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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Feb 14. 2024

텅 빈 저녁 시간

세 살 아이를 두고 해외파견 간 엄마 이야기

엄마 해외파견 다녀올게


3. 텅 빈 저녁 시간


캄보디아에 파견되자마자 회의와 출장과 쏟아지는 업무들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첫 한 달은 주말에도 전혀 쉬지 못했다. 새벽부터 일정을 시작해서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밖에서 윗분들을 모시고 저녁식사까지 먹고 숙소로 들어오면 혼자 쉴 수 있는 시간은 잘 때까지 두어 시간 정도였다.


그런데, 혼자 남은 그 두어 시간이 나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갑자기 텅 비어버린 시공간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그토록 원하던 '나만의 시간'이 아니던가! 육아를 하는 사람이야 말로 '저녁이 있는 삶'이 간절히 필요하다. 그동안의 저녁은 아이와 놀아주고, 유튜브를 보겠다, 젤리를 먹겠다 조르는 아이와 실랑이를 하고, 간신히 저녁을 먹이고, 물을 뒤집어쓰며 씻기고, 도망 다니는 아이를 잡아 옷을 입히고, 애원하며 양치를 시키고, 자기 전에 읽은 책을 또 읽고 또 읽어주고, 토닥토닥과 간질간질을 하며 한 시간 넘게 재우다 드디어 아이가 고른 숨을 뱉으며 잠이 들면, 나도 더 이상 눈을 뜰 수가 없어서 그대로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파견 후 첫 한 달은 업무도 많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 간의 긴장과 갈등, 진행되지 않는 일들, 너무 많은 이해관계자들과 요구사항들 등등 온갖 이슈들이 휘몰아치던 시기였다. 격무에 시달리던 어느 날 동료 한 명이 물었다.


"일이 많아서 힘드시죠?"

"아니요. 애 키우다 와서인지 오히려 한가하네요."


우스갯소리로 대답했지만, 정말 그랬다. 업무는 어떤 상황이든 해결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고, 일이 많아도 숙소에서 혼자 쉴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몸의 피로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나는 혼자 앉아서 아직도 생생한 아이의 보들보들한 볼살, 몽실몽실한 엉덩이, 재잘거리는 목소리, 품에 파고들 때의 포근함 같은 것들을 그려보고 또 그리는 텅 빈 저녁 시간이 힘들었다. 그립다는 말이 자꾸 그리고 그려서 그립다인가 싶었다. 저녁이 있어도 채울 것이 없으면 소용이 없구나 싶었다.




아이는 잘 지냈다. 엄마를 찾지도 않는다고 했다. 전화를 하면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고 장난치고 도망 다니느라 바빴다. 매일 영상통화를 걸었지만, 아이랑 얼굴을 보고 대화한 적이 거의 없었다. 부끄러워서? 어색해서? 재미없어서? 슬퍼서? 서운해서? 삐져서? 화나서? 아이의 감정을 이리저리 추측해 보지만 휴대폰 저편에서 장난만 치는 아이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남편말이 맞았던 걸까? 아이는 정말로 괜찮은 것일까? 충분히 사랑해 주는 할머니와 아빠가 있으니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문득 서운해진다. 육아 정보를 찾아보면 만 세 살 무렵의 아이들은 만지고 안아주면서 같이 몸을 부대끼고 놀아줘야 안정감과 친밀감을 느낀다고 한다. 핸드폰 화면 속에서만 등장하는 엄마는 이제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일까? 아이가 엄마를 잊어버릴까 봐, 오랜만에 만나 어색해하며 몸을 피할까 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지난여름, 아이랑 둘이 일주일간 집에서 격리를 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아이에게 코로나19 자가검사를 해보니 양성이 떴다. 증상은 없었지만 혹시 몰라서 남편도 집에 못 오게 하고 아이와 둘이 일주일을 보냈다. 키즈카페의 도움조차 받을 수 없는 독박육아 기간이었다. 격리기간이 끝나가던 어느 밤, 답답함을 참을 수 없어서 아이와 마스크를 쓰고 아무도 없는 놀이터로 나갔다. 그네를 밀어주고, 놀이터를 뛰어다니며 술래잡기 놀이를 했다.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고요한 아파트 숲 사이로 울려 퍼졌다. 너무 시끄러운 거 아닌가 걱정하면서도 그 웃음소리를 계속 듣고 싶었다. 문득 한참을 뛰던 아이가 멈춰 서서 하늘을 가리켰다. 구름 없는 깨끗한 밤하늘에 달과 별들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저것봐! 반달이야!"

"정말! 별도 있네? 우리 누워서 별 볼까?"


놀이터 바닥에 같이 누워서 반짝이는 별들을 보던 그 순간이 종종 생각났다. 그때는 힘들어서 빨리 지나가길 기다렸던 격리기간이었지만, 온전히 아이와 둘만의 시간을 보냈던 일주일이었다. 그날의 기억들이 떠올라서 어느 날은 혼자 펑펑 울었다.




파견된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 기관에서 심리상담을 지원해 줬다. 파견 초기에 업무상 일어난 여러 갈등들 때문에 직원 복지 차원에서 지원해 준 것이지만, 나는 오히려 아이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의 불안한 심리를 주로 상담했다. 상담 첫날 내 상황을 설명하고 나니 상담사가 물었다.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어떠세요?"

"그냥... 보고 싶어요."


'보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 눈물이 후드득 쏟아졌다. 아무리 스스로 이 상황을 설명하고 납득시켜도, 아무리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냥 아이가 보고 싶었다. 그 마음 하나만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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