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언어가 당신을 지치게 하는 법
그와의 대화가 끝나고 나면 깊은 탈진 상태에 빠진다.
분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대화였는데, 무엇 하나 해결된 것 없이 오히려 당신만 나쁜 사람이 되어 있다. 대화의 과정은 언제나 안갯속처럼 답답하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느껴진다.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이지만,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발목을 잡고, 움직이려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그는 결코 논리적인 토론에서 당신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대신 당신을 지치게 만들고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언어의 늪을 판다.
당신이 관계의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때, 그는 결코 그 사실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그가 하기로 약속했던 집안일을 하지 않았다. 설거지가 그대로 싱크대에 쌓여 있고, 분리수거도 며칠째 방치되어 있다.
"어제 이거 하기로 약속했잖아."
당신은 사실에 기반하여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그의 대답은 "응, 못했어. 미안해"가 아니다.
"왜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해?"
순간 당신은 당황한다. 공격적이라니? 그냥 사실을 말한 건데?
"지금 나를 비난하는 거야? 당신은 항상 그런 식으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더라."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실'에서 '당신의 공격적인 말투와 태도'로.
이제 당신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그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입장이 아니라, 그를 공격했다는 누명에 대해 자기 자신을 변호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아니야, 나는 그냥..."
"공격적이지 않았어, 사실을 말한 거야."
당신은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그가 파놓은 감정의 함정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그는 사실관계가 명확한 주제에서는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증명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는 당신의 내면, 즉 감정과 의도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만약 그의 논점 흐리기에 넘어가지 않고,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고 하자.
"아니야, 내 말투는 중요하지 않아. 지금 문제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거야."
당신이 이렇게 대화를 원점으로 돌렸을 때, 그는 '과거'라는 이름의 무기고에서 낡았지만 효과적인 무기를 꺼내 든다.
바로 '너도 그랬잖아'라는 책임 분산의 기술이다.
"내가 설거지 한 번 안 한 게 그렇게 큰 잘못이야? 당신은 지난달에 내 전화 안 받은 건 기억 안 나?"
갑자기 지난달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때 당신은 회사 회식 중이어서 전화를 받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는데.
"당신은 약속 시간에 늦은 적도 있잖아. 나는 그때 뭐라고 안 했는데."
이 말속에는 교묘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나 역시 완벽하지 않지만, 너 또한 완벽하지 않으니 나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 기술의 목적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책임의 총량을 나누어 자신의 몫을 줄이는 데 있다.
그의 잘못이 100이었다면, 과거의 일을 끄집어냄으로써 그의 잘못을 50으로 줄이고, 당신에게도 50의 지분을 떠넘기는 것이다.
이제 대화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는 지저분한 법정 다툼으로 변질된다.
"그건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잖아."
"아니야, 둘 다 연결된 문제야."
당신은 그의 잘못을 지적하다가, 어느새 자신의 과거 행동을 해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당신은 이 무의미한 소모전에 지쳐, 원래의 문제를 덮어두는 쪽을 택하게 된다.
당신이 그의 모든 회피 기술을 뚫고, 그를 논리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을 때, 그는 자신의 마지막 보루로 숨어든다.
바로 자기 연민의 성이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깊은 한숨과 함께 이렇게 말한다.
"알았어. 내가 다 잘못했어."
목소리가 급격히 풀이 죽는다.
"나는 역시 부족한 사람인가 봐. 일도 힘든데, 집에서 이런 것 하나 제대로 못해서 당신한테 이런 비난이나 받고..."
이제 그의 어깨가 축 처진다.
"그냥 내가 문제다. 나 같은 사람이랑 사니까 힘들지."
이 순간, 모든 권력 관계는 역전된다.
그는 약속을 어긴 가해자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자책하는 비련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당신은 정당한 문제를 제기한 사람에서, 지쳐있는 그를 사소한 일로 괴롭히는 무자비한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당신의 정당한 분노는 순식간에 그를 향한 미안함과 연민으로 바뀐다.
'아, 내가 너무 몰아붙였나?'
'그냥 넘어갈 걸 그랬나?'
'저렇게 자책하게 만들 일이었나?'
당신은 결국 "아니야, 내가 너무 심했어. 피곤한데 미안해"라며, 오히려 그를 위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대화의 늪의 종착지다.
당신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감정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인 채 탈진한다.
그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당신의 위로를 받으며, 관계의 현상 유지를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당신은 이 무의미한 과정을 반복하며, 그와의 깊은 대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를 점차 포기하게 된다.
"뭘 말해도 소용없어."
"어차피 바뀌지 않을 거야."
"그냥 참고 살자."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소통 창구가 닫힌다. 당신은 점점 더 깊은 고립 속으로 빠져들고, 그는 편안한 현상 유지 속에서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지켜낸다.
당신이 지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목표로 한 결과였다.
《나는 왜 함께 있어도 외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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