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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Mar 18. 2020

위로를 받았던 기억

심규선(Lucia)-석양 산책

봄바람이 살랑 불고, 카페는 말랑말랑한 BGM으로 진득하게 따뜻한 날이다. 갑자기 무릎을 탁! 치기라도 한 걸까? 수진이 젊은 무용가 같은 소리를 한다.


"이 노래 슬픈데... 봄에는 항상 들려오더라. 이 곡을 듣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 첫 직장을 그만둔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6개월 만에 취직한 정규직 직장을 박차고 나왔었어!! 그때만 해도 '평생직장이다', '한번 들어가면 뼈를 묻어야 된다' , '전공대로 취직하기 어려운데 후회하지 않겠어?' 등의 언어폭행이 자연스럽게 낯설지 않은 시대였고, 자연스럽고 낯설지 않게 상처를 받았었나 봐. 새벽에 이 노래를 듣는데, 목소리가 너무너무 포근해서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는 기분이 들어서 눈물이 났었을까?"

이 노래는 바로 '심규선(Lucia)-꽃처럼 한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였다. 처음엔 목소리에 반해서 전곡을 들으며 밤을 새웠다는 수진은 아이돌을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팬카페는 가입할 엄두도 못 내보고 홀로 알음알음 검색하다 그해 봄 심규선(Lucia) 아티스트의 콘서트를 혼자 보고 왔다고 한다. 투덜투덜한 목소리로 5년 전엔 지금처럼 피켓팅이 아니어서 그때가 좋았다며 할머니 같은 소리를 하는 수진이다.

"그런데 그 콘서트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슬플 때 항상 생각이나, 힘을 낼 수 있게 된다?! 슬픔은 가장 솔직한 감정이라고 그래서 '슬픔'이라는 감정을 담아낸 곡이 꽤 많다고... 저격을 당한 기분이 들었어. 눈물이 자꾸 났는데 솔직하게 눈물을 받아들인 순간은 잊히지 않아. 아마도 그날의 눈물로 충분히 위로를 받았기에 그렇지 않았을까? 지금도 앞으로도 콘서트 장의 위로를 잊지 못할 거야." 그리운 건지 아련한 건지 수진의 두 눈망울이 잠시 톡 터질 것 같아 보인다.


내 앞에서 슬픔을 터트리지는 말아줘를 담아 수진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수진, 그럼 요즘 꽂힌 심규선 아티스트님의 곡은 뭐야? 추천해줘!"


"음... '석양 산책'이라는 곡이야 가장 최근에 나온 앨범의 수록곡이지! 불현듯 슬픔이 저문다는 가사에 콕 꽂혀버렸지 뭐야~" 질문에 슬픔을 방해받았지만 급하게 빵긋한 웃음을 지으며 수진은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그날 수진이 추천해준 '석양 산책'을 듣고는 내일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다. '석양은 내일도 모레도 불현듯 저물어 갈 거야. 수진이 위로를 받았던 콘서트 장에서의 기억이 불현듯 더 많은 날을 위로받게 되었던 것처럼 말이야.'라고 전해주고 싶다. 하지만 수진에게 소중한 기억을 나의 조언으로 망치게 될까 봐 괜스레 어설픈 말은 그만둬야겠다. 수진에게 슬픔이란 감정에 솔직해질 용기를 얻은 답례로 내일은 '좋은 곡 추천해줘서 고마워'라는 마음을 주어야지.

2015.03 note 2, 2020.03 ipad pr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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