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 죽어도 아이스! 카페에 가면 날씨가 어떻든 무조건 음료는 아이스로 시켰다. 따뜻한 음료가 뭐죠? 그런 나약한 건 안 키웁니다. 한 겨울에도 어떻게든 찬 음료를 시키고 얼음 컵을 빨개진 손으로 이리저리 옮겨가며 들곤 했다. 여름엔 더욱 당연하게 아이스를 시켰다. 금방 속이 들끓는 타입이다 보니 빠르게 내용물을 비우고 차가운 얼음까지 다 씹어 먹고 나서야 속이 시원했다. 사람들이 SNS에서 우스개 소리처럼 말하는 얼죽아 협회가 실제로 있다면 정말로 가입을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스 음료만 마셨다.
여름휴가 때 부산 광안리에서 찍은 커피 배경 바다 사진
원래도 고집이 센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실 것을 고르라는 부분에서는 이상하게 찬 음료만을 고집했었다. 사실 목이 약해서 조금이라도 오래 말을 하거나 찬 바람을 쐬면 바로 편도가 부어오르는데, 이런 고집은 까끌해진 목을 진정시키는 것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목구멍이 깔깔해진 채로 바득 바득 얼음까지 씹어 먹고 나면 얼얼해오는 입안이나 어금니가 이러면 좋지 않다는 것을 살짝 깨닫게 해 주지만 여전히 다음번에도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분명 그랬는데, 정말 절대 불변의 취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찬 음료를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따뜻한 것이 좋아졌다. 겨울이 채 오기도 전부터 괜히 따뜻한 음료가 당겨서 마시다 보니 오전에 따끈하게 데워진 라떼를 한 모금 마시면 밤새 쌓인 졸음의 찌꺼기들이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것 같고 저녁에는 커피를 못 마시니 카모마일 티를 마시면 속이 편안해지는 걸 알아버렸다. 따뜻한 차는 피로가 가득 찬 머릿속을 나른하게 만든다. 이 변화의 원인은 나이인 걸까? 아니면 그저 내 갑작스러운 변덕인 걸까? 나도 몰랐던 취향이었던 걸까?
애초에 사람의 마음에는 형체가 없다. 유튜브 세상을 부유하다가 본 불교 강의에서 마음은 '머무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내 의식에 따라, 내가 보고 느끼는 것에 따라 움직인다고 했다. 담기는 그릇에 따라 물처럼 모양새를 바뀌는 것뿐. 무언가가 좋다, 싫다 하는 인식은 결국 형체가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마음의 부산물인 것이다. 대강 흘려들은 불교 강의의 제 의미를 알아 들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찌 되었든 그 말은 뇌리에 박혔다. 마음은 머무르지 않는다.
애초에 사람의 마음에는 형체가 없다. 유튜브 세상을 부유하다가 본 불교 강의에서 마음은 '머무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내 의식에 따라, 내가 보고 느끼는 것에 따라 움직인다고 했다. 담기는 그릇에 따라 물처럼 모양새를 바뀌는 것뿐. 무언가가 좋다, 싫다 하는 인식은 결국 형체가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마음의 부산물인 것이다. 대강 흘려들은 불교 강의의 제 의미를 알아 들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찌 되었든 그 말은 뇌리에 박혔다. 마음은 머무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원인이 어떻게 됐든 무조건이란 건 없는 듯하다. 내가 한참을 좋아했던 사람이 반나절 사이에 미워지기도 하고, 싫어했던 음식이 점차 싫지만은 않게 변하기도 한다. 아이스만을 고집하다 따뜻한 음료를 즐기게 되는 사소한 취향의 변화에서부터 사람에 대한 호감도나 신뢰도 변화, 인간관계가 내가 과거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는 한다. 삶의 운전대는 분명 내가 쥐고 있는데,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휙 틀어지는 것은 전혀 계획되지 않는 듯하다. 얼죽아에서 시작된 호불호의 변화에서 다소 거창하게 흘러간 것 같긴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틀어진 핸들로 예상치 못하게 도달한 곳에서 내가 만날 변화를 잘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