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사랑이 아닌, 정서적 착취의 연쇄

엄마에게 착취당한 감정을 연인에게 보상받으려는 심리

by 황규진

지금까지 우리는 그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상처와, 그 상처가 만들어낸 심리적 구조를 살펴봤다.


그렇다면 그 상처 입은 내면은 당신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것이 과연 사랑일까?


때로 사랑의 가장 따뜻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그의 의존과 당신의 헌신은, 사실상 보이지 않는 착취의 사슬일 수 있다.



엄마에게 착취당한 감정을 연인에게 보상받으려는 심리


그가 유독 힘들고 지친 날을 떠올려보자.


회사에서 상사에게 질책을 받았거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자존심이 상한 날, 그는 당신에게 다가와 아이처럼 하소연하며 위로를 구한다.


"오늘 정말 힘들었어. 부장님이 나한테만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당신은 그의 편이 되어 함께 분노해준다.


"정말 너무하네. 당신 잘못이 아닌데 왜 그래?"


그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괜찮다고 다독여준다.


"괜찮아, 당신은 잘하고 있어. 그 사람이 문제야."


당신은 이 순간, 자신이 그의 유일한 안식처라는 사실에 사랑의 의미를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장면의 이면에는 또 다른 심리적 역학이 숨어있다. 바로 '보상 심리'다.


어린 시절 그는 어머니의 감정을 돌보는 역할에 충실했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을 보살핌 받은 경험은 전무하다.


위로와 무조건적인 지지, 칭찬과 격려를 받아야 할 시기에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다른 사람을 돌봐야 했던 그의 내면에는 채워지지 않은 거대한 정서적 결핍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성인이 되어, 바로 그 결핍을 채워줄 존재를 무의식적으로 찾아 헤맨다.


그리고 연인인 당신에게서 그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적인 어머니'의 역할을 기대한다.


어떤 잘못을 해도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어떤 투정을 부려도 전부 받아주는 사람

나의 상처를 온전히 자신의 아픔처럼 여겨주는 사람


그는 당신과의 관계를 통해,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착취당했던 자신의 감정을 보상받으려 한다.


당신이 베푸는 사랑과 위로는 그에게 있어 연인과의 동등한 교감이 아니라, 뒤늦게 받는 심리적 양육에 가깝다.



당신의 사랑을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는 연료로 사용하는 법


당신이 개인적인 성취를 이루었을 때를 생각해보자.


승진을 했거나, 오랫동안 준비한 시험에 합격했을 때, 기대하던 출장을 가게 되었을 때 그의 반응은 어땠나?


"축하해."


한마디 건네고는 곧바로 화제를 돌린다. 어딘지 모르게 무관심하거나, 심지어는 그 화제가 빨리 다른 것으로 넘어가길 바라는 듯한 인상을 준다.


반면, 그가 사소한 성공을 거두었을 때는 어떤가?


"오늘 회사에서 한 발표 정말 잘됐어! 다들 내 아이디어에 감탄하더라고."


마치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당신의 전폭적인 관심과 찬사를 요구한다.


한 시간 넘게 그 이야기만 한다. 당신이 다른 화제로 넘어가려 하면 "아, 그런데 오늘 부장님이 내가 만든 자료 보고 또 뭐라고 했는지 알아?"라며 다시 자신 이야기로 돌린다.


이런 불균형은 그가 당신의 사랑을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는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인 그의 자존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생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밑 빠진 타이어처럼 끊임없이 외부에서 공기를 주입해 주어야만 간신히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


당신의 관심, 헌신, 칭찬, 그리고 당신이 그를 위해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바로 그 타이어에 주입되는 공기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애적 공급물(Narcissistic Supply)'이라고 한다.


그는 당신이라는 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제공하는 그 연료를 사랑한다.


당신의 존재 이유는 그의 자존감을 유지시키는 데 있으며, 따라서 당신의 개인적인 성취나 행복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당신이 그에게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은 그의 연료 공급이 끊길 수 있다는 위협으로 느껴진다.


당신의 사랑은 그에게 있어 함께 나누고 키워나가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차가운 방을 데우기 위해 태워지는 땔감에 불과하다.


땔감이 모두 타버리고 나면, 그는 또 다른 땔감을 찾아 나설 뿐이다.



당신은 그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


이 모든 사실을 깨닫게 된 당신의 마음 한편에는 어쩌면 연민과 함께 희미한 희망이 자리잡을지 모른다.


'그가 그렇게 상처가 많은 사람이니, 내가 더 많이 사랑해주면 언젠가는 그 상처가 아물고, 그의 텅 빈 마음도 채워지지 않을까?'


당신은 그의 불행한 과거를 치유하는 유일한 '구원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다.


이것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숭고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착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신은 결코 그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


그의 공허함은 잔에 물을 채우듯 사랑을 붓는다고 채워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 자아 구조의 근본적인 결함이기에, 밑 빠진 독처럼 당신의 모든 에너지를 집어삼킬 뿐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당신이 사랑을 주면 줄수록, 그는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될 뿐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당신이 그의 구원자 역할을 자처하는 순간 당신은 그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조력자'가 된다는 점이다.


당신이 그의 모든 감정을 받아주고, 그의 자존감을 끊임없이 채워주는 한, 그는 결코 자신의 문제를 직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당신의 헌신적인 사랑이, 역설적으로 그가 자신의 공허함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치유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당신은 그의 어머니도, 그의 상담사도 아니다. 당신은 그의 동등한 파트너다.


그를 구원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당신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고, 그를 영원히 미성숙한 아이로 남게 할 뿐이다.


그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오직 그 자신뿐이다.


이를 인정하는 것은 사랑의 포기가 아니라, 당신과 그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는 가장 성숙한 형태의 사랑이며, 당신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