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끈한 남매라는 이름의 벽
그의 세상에서 가장 큰 그림자를 드리우는 존재가 어머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당신은 어쩌면 문제의 본질을 파악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을 지치게 하는 그림자는 하나가 아니다.
당신은 그가 유독 그의 누나나 여동생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그저 우애 좋은 남매라고, 가족적인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안심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관계가 단순한 우애를 넘어, 당신과의 관계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와 그녀만이 공유하는 비밀스러운 농담, 당신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역사, 그리고 당신을 미묘하게 배제하는 그들의 끈끈함.
당신은 그가 당신 앞에서는 좀처럼 하지 않는 깊은 속마음을, 그의 누나나 여동생에게는 너무나도 쉽게 털어놓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와 통화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자.
당신에게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그녀와 통화할 때는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거나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누나, 나 오늘 회사에서 진짜 힘들었어. 부장님이 나한테만 왜 그러는지..."
목소리가 완전히 달라진다. 당신 앞에서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 어린아이 같은 투정이 나온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 정말 모르겠어."
당신이 같은 말을 했을 때는 "너무 생각하지 마"라고 대충 넘어갔으면서, 그녀에게는 진짜 고민을 털어놓는다.
이 모습을 보며 당신은 깊은 의문과 서운함에 빠진다.
'왜 나에게는 저러지 않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누나나 여동생은 그에게 있어 '어머니의 안전한 대리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여성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고 위로받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연인인 당신과의 관계에는 '성'이라는, 그에게 있어 '어머니에 대한 배신'을 연상시키는 위험하고 불편한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
반면, 남매 관계는 사회적으로 성적인 관계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따라서 그는 배신감이나 심리적 죄책감 없이, 여성과 가장 내밀한 감정을 교류할 수 있다. 그의 여동생이나 누나는 그가 가면을 벗고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줘도 되는, 유일하게 허락된 '안전지대'다.
그는 당신과의 관계에서 느껴야 할 정서적 친밀감을, 바로 이 안전지대에서 대신 채우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정서적 교감을 다른 여성에게 빼앗기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의 여동생이나 누나는 단순히 그의 형제가 아니다. '어머니 중심의 가족 시스템'을 유지하고 수호하는 보이지 않는 동맹이다.
그녀는 이 가족의 불문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머니의 평온이 최우선'이라는 규칙과 '아들(오빠)은 원래 부족하니 챙겨줘야 한다'는 역할을. 그리고 그녀는 당신 또한 이 규칙에 순응하기를 기대한다.
당신이 그와 함께 사는 집에 새로운 가구를 들여놓으려 할 때, 그녀는 웃으며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어머, 이런 건 엄마 스타일이 아닌데."
당신이 그에게 집안일을 분담하자고 이야기하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오빠가 원래 그런 거 잘 못하잖아. 내가 가끔 와서 도와줄게."
그녀는 그의 미성숙함을 감싸고 당신의 노력을 무력화시킨다.
그녀의 모든 조언과 도움은, 결국 당신을 이 가족 시스템의 외부인으로 규정하고,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그녀는 당신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될 자격'이 있는지 시험한다.
그녀의 인정을 받는 것은, 이 가족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한 중요한 관문처럼 느껴진다.
이 과정에서 당신은 그와 연애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 전체와 힘겨운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이 보이지 않는 동맹 속에서 안락함을 느끼고, 당신 혼자서 그들 모두를 상대해야 하는 외로운 싸움을 하게 된다.
가족 모임에서, 그와 그의 누나/여동생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을 상상해보자.
"야, 너 기억나? 초등학교 때 엄마한테 혼날까봐 내 뒤에 숨었던 거."
"아, 맞다! 그때 네가 울면서..."
둘이서 깔깔거리며 웃는다.
당신은 그 대화에 끼어들 수 없다.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 그들이 공유하는 눈빛은 수십 년의 시간을 함께 겪은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들만의 암호다.
그 순간, 당신은 마치 외국 영화를 자막 없이 보는 것처럼 완벽한 이방인이 된다.
그는 종종 자신의 누나나 여동생을 이상화하여, 당신과 비교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내 동생(누나)은 이런 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했을 텐데."
이 말의 이면에는 '당신은 왜 내 동생(누나)처럼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지 못하는가'라는 잔인한 물음이 숨어있다.
하지만 당신은 결코 그의 누나나 여동생이 될 수 없다.
당신은 그들의 유년 시절을 공유하지 않았고, 그 가족만의 독특한 소통 방식을 알지 못한다.
그가 만들어 놓은 '가족'이라는 기준은, 당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그는 당신에게 그 벽을 넘어 자신을 이해하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그 벽을 허물고 당신에게 다가오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결국 이 끈끈한 남매 관계는 당신에게 깊은 패배감을 안겨준다.
당신은 그의 삶에서 어머니에 이어, 또 다른 강력한 경쟁자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들만의 견고한 역사 앞에서, 당신과 그가 함께 만들어갈 미래의 역사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힘이 없어 보인다.
당신은 점점 더 외로워진다. 연인이 있으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혼자라는 느낌이 든다.
그의 세상에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모든 사람들이 당신보다 그에게 더 중요한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