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살아야할텐데
나는 비교하는 삶을 비판했다. 그런데 나는 이 비교의 삶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난 비교의 삶 그 자체다. 산 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즈음 하루 5시간 영어로만 진행되는 수업이 버겁다. 사실 새로운 지식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수업보다 버거운건 따로 있다. 최근 수업을 듣는 7명 중 내가 영어를 가장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어야만 하는 현실이 나를 괴롭게 만든다. 뱉고 나면 어리둥절해 하는 강사의 표정은 고통스럽다. 반면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관광통역 수업은 즐겁다. 남들보다 좀더 자신있는 분야 남들보다 곧잘 하는 것 같은 생각에 내내 파이팅이다. 황당한 건 이것도 얼마 안 간다는 거다. 곧 잘하는 사람과 스터디를 하면 풀이 죽는다. 와, 나 이런 사람이구나. 끔찍하다. 비교의 잣대를 올려 놓고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만족해한다. 이 비교의 잣대에서 밀려나면 슬픔과 고통이 밀려온다. 내가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평수 하나에 일희일비 하는 동네 엄마들을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내 행복의 기준은 내 스스로 세우고 채워나가야 할 것인데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 하나 이루자고 지금껏 버텨 왔는데 스스로의 민낯을 까고 보니 허무하기 짝이 없다. 스스로의 성취감은 있기나 한걸까.
나는 도대체 누구의 인생을 살아온 걸까. 깊게 고민해 봐야겠다. 과부하 상태의 두뇌 속으로 끝도 없이 몸을 던지는 영어단어들로 사고의 흐름이 완전히 막혔다. 그래도 생각해볼 문제다. 나는 나를 살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