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지만 참, 간사하기도 하다.

기회가 주어지면 반드시 성공시키는 아이

by 나빈작가

내가 꼽아본 인생에서 빛나던 순간들

반 대항전 결승에서 4골을 넣고 우승을 이끈 순간.

원대한 꿈을 품고 대학 자퇴서를 내던 순간.

내가 그토록 원하던 브런치 작가가 된 순간이다.


글의 배경화면 속, 흰 옷을 입은 사나이는 바로 ‘나’이다.


8강부터 벤치 의자를 뎁혀놓고 있던 나는, 결승전에서 부진하던 주전 공격수의 자리를 대신하여 출전할 기회가 생겼다. 난 그리 축구를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1학년 때도 반 대항전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고, 중학생 시절에도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우승을 이끈 경험이 있던 ‘승부사의 기질’만큼은 있는 사람이었다.


1학년 시절 우승
2학년 시절 우승

그렇게 기고만장하던 날들이 지나고서

수능이라는 큰 시험에 직면하였다.

나는 공부도 등한시하지 않고 열심히 한 학생이었다.

‘열심히’만 하였다.

그렇게 그 고3은 4등급이라는 높지도 않은, 그렇다고 공부를 한 게 아닌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대학을 갔다.

밤마다 기숙사 앞 계단에 걸쳐 앉아 산에 걸친 능선들을 한없이 바라보며 노래를 질리도록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한 걸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그게 문제였다.

사실 난 ‘승부사의 기질’을 맹신한 탓에 비교적 높던 내신 성적을 내던지고, 정시를 택했다. 그 결과 4등급을 받고서 그저 그런 대학에 진학한 것이다.


“분명, 난 다를 거야. 여기서 열심히 해서 꼭 다시 일어서면 돼. “


“아니, 1년만 더.. 재수하면은 더 좋은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의 최선을 다하는’ 자아와 ‘승부사의 기질을 지닌’ 자아가 맞붙은 시점은 대학 입학 후 2개월이 지닌 시점이었다. 그렇게 고뇌를 하루라도 하지 않을 수 없던 나날들을 보내고선 결국, 부모님께 자퇴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우리 부모님은 항상 전적으로 날 믿어주시기 때문에 배려 입어 내릴 수 있었던 선택이기도 했다.


그렇게 재수를 결심하고 공부를 한 지 6개월 정도가 흐른 시점. 딱 오늘이다.


재수를 하며 지나치게 반복적인 하루의 권태감, 시험을 칠 때마다 차오르는 열등감. 하기 싫어도 앉아서 할 수밖에 없는 굴욕감. 그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을 직면하고 외면하기도 하였다. ‘승부사의 기질’만을 믿고 살던 내게 그 순간은 나를 진실로 직면하게끔 하고, 죽음. 삶. 인생. 여러 가지의 생각을 곱씹게 해 준, 내 인생 역사상 다시 안 올만큼 사색을 짙게 해 줄 수 있게 한 순간이 된 것 같다.


그래, 다시 원점.

수능 6일 남은 난 오늘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설레는 마음에 공부하기로 계획되어 있던 일들을 전부 미룬 채 문학집에서 손꼽아놓던 작품들을 올리고 반응을 살피며, 기어코 이 글까지 쓰고 있다.

이렇게까지 글을 써야만 했던 이유는 글을 쓴다는 행위가 20년 인생 처음으로 내게 의미를 부여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고독하디 고독한 사막을 걷고 있던 심정으로 문학집을 메모장에 써 내려가며, 언젠간 이 세상에 내놓겠다는 다짐 하나로 버티고 버티던 순간이 오늘 브런치 알림 하나가 나를 일깨워주었다. 받고 둥둥 떠 나니는 듯한 마음으로 원래 작품을 올리곤 했던 카페 회원분들께 자랑을 하고, 신나게 작품을 올리던 순간.



감사하면서도 참, 간사하기도 하구나 했다.

암흑으로 짙어져 가던 내가.

無病短壽 (무병단수)를 꿈꾸던 내가.

한없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 사대부가 된 양,

급하게 가벼워지는 마음의 줄을 잡아당기고 있는 중이다. 아무튼, 나를 승인해 준 브런치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리며 힘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난 적절히 두 개의 자아를 섞어가며 도전할 것이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빈작가 올림-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