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치열할 때에는 글을 쓸 여유가 없어서 미뤄두었다가,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삶이 보잘것없어서 쓸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많은 경험을 한 것 같은데, 어째서 단 한 줄도 글이 되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까? 메모들을 뒤적여보고, 읽었던 책들을 다시 펼쳐보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다.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은 지 벌써 두 시간이 넘었다. 하루에 일정한 시간 동안 글을 쓰라는 조언은 실천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데 아무거나 써보아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글뭉치만 돌아다닐 뿐이다. 두 시간을 아무 성과 없이 흘려보낸 후에도 글을 썼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글을 쓰기 위해, 경험을 더 해야 할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더 이상 무슨 경험을 또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창 밖에는 봄 햇살이 부지런히 대지를 덥히고 있다. 개나리와 목련은 진작에 봉오리를 터트리고 한들거린다.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이고 발이 땅을 밀어내는 감각을 느끼다 보면 생각이 날까.
공허한 시간을 채우는 건 유튜브 영상이다. 영상 속 사람들도 부지런히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다. 방구석에 앉아 무한정 스크롤을 내리는 나 같은 사람들의 좋아요를 받아 그들은 오늘도 세상을 바쁘게 살아갈 테지. 나는 이렇게 손을 놓고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어딘가에 떠밀려가듯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떠밀려 간다. 나 역시 시간이라는 거대한 강줄기 위에 올라탄 하나의 인간일 뿐이니까. 노를 젓지 않아도, 닻을 올리지 않아도,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어딘가로 떠밀려 가기는, 간다.
"인생이란 쓰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려고 있는 것이니까." 릴케는 말했다. 살아야겠다. 무엇을 쓸지 모르겠는 날에는, 몸을 일으키고, 기지개를 켜고, 창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봐야겠다. 오늘은 이렇게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