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 그는 왜 공감하지 못하는가

'눈치'만 발달하고 공감 능력은 사라진 이유

by 황규진

늦은 밤 집에 돌아왔을 때, 힘든 일을 마치고 저녁 데이트를 위해 만났을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건 따뜻한 위로다.


하루의 모든 스트레스와 상처를 내려놓고, 그저 내 편이 되어줄 한 사람의 품. 당신이 그에게 바랐던 것은 아마 그런 소박한 위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그의 품에 안기는 대신, 자신의 감정이 마치 분석 대상처럼 차갑게 다뤄지는 경험을 했을지 모른다.


그의 이런 반응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의 마음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눈치'만 발달하고 공감 능력은 사라진 이유


어느 날 저녁, 당신은 직장에서 있었던 일로 마음이 상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얼굴에는 고단함과 속상함이 묻어난다. 소파에 힘없이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는 당신을 보고, 그는 금세 알아차린다.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안 좋네."


그 순간 당신은 어쩌면 '역시 나를 신경 써주는구나'라며 작은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우리는 공감과 눈치의 결정적인 차이를 발견한다.


그가 감지한 것은 당신의 마음속 고통 그 자체가 아니다.


그는 당신의 표정과 한숨을 통해 '일상의 평온한 분위기가 깨졌다'는 사실, 즉 '문제가 발생했음'을 인지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평생을 갈고닦아 온 '눈치'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자.


어머니의 기분을 살피는 것이 자신의 생존과 직결되었던 그에게, 다른 사람의 감정 변화는 함께 느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재빨리 원인을 파악하고 대처해야 할 '상황'이었다.


엄마가 한숨을 쉬면 → 뭔가 속상한 일이 있었다 → 엄마 기분을 풀어드려야 한다.


이런 식의 조건반사적 반응 패턴이 몸에 배어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닥칠지 모를 파장을 예측하는 데 모든 감각을 사용하도록 훈련되었다.


진정한 '공감'은 나의 마음을 열어 상대의 감정이 내 안에 들어와 머물게 하는 것이다. 그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그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내면의 연결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을 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대신 굳게 닫은 문틈으로 상대의 동태를 살피는 법만을 익혔다.


그래서 그는 당신이 슬퍼하는 '상황'은 귀신같이 알아채지만, 당신이 왜 슬픈지, 그 슬픔이 얼마나 깊은지는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의 감정을 '처리'해야 할 문제로 여기는 남자


당신은 그의 관심에 용기를 내어 속상했던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오늘 부장님이 여러 사람 앞에서 나에게 면박을 줬어. 너무 억울하고 창피했어."


당신이 원하는 것은 그저 "그랬구나, 정말 속상했겠다"라는 따뜻한 이해의 말 한마디다.


하지만 그는 당신의 감정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동시에, 이 '문제 상황'을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의 머릿속은 당신의 감정이 아닌, 사건의 사실관계와 해결방안으로 가득 찬다.


"그래서 부장님이 정확히 뭐라고 했는데? 그건 부당한 처사니까, 인사팀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처럼 그는 당신의 감정을 함께 나눠야 할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최대한 빨리 없애버려야 할 '결함'이나 '문제'로 여긴다.


그는 당신의 편이 되어 함께 분노해주는 대신, 상황을 분석하는 제3자가 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유능한 컨설턴트가 되려 한다.



그의 이런 태도는 선의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내가 뭔가 도움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당신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당신은 위로 받고 싶었을 뿐인데, 졸지에 유능하지 못하고 감정적인 문제아 취급을 받은 셈이 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원했던 것은 마음의 의사였지만, 그는 기술자처럼 행동한다. 이 과정에서 당신의 감정은 존중받지 못하고, 당신은 다시 한번 혼자라는 느낌에 휩싸인다.



텅 빈 자신을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


그의 차가운 반응에 지친 당신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호소한다고 상상해보자.


"아니, 해결책은 필요 없어. 그냥 내 마음이 이렇다는 걸 알아주고, 그냥 좀 안아주면 안 될까?"


이것은 연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본질적인 요구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것이 가장 어려운 주문이 될 수 있다. 진심 어린 포옹과 위로, 즉 아무런 판단이나 분석 없이 오직 감정으로만 연결되는 그 순간을 그는 병적으로 두려워한다.


왜일까?


다른 사람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당신의 슬픔에 공감하려면 자신의 슬픔과 만나야 하고, 당신의 불안에 공감하려면 자신의 불안과 마주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오랫동안 방치되고 억압되어 온 감정들로 혼란스럽거나, 혹은 진짜 자아가 있어야 할 공간이 텅 비어있다.


그에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 공허함과 혼돈을 직면하는 끔찍한 일이다.


그가 당신의 감정을 '문제'로 규정하고, 논리적으로 '처리'하려 드는 모든 행동은 결국 자신의 텅 빈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방어기제다.


감정의 교류를 차단하고 이성적인 분석에만 몰두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연약한 내면이 노출될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



그는 당신에게 공감해 줄 수 없다.


당신에게 공감하는 순간, 그가 평생 외면해 온 자기 자신의 초라한 모습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쌓아 올린 벽은 당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다.


이 슬픈 진실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에게서 정서적 친밀감을 얻으려는 헛된 기대를 내려놓고, 이 관계의 본질적인 한계를 직시하게 된다.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다. 위로받고 싶어 하는 것도, 공감받고 싶어 하는 것도, 감정적으로 연결되고 싶어 하는 것도 모두 정상적이고 건강한 욕구다.


문제는 그가 그런 욕구에 응답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이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