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상희 May 21. 2024

아이들이 기댈 수 있게

참새 방앗간

이래저래 바쁘게 살고 있는 요즘이다. 내 밭도 돌봐야 하고, 포도밭에 알바도 가야 하고, 수업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접수해 놓은 시험도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으- 하기 싫어-라고 말하지만 열심히 하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남편은 나와 나의 밭을 위하여 지줏대를 세워놨다.


딸은 가끔 아빠가 해 놓은 일을 바라보는 나를 보고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하고는 했다. '표정관리!'. 내 표정이 썩어 간단다. 딸이 옆에 있었다면 이번에도 예외 없이 나를 쿡쿡 찔렀을 것이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다. 처음에는 나를 놀리나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는 늘 진심이다. 이번에도 자기가 생각할 때 지줏대를 세울 때가 되었는데 내가 하지 않으니 작정하고 했을 것이다. 힘은 어찌나 좋은지 그가 해 놓은 일을 내가 돌이킬 수 없다. 고맙다고 말은 했지만 바람부는 어느날 나는 폭발했다.


자기는 왜 70년대 아부지같이 일을 하는 것이여?


내가 뭘?


2000년대 아부지처럼 옆에 딱 붙어서 아이가 잘 설 수 있게 도와줄 수는 없었어? 꼭 저렇게 한걸음 물러나서 '그래, 내가 옆에 있으니 서 봐. 나는 지켜만 볼게.' 이래야 해? 아니, 애들이 잘 설 수 있게 옆에 딱 붙어서 도와주면 좀 좋아? 있으면 뭐햐. 의지할 것은 끈 쪼가리뿐인데! 지줏대가 있으면 뭐 하냐고! 애들이 의지할 곳이 없잖아아아아! 왜 다 한 발짝씩 옆에다 지줏대를 세운겨?


아니, 나는 끈을 묶기 좋으라고 그런 거지 다른 건 생각도 못했어.


뭐 사람마다 스타일이 있겠지만 나는 심어놓은 애기들 하나하나에 주줏대를 세우고 다시 끈으로 연결해서 비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끈만 있다면 알아서 크지 않겠는가 하는 거다. 내가 빨리빨리 밭을 가꿨어야 했는데 내 탓이다.


이제 나는 아침 5시 반이면 밭에 가서 풀도 뽑고 토마토와 고추, 가지가 곧게 잘 자라도록 곁가지가 생기지 않게 잘라주고 마당에 돌아다니는 골프채였던 작대기와 끈을 활용하여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도록 했다. 이미 풍성할 대로 풍성한 상추를 솎고(전에는 몰라서 작은 것을 먹고 큰 것을 키웠는데, 큰 것을 먹고 작은 것은 다시 큰 것으로 키워 먹어야 좋다. ) 이제야 살포시 고개를 내민 쑥갓이 잘 자라도록 물을 준다.

샤인머스켓을 매일매일 들여다보며 잔가지를 제거하고 포도알이 맺힌 것부터 잎을 세어 여섯 번째 것이 된 가지를 잘라주었다. 아기 포도알을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화수정리도 해 주었다. 가지들이 예쁘고 풍성하게 자리 잡을 수 있게 집게를 이용하여 모양을 잡았다.


라벤더가 보라보라 하게 꽃을 피우고 수국이 꽃대를 올리고 있다. 금새 나의 밭은 꽃밭이 될 것이다. 이 쪼끄만한 땅땡이도 이렇게 정성을 들여야 예쁘고 풍성해진다.


 그건 그렇고 동네에 어떻게 소문이 난 것인지 참새들이 30마리씩 날아와서 포기 상추 옆에 땅을 파고 둥지처럼 앉아 있고 난리다. 워이~ 하고 쫒고 나서 다시 나와보면 서로 뽀뽀하고 껴안고 난리다. 연인 참새에게 오붓하게 놀기 좋고 맛난 브런치집으로 소문이 난 모양이다.  와서 노는 것은 괜찮은데, 좀 조용히 해 주겠니?

매거진의 이전글 뽀로롱, 싹이 났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