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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호 Jun 24. 2019

'우리 민족끼리'의 허상

같은 민족 아이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6.15 남북 공동선언문 1항]


지난 15일. 전국 각지에서 6.15 남북 공동선언 19주년 행사가 열렸다. 대체로 6.15 선언의 정신을 계승하여 우리 민족끼리 평화통일을 앞당기자는 내용이다. ‘우리 민족끼리’는 마지막 분단국가이자 한민족으로 이루어진 남북한 사이의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외세의 침략이 잦았던 역사를 공유하는 남북한 사람들이기에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은 참 따뜻한 느낌이 든다. 우리 민족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서둘러 통일을 이룩해야 할 이유를  부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듣기에는 좋지만 뚜렷한 실체는 느껴지지 않는다. 국내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가정한다. 가해자는 한국인이다. 틀림없는 ‘우리 민족’이지만 국민들은 ‘우리 민족끼리’ 일어난 사건이니 적당한 선에서 매듭짓자고 말하지 않는다. 반면 지난 2017년 한 스리랑카인이 화재 현장에 뛰어들어 90대 할머니를 구했고, 최근에 우리 법무부에서 그에게 전격적으로 영주권을 주었다. 이 사람은 ‘우리 민족’이 아니지만 국민 모두가 그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우리 민족’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조금 더 확장해 본다. ‘우리 민족’에서 더 나아가 ‘우리 아시아인’이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일본, 중국은 같은 아시아인인데 사이좋게 지내면 좋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우리 인류’라고 하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존 레논의 노래 [Imagine]에 나오는 것처럼 모두가 서로를 아끼고 보듬어준다면 참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 민족’은 생각보다 별다른 의미가 없으며, 어떤 당위성도 설명해 주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용어를 즐겨 쓰는 쪽은 북한이다. 주민들의 선동과 대외 홍보를 담당하는 웹사이트 이름이기도 하다. 그들이 이 표현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남한 국민들에게서 한민족으로서의 동질감을 강하게 느끼기 때문인가? 그랬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북한은 그들 주도의 적화 통일을 원한다. 하지만 이미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이식받아 발전시켰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진영의 국가들과 동맹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 입장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다. 북한은 우리 정부를 ‘남조선 괴뢰 당국’이라 부른다. 미제의 식민지라는 뜻이다. 일제 강점기를 경험한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우리가 또 외세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시나브로 반미 감정을 일으킨다. 미국을 멀리하고 우리 민족의 손을 잡아라. 노골적이지 않게 한국과 그 동맹들의 사이를 이간질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용어로 ‘우리 민족끼리’를 활용하고 있다.




우리 민족이냐 아니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누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무얼 했느냐는 것이다.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는 지탄받을 것이다. 누군가 선행을 했다면 감사를 받을 것이다. 그가 어떤 민족이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1950년 6월, ‘우리 민족’ 북한은 소련의 지원을 등에 업고 남한을 전격 침략했다. ‘다른 민족’ UN군은 우리 군과 함께 피 흘리며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냈다. ‘우리 민족끼리’의 허상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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