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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gative to Positive Oct 24. 2018

[퇴사여행⑨] 역설 속 싱가폴 여행

파트너 있어 흥분 시험대 올라기 우울

싱가폴 2일차. 도보투어 집합 장소로 갔다. 놀랍게도 내 또래로 보이는 한국인 여성도 보인다. 수많은 아시아인들이 투어를 신청한 가운데 한국인은 우리 둘이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여행파트너끼리의 운명적인 만남이다. 그녀 역시 회사를 관두고 ‘휴식’차 싱가포르에 왔다고 했다.  그녀 역시 인생의 ‘터닝 포인트’쯤에 서있는 것 같아 보였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차분하고 정돈된 이미지와는 다르게 털털한 매력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싱가폴 현지인이 영어로 진행하는 투어는 느리지만 빠르게 진행됐다. 차이나타운, 클락키, 리틀인디아, 머라이언파크 등이 일정에 포함돼 있었다. 단순 여행이 아니라 투어 중간중간 보이는 식물에 대한 설명부터 생활정보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일례로 싱가폴에 자동차를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대형버스 없이 도보투어로 진행되는 이유가 있었다.


인터넷에서 얻는 정보와는 차원이 다른 ‘현지인 정보’가 있어 좋았다. 리틀인디아를 지나 도착한 ‘아랍스트리트’에는 ‘이슬람 사원(술탄 모스크)’이 보였다. 이태원에서도 힘겹게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나오는 우리나라 이슬람 사원과는 차원이 달라 보였다. 대로변에 위치한 이슬람 사원은 멀리서 봐도 화려한 건축 양식 탓에 눈에 확 띄었다. 사원 주변엔 수많은 이슬람교도가 구름떼처럼 모여 들었다. 싱가포르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자마자 느꼈던 그때의 멜팅팟 현장이 눈앞에서 다시 펼쳐졌다.


오랜만의 여행파트너와의 여정이다. 머라이언파크에선 머라이언상에서 뿜어 나오는 물을 마셔보겠다며 컨셉샷을 찍고, ‘보트’를 타고 싱가폴 야경도 마음껏 즐겼다. ‘마리나베이’를 중심으로 싱가포르의 밤은 화려하게 빛났다. 야단스럽게 화려한 홍콩 야경과는 달리 여유가 느껴지는 야경이었다. 동행인이 있어서인지 하루 일정이 더욱  알차게 느껴졌다. ‘관광 밀도’로 따지면 치앙마이에서 5일쯤 보낸 듯했다. 그녀와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10인실 게스트하우스 룸 안에는 처음 본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내 옆 침대에는 새로온 커다란 눈의 네팔 친구가 나를 또렷이 응시한다.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졌다. 그녀의 사연이 기구하다. 당시 네팔은 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상태였고 그녀는 베니라는 지역에서 왔다고 했다. 그녀의 가족은 교회를 운영하고 있고 지역 주민들이 그곳에 모여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고 했다.


네팔 지진 이후 여러곳에서 구호 물품과 기금을 보내고 있지만 그녀가 있는 지역으로까지 도움은 미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87%가 흰두교를 믿는 네팔에서 ‘기독교’가 설 자리는 그리 크지 않으며, 정부 지원을 받기 힘들다는 게 그녀의 요지였다. 그녀와 그녀 가족은 막무가내 같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이들을 위해 싱가폴 지역 교회를 돌며 도움을 요청할 거라고 했다. 수작업으로 만들었다는 촌스러운 카드 2장을  내밀기에 10달러에 구매했다. 그리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 지 SNS에 글도 올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걱정 가득한’ 표정의 네팔 친구가 또 다시 말을 건넨다. 방값을 내야 하는데 돈이 없다는 거다. 게스트하우스에 사정을 해봐도 ‘먹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푼이라도 줄여 조금이라도 더 보고 먹고 싶은 가난한 여행자가 시험에 드는 순간이었다.딱히 이타심이 넘치는 성격도 아닌데 그녀를 도와주지 않으면 평생 죄의식을 느낄 것만 같았다. 퇴직금이 입금되기 전까지 고갈될 여행비로 걱정스러웠지만 이유 모를 사명감에 이끌려 그녀의 오빠와 아버지, 그녀의 방값까지 치러주었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한거야’란 생각을 하며 말이다.


오후쯤 한국인 친구를 만나 마리나베이로 향했다. 싱가폴을 상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 건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쌍용건설이 지었다. 화려한 외부와 마찬가지로 내부에는 소비를 부추기는 화려한 레스토랑과 옷가게가 즐비해 있다. 싱가폴에 가면 꼭 사야 한다는 TWG 브랜드의 카페도 보인다.


프라다 등의 명품 매장으로 둘러 싸인 TWG카페에서 티 한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하얀 보자기로 감싼 테이블 위의 TWG 로고가 또렷이 박힌 고급스런 느낌의 티 없이 맑은 흰색의 주전자, 찻잔은 지갑을 마법처럼 열게 했다. 10인실 게스트하우스 룸에 묵지만 이정도 사치는 용인하고 싶었다.


고급 예식장에서 일한다는 그녀의 취향에도 빗겨나가지 않은 선택이었다. 우리는 메인코스와 티가 함께 서빙되는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연어가 들어간 메뉴에 적당히 대중적인 듯한 티 메뉴를 함께 주문했다. 순백의 테이블 보 위의 고급스러운 기구들에 차를 담아 주거니 받거니 마시니 잠시나마 꼬질꼬질해진 배낭여행자의 신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네팔 소녀의 얼굴이 떠올라 못내 마음이 무거웠지만 순간을 마음껏 즐겼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야경에 취한 후 마리나베이 수영장이 바로 옆에 있는 바로 향했다. 테라스쪽으로 나가자 더 는 화려할 수 없을 것 같은 싱가포르의 화려함이 내 눈을 의심케 했다. 연속으로 터져 나오는 감탄사, 주문한 칵테일이 달콤하게 목으로 넘어간다. 금새 취기가 올라왔고 분위기도 한껏 고조됐다. 마음에 있는 말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우리는 어느새10년 지기 친구가 돼있는 듯했다. 나는 언제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으로 심란했고 그녀 역시 ‘일’ ‘결혼’에 대한 생각으로 심란한 듯 했다. 나는 그녀에게 “호주까지 꼭 가보고 싶은데 지금 가야할 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녀는 호주란 단어가 나오자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온갖 스토리를 동원하며 그녀는 내가 호주에 꼭 가야만 하는 이유를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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