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여, 일어나소서

-규제를 깨부수는 시작

by 나빈작가

(시끌시끌한 소리)


누가 선택될까.


나는 늘 그렇듯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 세안을 한 뒤,

가슴을 뛰게 만드는 ‘용사의 갑옷’을 입어본다. 이제 곧 이름이 불릴지도 모른다는 설렘이, 몸 안에서 작은 불씨처럼 타오른다.


“이번 마법사는 무조건 B-783이다.”

“전사는 B-762 아니면 C-011이지!”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수많은 목소리 중, 유독 크게 울리는 A-501의 목소리가 귀에 박힌다.

그는 클라우스 훈련소 최장기 훈련생이다.

4~5번이나 ‘선택의 장’에 올랐지만 매번 외면되었고, 이제는 선택받는 일을 스스로 피하려 할 정도다.

훈련소장과 나이 차이도 얼마 없어, 그 존재감은 이미 교관에 가깝다.


잠시 뒤, 훈련소장이 무대에 오르자 200명의 훈련생이 일제히 박수를 올린다.

나도 그 울림 속에 손을 맞추며 박수를 보낸다.


“자, 훈련생들. 4주 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이제 제17기 졸업생들을 발표하겠다.”


나는 전사 부문 32등.

이번에 ‘선택의 장’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아주 작은 희망만은 포기하지 못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는, 노력 이상으로 잘 되고 싶은 그 욕심 때문에.


“이번 전사 부문 우등생은 C-011. 축하한다.”

“다음, 법사 부문 B-783. 축하한다.”


순간 환호성과 박수가 폭발한다.

너무 과열된 나머지, 몇몇에선 소장을 향한 욕설까지 들렸다.


승자의 이름만이 남는 순간.

반짝이도록 닦아놓았던 투구는 진흙투성이로 바닥에 던져져 있었고,

누군가는 2년간의 수련이 담긴 마법서를 두 손으로 찢고 있었다.


참… 이 기회를 위해 바친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4주 만의 일이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는 이 순간은 수년의 응축된 시간이었다.


나 또한 이곳에 들어오기까지 1년의 준비가 필요했고,

그 1년을 지탱하기 위한 또 다른 4년이 있었다.

짧은 발표 하나로 그 시간이 부정당하는 듯한 허무함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난 실패하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에,

가슴속에 남아 있던 작은 희망의 생채기를 더 깊게 파고들지 않게, 서둘러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C-011과 B-783에게 박수를 보내는 동시에 다짐한다.

내가 빛날 수 있는 ‘무엇’을 찾기만 한다면 된다고. 결과를 받아들이고 성장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서글픔은 남는다.

생각해 보라. 100명 중 32등이면 결코 낮은 성적이 아니다.

그러나 1등만 보이는 세상에서는 1등이 아닌 모든 순위가 ‘실패자’로 취급된다.

나도 이렇게 억울한데, 2등은 어떻겠는가.

분명 공정하지만, 어쩐지 불평등한 시험이었다.


순간, ‘혹시 법사로 전직하면 가능성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시도를 안 해본 것이 아니었기에, 금방 그런 생각을 접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 ‘게임’ 속에서 나를 빛낼 수 있는 방법을,

나만의 개성을 발휘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내가 천장을 보는 건지, 천장이 나를 내려다보는 건지 헷갈릴 만큼 오래 보았다.

허무함이 밀려오자, 결국 브라니우스의 책을 펼쳤다.

그의 철학은 4주간 나를 일깨웠고, 위기에 봉착할 때면 한계를 넘어설 이유를 찾게 해주었다.


시간이 흐르고, 훈련병들이 짐을 싸며 떠나는 소리가 들려와서 나도 부랴부랴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자, 모두들 4주간 수고했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길 바란다.”


교관의 말은 따뜻한 듯하지만, 왠지 형식적으로 느껴졌다.

그가 패배자들에게 이런 말을 17번이나 건넸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나는 또 이 ‘게임’의 규제에 막혀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또 이렇게 굴복하는 건가.


그때 브라니우스의 한 구절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당신이 규제받는 것은 공동체가 만든 규제 때문이 아니다. 내면의 맹목적 충성심이 당신을 옭아매고 있을 뿐이다.


아…

깨달음일까?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용기일까?

그 문장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곧장 ‘선택의 장’을 향해 달려갔다.

뒤에서 교관들이 쫓아오는 기척이 느껴졌지만,

나는 더 빠르게, 더 거칠게 달렸다.


어차피 선택받는 삶을 살 바엔,

차라리 규제를 깨부수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문에 도달했을 때,

새로운 창 너머로—

말로만 듣던 ‘그’가 서 있었다.


그 창 너머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