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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gative to Positive Oct 24. 2018

[퇴사여행③] 다름을 인정하는 것  

오만함은 이제 그만

예정대로라면 8월 10일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인생은 예측불허 아니던가? 회사도 관뒀으니 걸리는 것 하나 없는 나다. 일단 근처 숙소부터 잡고 치앙마이 시내를 돌아다녔다. 다채로운 컬러 속 그만의 차분함과 단조로움이 그만의 질서를 이루고 있다. 내 눈에 흥미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방콕 번화가에서 봤던 탐앤탐스가 치앙마이의 핫플레이스 님만해민 중심부에 있다. 한국서 탐앤탐스 존재는 미약해 보였는데 태국에선 그 세가 상당해 보인다. 한국의 내가 이곳의 나와 같을 순 없는 것처럼.


8월 13일. 썽태우를 타고 치앙마이 곳곳을 돌아보기로 했다. 에어포트플라자에서 님만해민으로 가는 노선이었다. 앞자리에 다소 몸이 불편해 보이는 미국 노인이 탑승했다. 그는 내가 앉아 있는 끝자리를 원하는 듯 눈치였다. 나는 바로 맞은 편 자리로 옮겼고 고맙다는 눈인사가 이어졌다. 그는 ‘내가 치앙마이다’ 하는 모습의 노인이다. 냉장고 바지와 그리고 하와이와 태국을 넘나드는 묘한 야자수 셔츠. 공교롭게도 그는 하와이 출신이다. 가족들은 하와이에 있고 혼자 이곳에서 산다고 했다. 1981년부터 태국 여러 지역을 돌다가 이곳에 정착했다는 그의 얼굴이 굳어진다. 왠지 모를 슬픈 뒷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침묵을 깨고 “태국에서 가장 좋은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는 약간 망설이다가 “역시 치앙마이”라고 말했다. 나 역시 “치앙마이가 좋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는 자신의 친구가 푸켓에 사는데 물가가 너무 비싸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푸켓의 한 해변에서 공항까지 가는데 1200바트를 냈다고 했다.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갑자기 맞은편에서 중년 남성이 어눌한 영어로 ‘코사무이가 좋다’고 말한다. 멕시칸처럼 보였던 그는 중동 국가 오만에서 왔다고 했다. “코사무이에 갔냐”고 물었다. 그건 아니란다. 자신의 친구가 갔는데 아주 좋다고 했다고 한다. ‘나도 사진으론 봤는데’라고 속으로 읊조렸다. 오만 출신 중년 아저씨는 아들 셋, 두딸과 여행 중이었다. 그는 치앙마이에 오기 전 방문한 파파야가 더 좋단다. 하긴 오만 같은 중동 지역에서 대부분 산간지대인 치앙마이가 매력적일 것 같진 않다. 멋진 비치가 있는 푸켓이나 코사무이, 파파야 같은 곳이 더 매력적일 거다. 같은 장소라도 개인의 경험치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거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오사카보다 교토를 좋아하고, 태국의 방콕보다 치앙마이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의 공통점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이란 거다. 아마 내 주변에 빠르게 흐르는 시간들에 지쳐서 그랬을 지 모르겠다.

하와이 출신 할아버지는 어느새 말을 멈추고 그만의 사색에 잠겨 있다. 어느새 나는 오만 남성의 가족들에 둘러싸여 있다. 흡사 ‘내가 오만에 온 건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아저씨의 영어는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다행히 히잡을 두른 둘째딸이 영어를 곧 잘 했다. 이 여성은 아저씨와 나 사이에서 통역을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저씨는 내 여정에 대해 무지하게 궁금해 했다. 나는 푸켓에서 이곳에 왔고, 그리고 방콕에서 싱가폴로 갈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말이 없던 첫째 딸로 보이는 여성이 나더러 ‘알바니아’에 가보란다. 영어로 설명은 어려운데 좋으니까 가보란다. 말수가 적어 보이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이 여성의 말에 왠지 모를 신뢰가 간다. 이야기 도중 ‘무슬림과 일부다처제’란 주제가 등장했다.


나는 오만도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냐 물었다. 아저씨는 4명까지 결혼할 수 있는데 자신은 한번 했다고 말한다. 썽태우에 탄 아저씨 아들딸이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맞는 것 같다. 지식인을 검색해보니 오만에선 돈만 많으면 네명의 부인을 둘 수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아저씨는 오만에서 아주 부자는 아닌가 싶다. 하긴 그는 서울에 3성급 호텔이 얼마냐고 물었다. 대단한 부자라면 5성급이 얼마냐고 물었을 것 같다. 3성급 호텔 숙박비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7~8만원 정도라고 했더니 저렴하다며 좋아한다. 포털에서 검색해보니 오만의 GDP가 전 세계 47위로 꽤 높다. 오만에선 부자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그는 한국을 모른다. 한국인의 오만이었나보다. 중동사람은 무조건 부인이 많고 부자라고 생각한 것도 오만이다.

 

그나저나 나는 그에게 “오만이 아프리카 대륙에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저씨가 “두바이 옆”이라고 정정했다. 나 역시 한국을 모르는 그에게 “한국은 모르지만 일본은 알지?”라고 물었다. 쌤쌤이다. 그렇게 대화가 무르익을 때쯤 이들 가족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왠지 모르게 정이 갔던 이들 가족에게 “잘가”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렇게 썽태우는 다시 출발했다. 잠시 사색에 잠겼다.


잠시 전까지만 해도 이 작은 썽태우 안에 기약 없는 여행 중인 한국인 여자, 하와이 출신 노인 그리고 오만의 6명의 가족이 탔다. 그리고 이 작은 썽태우 그 자체로 ‘세계’가 됐다. 작은 회사 안에서 몇 안 되는 조직원들과 별일도 아닌 일로 마찰을 일으켰던 지난 일들이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워딩(wording) 하나하나 해석해 가며 기분 나빠하고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하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다시는 작은 우리 안에 갇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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