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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 Mar 14. 2024

유치원 가는 형아가 되었습니다

 나도 참 주책이다. 얼마 전 친정 엄마가 막내 동생을 훈련소에 보내며 눈물을 흘릴 때 잘된 일인데, 왜 우냐고(장교로 가는 거라 취업까지 한 번에 해결된 입대였다) 웃으며 위로했다. 그런데 나는 고작 차로 10분 거리의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 놓고 혼자 집에 앉아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현승이는 지난 1년 반 동안 어린이집을 엄마와 함께 등원했다. 5살이 된 올해부터는 노란색 커다란 버스를 타고 유치원에 간다. 등원 첫날. 낯선 버스에 혼자 앉아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 사이에서 엄마를 쳐다보는 아이의 눈이 점점 빨개졌다. 엄마랑 떨어지는 것이 처음이 아닌데도 뭐가 불안했을까. 아이는 손으로 눈가를 훔치며 울음을 꾹꾹 눌러 참는 듯했다. 그러다 닦아내지 못하고 넘쳐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아이의 눈물에 나는 무너졌다.


 3월 4일 월요일. 3월 첫째 주는 유치원 신학기 적응 기간이었다. 월요일에는 엄마와 함께 참석하는 신입생 OT가 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향하는 아이는 마냥 즐거워 보였다. 싱글벙글한 표정과 "엄마! 이거 만져도 돼요?" "놀잇감 놀아도 돼요?" 들뜬 목소리, 호기심으로 가득 찬 동그란 눈이 너무 귀여웠다. 유치원 건물 바로 옆에 있던 커다란 놀이터, 넓은 교실, 새로운 장난감이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아이는 선생님이 유치원을 소개하는 동안 내 귀에 대고 "엄마! 언제 끝나요?" "퍼즐해도 돼요?"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물었다. '유치원은 너무 빠른 게 아닐까' '아파트 단지 내에 있던 어린이집에 1년 더 보내는 것이 좋을까' 1, 2월 내내 걱정하고 고민했던 마음이 무색해졌다. 다행이었다.



 화요일은 다른 친구들 OT(인원이 많아서 나눠서 진행했다)로 하루 쉬고, 수요일부터 등원했다. 아이 혼자 버스를 타고 유치원에 가야 하는 첫날이었다. 좋아하는 공룡 옷 대신 원복을 입고, 가방도 스스로 메고 함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똑같은 원복을 입은 아이들이 보였다. "현승아, 우리 친구한테 인사할까?" 아이는 긴장하고 있었다. "부끄러워요" 처음 보는 친구들이라 그런지 엄마 손을 꼭 붙잡고 뒤로 숨었다.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은 아이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엄마, 보고 싶어요"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창문 너머로 아이의 입모양을 읽었다. 엄마가 슬퍼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부러 손을 더 크게 흔들고, 아이에게 웃어 보였다. "이따가 유치원 끝나고 오면 엄마가 마이쭈랑 상어(평소에 현승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가져올게!" 그렇게 아이를 보내고는 주책스러운 모습을 보인 것이다.


 목요일에는 조금 나아졌다. "오늘은 해리(뽀로로 친구 중 하나)가 와요" 아이는 유치원 가는 것을 기대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그것도 잠시, 잘 다녀오라 인사를 건넬 땐 같이 가자고 울먹거렸다.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유치원에서는 버스에서 운 것을 모를 정도로 밝고 신나게 놀았단다. 금요일부터는 완벽히 적응한 것처럼 보였다. 울지 않았다. 엄마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버스 안에서 어디 앉을까 고민하며 좌석 사이를 기웃거렸다. 친구 옆자리를 차지하더니 엄마는 뒷전, 친구와 이야기하느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안 간다고 울 때는 언제고 이제는 쳐다보지도 않네요" 구시렁거리는 내 말에 현승이 옆자리에 앉은 친구 엄마가 웃었다. "아들은 그렇다더라고요"


 매번 걱정은 엄마만 하는 것 같다. 분리불안은 아이가 아니라 내가 겪고 있는 건가 보다. 아이는 예상했던 것보다 적응이 빨랐고, 유치원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내 눈에는 여전히 아기인데 점차 어린이가 되어갔다. 종알종알 오늘 유치원에 뽀로로가 왔다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식은 뭘 먹었고 뭐가 맛있었는지, 친구랑 어떤 장난감으로 놀았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유치원 선생님을 따라 율동을 척척해내고, 처음 배우는 영어 노래를 "에이, 비, 씨, 디" 어눌하지만 음정은 비슷하게 곧잘 따라 부르는 아이가 대견했다. 5살. 좀 더 넓은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간 아이를 응원한다. 오늘도 버스를 기다리며 엄마를 향해 미소 짓는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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