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명확치 않은 경계선
경직된 채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C-011과 B-783과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프레임 밖 넘어, 인간의 모습.
그 장엄함과, 거대한 물리적 형태를 직면한 나는 코끼리를 마주한 개미가 된 듯 한층 압도됨을 느낄 수 있었다.
선택의 장에 오른 B-783이 상기된 목소리로 자그마하게 속삭였다.
“저, 인간의 선택으로 인해 우리의 수년간의 노력과 인내가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야”
C-011는 그 장엄함 크기에 압도라도 된 듯 목을 빳-빳하게 들곤 자신의 역량을 어떻게든 보이려고 함이 그의 성격이 잘 들어내는 듯하다.
이미 선택의 장으로 들어선 나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만일, 나를 막으려고 이곳에서 소란을 피우게 된다면, 게임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가 나올 것은 정해진 수순이기에.
무대 위에 올라간 두 명의 주인공들은 나의 존재를 깨닫고선, 나즈막히 소리쳐 내었다.
“어이, 여기는 선택받은 자만 올라올 수 있는 공간이야, 구경 다했으면 그만 돌아가지? “
“이보게, 우리가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한지 모르는가? 일말의 도덕심이 있다면, 그만 내려가 주시게. “
너무나 부끄럽고, 그들에 대한 노고가 나의 이기심으로 인해 무시당하는 것에 대해 미안했지만 못 들은 채하며,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원래 삶이란 게, 지나고 나면 그만 아닌가.
난 여러 번의 실패를 겪어왔으며, 이제 더 이상 규제를 통한 실패엔 싫증이 났기에 그게 악이 되더라도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야만 하였다.
“음… 왜 전사가 두 개지?”
“뭐가 다른 거지.. 크기… 갑옷.. 뭐 다른 게 하나 없네.”
그가 무심코 움직이는 마우스 커서에 의해, 우리는 삶의 나침반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3년과 같았던 숨 막히는 3초의 정적 후,
단지 인간이 좋아하던 빨강 망토를 입고 있다는 이유로, 나는 선택되었다.
그 순간 막이 내려가며, 왁자지껄한 소음이 시작되었다.
“이번 선택의 장은 무효야!”
”어떻게 이런 일이…“
“당장 소집회의를 열어, 이번 건에 대해 징계를 논해야 합니다!!”
다양한 높낮이의 언성과 그 소리의 세기들이 맞물려 나에게 소음으로 들린 순간
나는 ‘클라우스 근원법‘에 의해 자동적으로 훈련생 신분에서 용사 신분으로 승격되었으며, ’ 김춘식‘이라는 이름도 내려졌다.
이 사태를 두고, 여러 억울한 사람이 많았지만, 선택을 받은 이상
제4조(선택된 캐릭터의 지위 변화 및 권리 부여)
1. 캐릭터가 이용자에 의해 선택된 경우, 선택 시점을 기준으로 해당 캐릭터에게 부여되어 있던 훈련생 신분 및 이에 따른 모든 권한·의무는 즉시 소멸한다.
2. 선택된 캐릭터는 기존 시스템 규율에서 분리된 독립적 개체로서의 지위를 부여받으며, 이는 선택한 이용자만이 접근·활용할 수 있는 전속적 이용 권한을 포함한다.
3. 선택된 캐릭터는 독립 개체로서 고유한 권리와 의사능력을 보유하며, 해당 권리는 선택한 이용자의 조작·지시에 의해 침해될 수 없다. 다만, 세계관이 정한 절대 규정에 한해 예외가 인정될 수 있다.
난 더 이상 그들이 임의적으로 명령하고 처벌할 수 있는 병사가 아니었다.
그렇게 그들이 만들어논 규제로 인하여, 나는 내 한계를 극복하기로 하였고, 그들의 규제로 인하여 난 내가 그리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사태는, 법이란 게 무엇인가 사유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 규제로 인해 예방으로 인한 공익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울과 같아서 보이는 것은 분명 비추지만, 비추지만 보지 못하는 것들이 분명 있다.
책임을 지우자면, 입법자들의 탓도 있지만 아마도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난 그 허점을 파고든 것이며, 규제로 통제받는 내가 아닌, 나의 ‘자아’가 이끄는 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된 이유이다.
‘브라니우스의 책’ 그것에 담긴 초인에 관한 정의. 나를 뛰어넘는 나. 삶에 적용하기 시작하며, 내 삶의 방향은 더욱 명확해지며, 더 이상 급류에 떠밀리지 않게끔 줄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눈을 감았다 떠 보아라.”
마음이 내게 외쳤다.
넓은 들판과, 하늘과 땅이 맡붙은 끝없는 경계선이 나를 위해 소리치고 있는 듯하였다. 이제 난, 더 넓은 세상에 초라하게 작은 나만을 믿고 내 세상을 창조해 나가야 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