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뭐든지, 아무거나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혼자 글을 끄적이는 것이 버릇이다. 공부, 성적, 집안 분위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을 풀 데가 없으니 늘 노트를 괴롭혔다. 또 힙합의 바이브에 어릴 때부터 젖어 살았기에 무언가를 스핏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 정말 많이도 적었다. 그 덕에 그나마 글 쓰는 능력만큼은 자신 있다. 완벽하지 않지만 글 잘 쓴다는 얘기는 자주 들을 정도니 말이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무상히도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뭔가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기로 했다. 원래 늘 하던 대로 여러 생각이나 적는 글을 쓰려했는데 뭔가 정보성 있는 글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우연히 읽더라도 그 시간이 아깝지 않으려면 뭐라도 얻고 가는 게 있어야 한다는 마음에 내 딴에 열심히 똑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IT에 관심이 많다. 문과 출신이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그 특유의 독착정인 분위기에 홀렸다. 아이폰은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휴대전화는 들고 다닐 수 있는 전화기에 불과했지만 아이폰의 등장으로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리며 우리는 컴퓨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 삼성페이를 통해 한국은 캐시리스 공화국이 됐다. 에어팟의 발매로 블루투스 이어폰은 당연해졌다. ChatGPT의 등장으로 세상은 AI 범벅이다.
긍정과 부정 양면을 오가지만 여론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건 이제 IT다. 금융도, 제조도, 에너지도 아니다. 이들은 너무나 중요한 산업이지만 세상을 놀라게 하는 재주는 IT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IT는 식상해질 틈이 없다. 수많은 빅테크 기업이 새로운 제품을 주기적으로 내놓고, 이들이 자사 제품을 공개하는 타이밍을 겹치지 않게 세팅해 놓았기에 달마다 뉴 띵(New Thing)이 나타난다. 모두가 혁신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특기할 만한 진일보는 있기 마련이고, 언론과 유튜버는 이를 너무도 많이, 상세히 다루기에 언제나 업계 텐션은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그래서 먼저 블로그를 시작했다. 어찌 됐든 테크 관련된 내용을 뭐라도 적으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캐릭터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포스팅한 글들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맞나. 제품에 대한 정보 전달은 굳이 내가 아니어도 이미 많이 한다. 그렇다면 기술의 디테일한 부분을 파고들어야 할 텐데 그만큼의 전문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지만 전공자나 프로와 비교하기에는 내 수준은 턱없이 부족하다. 전문성을 원하는 층을 만족할 수 있을만한 지식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품 리뷰를 원활할게 할만한 자금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관심사가 지극히도 방대하다. 늘 무언가를 배우고 익힌다. 하나에 엄청난 전문성을 지니고 있지 않지만 다방면에 애정이 깊다 말할 수 있다. 심심할 때마다 위키백과나 나무위키에 들어가서 여러 정보를 뒤진다. 요즘은 컴퓨터의 작동 원리나 수학에 관심이 크게 생겨 ChatGPT를 혹사시키는 중이다. 뭐 그런다고 이 친구가 지칠 리는 없겠지만. 경제, 정치, 사회, 역사, 문화, 음악, 미술, 온갖 것들에 관심이 정말 많다. 호기심이 너무 왕성한지라 얕은 지식들이 내 뇌에는 많이 머물고 있다. 그런데 굳이 테크 하나에만 쏟겠다고? 뭔가 이상하다. 그것은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닌 나로 승부 볼 자신이 나에게 없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아직 테크에 관해 많은 글을 쓴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냥 뭐라도 쓰련다. 아니 뭐든지 쓰자. 그냥 아무 얘기나 지껄이는 재담꾼이 되련다. 뭐 아무렴 어떤가. 난 이렇게 온갖 것에 애정을 쏟는데 뭐 어떡하냐. 이제 궁극적인 목표는 명망이 있으면서 독창적인 커뮤니케이터가 되는 것이다. 멋지게 포장하니 커뮤니케이터지, 그냥 떠벌이다. 잘은 모르겠고 그냥 글과 말로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떠벌이가 내 목표가 됐다.
어제는 새로 나온 M4 아이패드 프로, 오늘은 비전 프로에 대해서 떠들어 봤다. 그럼 내일은 뭘 써야 하나. 유튜브 얘기라도 써 볼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