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어떤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환영받는 존재라고 느끼며 자랍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경험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 안에서, 혹은 사회 안에서
‘나의 존재는 당연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받으며 성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메시지에 익숙해진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쓸모 있는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 감각은 분명 어린 시절의 생존 전략이었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도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책임감이 강하고
일에 몰입하며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 합니다
맡은 역할을 철저히 수행하고
대체로 신뢰받는 어른이 되지요.
멋진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늘 불안이 있습니다.
혹시 실수라도 하면?
누군가가 실망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만 무너지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가 부정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듭니다.
그래서 이들의 책임감은
그저 성격이 아니라 생존 전략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이 방식의 생존이 오래 지속되면
자신을 조금씩 소모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성과는 있지만, 성취는 짧고
잠깐의 인정 뒤에는
다시 다음 목표를 향한 압박이 밀려옵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되지요.
쉬려 하면 죄책감이 따라붙고
멈추는 순간
무가치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애쓰고 있는 걸까요?
무엇을 증명하면,
언제쯤 나는 나로서 괜찮아질 수 있을까요?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쓸모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기에 의미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마음은 쉽게 납득하지 않습니다.
오래도록 ‘쓸모로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믿음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믿어주는 일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더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덜 증명해도 괜찮다는 감각을
익히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의 기대에 꼭 맞게 살지 않아도
때때로 실망을 안겨주어도
모자란 형태로 존재해도 괜찮다는 믿음
그걸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용서해 주는 것
그게 바로
관계 안에서 나를 지키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