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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Apr 08. 2024

코딱지만 한 나의 마당밭

준비완료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되었다. 한껏 좁혀 놓은 마당밭이 눈에 한가득 들어온다. 나름 농사를 지은 지 20년째다. 농사-라고 하기에 좀 쑥스러운 면이 있다. 겨우 상추나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 호박... 정도를 심어서 여름 밥상을 풍성하게 만들고, 채소를 사는 값을 절약하는 정도일 뿐이다. 코딱지만 한 마당에서도 제법 먹을 것이 나오니 농사를 짓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저 조금 귀찮다. 아니 몹시 귀찮다. 그런데 상추나 고추를 사 먹으려면 돈이 여간 아까운 것이 아니다. 어쩌겠는가. 올해 농사도 이제 준비해야지.


겨울이 지나고 얼었던 땅이 폭신폭신 해지자 고민이 깊어졌다. 작년 토마토 농사는 별로였다. 나름 꽃밭을 넓히고 마당밭을 좁힌 첫 번째 농사여서 철저한 구상을 해서 샤인머스캣 아래 수국옆에 쪼로록 심었다. 뭔 일인지 들인 정성에 비해 수확이 적어 올해는 위치를 바꾸기로 계획해 본다. 꽃밭과 마당밭은 내 소관. 샤인머스켓은 남편 소관이다. 샤인머스켓은 재작년보다는 작년이 나았으나 퍽 자랑할 정도는 아니었다. 남편도 올해 풍년의 의지를 다진다.


회사에 다닐 때 골머리가 아플 때는 풀을 뽑으며 심신의 안정을 취했다. 그랬다 하더라도 여름에 장마가 훑고 지나가면 풀들이 무릎높이로 자라 뱀이 나올 것같이 심난해진다. 얼마 되지 않는다 해도 매일매일 풀을 뽑는 것은 몹시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작년 처음으로 검은 비닐로 밭이랑에 덮었다. 세상 편했다. 매일 젖은 빨래를 탁탁 털어 빨랫줄에 널어 말리다가 건조기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신세계와 맘먹었다. 햇볕냄새가 베인 뽀송한 마른빨래를 사랑했는데 약간의 거부감을 느꼈던 것이 무색하게 건조기는 내게 편안한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밭에 비닐을 사용하는 것에도 거부감이 있었고, 그까짓 것 내가 뽑으면 되지 얼마나 된다고...라고 생각했었는데 작년 한 해 비닐을 덮어 관리를 하니 몹시 편했다. 올해도 모종을 심기 전에 계분을 사다가 흙과 섞어 토양을 영양가득하게 준비했다.

어설프지만, 농사를 지을 준비가 다 되어 간다. 겨우 네 이랑. 올해는 두둑 위에 두 줄이 아닌 한 줄로 모종을 심을 예정이다. 매년 4월이 되지마자 모종을 심었다가 갑자기 불어오는 꽃샘추위에 내새끼들 추우면 어떡하나 걱정을 하다가 농사꾼의 딸에게 물으니 자기네 집에서는 어린이날이 모종심는 날이었다고 했다. 잔인하다. 어린이날 어린 자식들에게 모종을 심으라고 했다니. 요즘 날씨가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 자꾸 모종을 심고 싶지만 딱 15일쯤에 심을 예정이다. 딱 둘이 먹기 좋을 만큼만. 풍성하게, 실하게, 키워보겠다. 악 귀찮다. 

꽃밭에 수국이랑 튤립, 히야신스, 수선화, 매발톱꽃, 영산홍, 꽃잔디, 맥문동, 로즈메리, 라벤더, 블루베리, 그리고 샤인머스켓까지. 키울 자식들이 많다.


나는 코딱지만 한 나의 마당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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