2023

어른되기

애초에 어른 같은 건 없었다.

요즘은 침대 위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영상이나 글을 찾아보는 게 낙이다. 뒹굴거리면서 유튜브 영상이나 보다가 왠지 모른 죄책감이 몰려들면 책도 읽고 이렇게 글도 남긴다. 지금도 소파 위에 누워서 아이폰을 들고 끄적이고 있다. 늘 무슨 내용을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으니 아무 글이나 끄적인다. 불쑥 튀어나오는 단어 몇 글자와 어구들을 개연성이나 연결성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막 적어 내려가다 보면 대충 이런 글이 좋겠다는 감이 온다. 오늘은 이 주제가 좋겠다. "어른이 된다는 건 대체 뭘까?"


정보의 바다에서 어푸어푸하다 보면 종종 이런 혼잣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세상에는 참 멋있는 사람이 많구나." 나는 이렇게 누워서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그 멋쟁이 신사, 숙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 꾸준한 운동과 계획적인 삶으로 목표한 바를 착실히 이루고 산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숨 가쁘게 살아가면서 얻어낸 성취에 취하며 사는 삶, 돈을 많이 벌어 여행도 많이 가고 명품 옷과 액세서리를 향유하는 삶,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악착같이 자신을 가다듬는 저런 태도는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저렇게 사는 게 가능해?"를 연신 속으로 외치며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그 멋쟁이들과는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다 봐도 무방하다. 나는 돈도 별로 없고 명품 브랜드에서 옷을 사 본 적도 없다. 외출해서 사람들과 부대끼는 시간을 꺼리고 여행을 자주 가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에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시간 보내기가 낙이고, 방에 틀어박혀 시간을 내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큰 행복이다. 나는 큰 목표가 없다. 그냥 이렇게 70-80점 정도의 일상을 보내며 건강히 잘 살다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소소하게 즐기며 살고, 가족과 도란도란 웃으며 사는 게 목표라면 목표겠지. 물론 따지고 보면 이것도 굉장히 큰 바람이겠지만 "부자가 되고 싶다", "저 회사를 꼭 들어가고 싶다", "으리으리한 집을 꼭 사고 싶다"와 같은 욕망은 어느샌가 쳐다도 보지 않게 됐다. 그런 목표는 삶의 고통에 의미를 선사하고 피곤한 반복을 참아 낼 수 있는 동기를 불어넣는다. 하지만 나는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참아가며 젊은 날을 보내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세속적인 욕심이 있다면 글과 말로 돈을 버는 디지털 노매드가 되고 싶은 것 정도다. 세상이 굳이 나에게 큰돈을 쥐어주고 싶다면 마다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렇다고 큰돈만을 바라며 목을 매서 나의 삶을 갈아가며 살 의향은 더욱 없다. 나는 온갖 것을 열심히 느끼고 표현하며 살고 싶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 더 많이 대화하고 교감하는 삶을 원한다. 무언가를 느끼려면 음미해야 하고, 무언가를 표현하려면 숙고해야 한다. 아끼는 이와 깊은 대화를 하려면 기다려야 하고, 교감하려면 조심해야 한다. 그러려면 뭘 안 해야 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빈 공간이 없이 삶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면 그 사이에 사람이 비집고 들어올 수가 없다. 틈이 많은 일상을 살아야 더위가 가며 나뭇잎이 그을려가는 풍경을 담을 수 있고, 바쁜 일상에 지친 친구와 그 순간을 같이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법이다.


꾸미지 않은 반복되는 일상에 찾아오는 갑작스러운 선물 같은 순간이 언제나 매력적이다. 아침길과 밤길을 혼자 투벅투벅 걸을 때 들려오는 차 소리와 공기, 젊음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나른한 느낌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또 밤늦게까지 일하다 퇴근한 자들의 말동무를 해 주다 보면 느껴지는 온기. 이런 것들은 사전에 짜고 맞닥뜨리면 그 가슴 설렘을 온전히 맛볼 수 없다. 나는 그런 것들이 참 좋다. 의도치 않게 찾아온 크리스마스의 머리맡 선물 포대기 같은 순간 말이다.


치열하게 살아서 성공을 이뤄내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나는 '일상'을 '돈'으로만 바라보고, 우연히 마주하는 '인연'을 '인맥'으로만 여기고, '친절함'보다 '일 잘함'이 존중받는 세상에서 굳이 잘 살고 싶지 않다. 어른이라면 그렇게 살아야 하고, 싫어도 버텨야 하고, 힘이 들어 버거워도 그런 삶은 당연한 것인지라 아무도 손을 맞잡고 다독여주지 못한다면 나는 얼른 도망가련다. 불가피하게 부딪혀야 하는 순간이 종종 있겠지만 해야 할 일만 해내고 튈 것이다. 내가 먼저 도주처에서 잘 자리를 잡고 있을 테니, 하나 둘 지친 영혼이 내 안식처에 들르면 따듯한 차 한 잔 건네며, "어른 같은 거 되지 말자고" 꼬드기며 웃다가 그들의 안식이나 바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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