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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Nov 09. 2023

달리기, 긴장과 떨림에 대하여

어느 체육대회의 기억

중학교 2학년, 체육대회가 있기 며칠 전이었다. 종목별로 참가할 학생 목록을 만드느라 고심하던 체육부장이 다가왔다.


"네가 100미터 달리기 선수로 나가줘."

"그게 무슨 소리야?"


한창 축구니 농구니 누가 어느 종목에서 뛸지 정하느라 며칠 동안 교실이 떠들썩했다. 운동 좀 한다는 친구들은 벌써 주요 인기종목에 배치된 후였다. 나로 말하자면, 체육대회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달리기는커녕 그 어떤 종목도 내세울 것이 없을뿐더러, 계단에 앉아 응원을 하는 것마저 귀찮아하는 체육대회 혐오자였으니까. 학급회의 때 응원용 단체 티셔츠를 만들자는 의견에도 꿋꿋이 반대편에 손을 들었던 나다. 평소 회의 시간에는 조용히 연습장에 낙서나 끄적이는 것이 나의 임무였지만, 그날만큼은 발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반대한 학생이 나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번 입고 안 입을 건데, 굳이 만들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나에게 달리기 선수를 하라니?! 느닷없는 제안에 황당해하는데, 체육부장은 진지했다.


"꼴찌해도 돼! 그냥 나가기만 해 줘."


초등학교(그땐 국민학교였지만) 때는 운동회날 모든 아이들이 운동장 한 바퀴를 돌며 허들도 넘고 장애물도 통과해야 했다. 다 뛰고 나면 선생님이 3등까지 손등에 도장을 찍어주고 선물도 줬다. 첫 운동회 때 낑낑대며 그물 장애물을 통과하다가 꼴찌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도 연필 한 자루는 받았다. 엄마는 두고두고 놀렸다. 6년 내내 운동회는 가장 두렵고 싫은 날이었다.


꼴찌를 하는 게 얼마나 창피한 일인데, 그래도 상관없다니! 체육부장 넌 뭘 모르는구나.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거절했지만 녀석은 물러서지 않았다. 선수로 뛸 사람은 모자라고 100미터 달리기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높지 않으니 못해도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끈질기고 극진한 간청에 결국 굴복한 나는 반 친구들에게 절대로 기대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고 다녔다.


"나 100미터 18초야, 알지?"


달리기를 못하기도 하지만,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 차례가 오길 기다리는 동안 떨리고 긴장되는 기분이 몹시 싫었다. 달리기를 할 때만이 아니라, 수업시간에 발표를 할 때나 체육시간에 실기시험을 볼 때,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해야 할 때도 항상 긴장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후들후들거렸다.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건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엄마는 그저 크면 괜찮아진다고 했다.


그 해 체육대회는 좀 특별했다.


체육대회 당일, 100미터 달리기 출전 선수(?)들과 함께 차례를 기다리는데 그런 상황에서 항상 느껴지던 그 두근거림과 긴장감이 말끔했다. '탕'하는 총소리와 함께 나는 달렸고, 짧은 시간 동안 반 친구들은 내 이름을 열심히 외쳐주었다. 결과야 아무래도 좋아서 몇 등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꼴찌였는지 아닌지 조차도 모르겠다(1등이 아닌 건 확실하다).


다만 기억에 선명히 남은 것이 하나 있었다. '떨지 않는 나'였다. 그날, 비로소 그동안 내가 왜 떨렸던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떨지 않을 수 있는지도.


그 이후로 긴장될 때마다 그날의 체육대회를 떠올렸다. 다른 사람들도, 나 조차도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그날의 100미터 달리기를.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조금 편해졌다.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하려고 할 때 긴장되고 떨리는 법이다.


지난봄, 어린이집 알림장에 딸 서현이가 요가자세를 하고 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엎드려서 소자세를 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들고 선생님을 보고 있는 표정이 묘했다. 입술이 어색하게 삐죽 올라가고 눈은 뭔가를 호소하는 듯했다. 알림장에는 '서현이가 처음에는 쑥스러운지 못하겠다고 표현했'다고 쓰여있었다. 만 세 살이 넘어가면서 아무 데서나 엉덩이를 흔들던 아이는 사라지고 걸핏하며 '부끄럽다'라고 표현하기 시작한 딸내미였다. 그날 통화를 하면서 아이에게 물었다.


"서현아, 어린이집에서 왜 요가 못하겠다고 했어?"

"부끄러워서!"

"왜 부끄러웠어?"

"음... 잘하고 싶어서 부끄러웠어."


나는 웃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알아낸 것을 우리 딸은 벌써 알고 있었다. 날 닮아 사람들 앞에서 숫기도 없고 자신 없어하는 성격이지만, 아이도 아이만의 답을 찾아낼 것이다. 어쩌면 나보다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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