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지 못할 것이 당연한데 그래도 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괜히 돈만 쓰는 거 아냐?' 스스로를 믿지 않으면서도 콩닥콩닥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일. 회사와 기숙사. 반복되는 무채색 일상에 활기를 주는 색, 주황색 물감이 한 방울 튀는 일. 결국 포기하게 될지라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일.
나에게는 그 일이 스노우보드였다.
왜 스노우보드를 타고 싶었을까. 스키장에 다녀온 친구의 얼굴에서 반짝이는 빛이 보여서였을까. 나무 판때기에 두 발이 묶인 채 몸을 맡기고 미끄러져 내려가는 기분은 어떤지 궁금했다. '나는 잘 살고 있을까?' '이대로 괜찮을까?' 2년 차 직장인의 권태기에서 벗어나야 했다. 전환이 필요했다.
쉽지는 않았다. 남들은 하루, 이틀이면 배우는 기술을 나는 거의 한 달을 배웠다. 요가처럼 몸의 일부를 땅에 붙이고 운동하는 것을 선호하는 나에게는 무리였을까.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발을 움직일 수 없는 게 무서워서, 경사에 미끄러지는 것이 무서워서. 그만 둘 핑계를 찾고 있는 나에게 "이 정도면 평지야" 친구의 말은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하는 냉수였다. 오기가 생겼다.
"이 정도 높이가 겁난다면, 더 높은 곳에서 내려가 보면 괜찮을 거야"
초보자 코스조차 무서워 엉덩방아만 찧고 있는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썰매를 타도 될 정도의 완만한 경사였다. 하지만 나는 탈 수 없었다. 내가 넘어질까 봐. 넘어져 다른 사람들이 다칠까 봐. 무섭다고 말하니 친구가 더 높은 코스로 가보자고 제안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눈이 새하얗다. 새하얗다 못해 창백하게 질려있다. 여길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리를 덜덜 떨고 있는 내 낯빛처럼. 두려움에 한 달 동안 열심히 배웠던 기술을 다 잊어버렸다. 턴(turn)은 말할 것도 없었고, 왼쪽, 오른쪽으로 보드를 움직이는 펜듈럼(pendulum) 조차 시도하지 못했다. 그저 보드 위에 우두커니 서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흘러 내려왔을 뿐이었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길 반복했다.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 서 있기가 어려울 땐 울타리를 붙잡았다. 앞에 사람이 있어 지나가지 못할 땐 구석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내려왔다. 느릿느릿 달팽이가 기어가듯 움직였지만 결국 해냈다. 친구가 했던 말처럼 초보자 코스는 이제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바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를 낼 수는 없었지만, 자세만큼은 제대로였다.
이십 대의 내 삶도 그랬을 것이다. 아직 모르는,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 많아서 어려웠을게다. 일 년, 이 년 해가 바뀌고, 나이를 먹으면서 그때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걱정할 것도, 고민할 것도 없이 쓰윽 해내게 되었다. 실수했던 순간, 실패했던 경험이 굳은살이 되어 단단해졌다.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제 더 이상 무섭지 않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곧 겨울이 올 것이다. 스키장이 개장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제2의 삶을 준비하는 나는 또 도전이 필요하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일. 새로운 삶에 색깔을 입혀주는 일이 필요하다.
함께, 보드 타러 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