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곰탱이가 앞으로 나아가는 법
스물다섯 살에,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이미 오래전에 우리 사이는 소원해져 있었다. 그의 열정이 다 식은 아메리카노처럼 씁쓸하게 변한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맥도널드에서 비싼 메뉴를 시켰다는 타박을 들으면서, 과소비하는 생각 없는 여자 취급을 당하던 날, 나는 붐비는 강남역 플랫폼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면서도 그를 붙잡았다. 그는 그런 나를 두고 가지 못했다. 내 옆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흘끗흘끗 의식하는 이 남자가, 수줍게 내 손에 목걸이를 쥐어주며 ‘너한테 주는 건 하나도 안 아깝다 ‘고 하던 그 남자가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을 뼈아프게 깨닫고 있었지만, 그때 나는 그를 떠날 수 없었다.
그가 나를 사랑하던 때에 나는 그의 애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나의 날 선 말들에 그가 받는 상처를 모른 척했다.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는 관계였다. 어느 겨울날, 그가 고백을 하고 내 대답을 기다리며 머뭇거리고 있을 때, 팔짱을 끼는 대신 미안하다고 말했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수줍고 선한 미소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내가 만난 최악의 남자로 남았다. 나의 말투, 생각과 행동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너와는 결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나는 그의 사랑을 우습게 여긴 대가로 모든 것을 감내했다.
내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단어가 있다면 ‘미련’ 일 것이다. 아쉬움과 집착, 어리석음의 의미가 어우러져 있는 이 ‘미련’은 오랫동안 나를 지배해 온 태도였다. ‘미련이 남다’와 ‘미련하다’의 ‘미련’이 동음이의어인 줄 알았는데, 같은 한자어를 쓰는 동의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쩐지 슬펐다. 헤어지자는 말을 세 번째로 들었을 때, 나는 드디어 그를 놓아주었다.
내가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은 그가 아니었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그와의 끝이 아니었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잃고 싶지 않았고, 그와의 끝 다음에 혼자 남겨질 것이 두려웠다. 그에게 나쁜 놈이라고 말했지만, 나쁜 건 나였다. 나는 오랫동안 울었고, 원망했고, 또 미안해했다.
벌써 까마득한 옛 일이다.
미련스럽게 떠나보내야 할 것을 붙들고 있는 건 아직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낀 일을 한 번만 더 해보겠다고 받아들인 것은, 일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닌 불안 때문이었다. 일을 하는 내내 도저히 못하겠다는 마음과 힘겹게 싸워가며 한 발씩 내딛고 있을 때, 이제 그만해 달라는 말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잘해보고 싶었는데, 완전히 망쳐놓고 말았다. 실은 더 이상 잘 해낼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놓지 못하던, 젊은 날의 내가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는 또 울고, 원망하면서, 미안해한다.
내 삶에 반복된 상처들은 대부분 나의 '미련'이 원인이었다. 사람도, 일도 맺고 끊는 것이 참 어렵다. 대상에 대한 애정이 아닌, 나의 불안이 시간을 연장시키고 상처를 더욱 깊게 만든다. 숱하게 반복되어 온 그 미련한 날들이 이제 달라질 수 있을까. 불안이 아닌 애정을 따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