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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나나 Sep 11. 2020

보통의 직장인, 무기력증과 살아가기

근근이 살아가고 있지만, 어쨌든 살아있습니다.


뜬금없는 외근이 잦다. 내일 업체에서 미팅 오겠대요라고 말하는 나에게 당황스러워하는 얼굴로 팀장님이 말한다. “우리 내일 안양 가는데...” 왜 안양에 가는지 누구와 가는지 무엇 때문에 가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내가 질문이 너무 없다고 말하지만 하나하나 물어보자니, 너무나도 잦은 이런 상황에 피곤함만 더 느낄 것 같아서 네, 미팅 옮길게요 하고 대충 대답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대체로 이런 식으로 외근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런 회사에 현재 내가 있다는 것은 내 운명이려니 하고는 순응해보려고, 혹은 바꿔보려고 어떤 종류의 노력이라도 시도해 보았지만, 이제는 귀찮다. 3년의 사회생활에서 배운 건, 정말 사회는 변하지 않고, 회사는 변하지 않고, 내 상사가 가장 힘들다는 것이렷다.


나는 심리학자도 아니고 사회학자도 아닌 그저 작은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피곤에 절어서 퇴근하여 겨우 운동을 다녀오기도 버거운 나날을 견디는 소시민이다. 조금만 쉴까? 하는 생각은 코로나로 전 세계에 역병이 돌면서 버린 지 오래다. 이젠 정말 버티는 수밖에 없다. 회사가 없어지는 게 빠를지, 내가 잘리는 게 빠를지, 아슬아슬한 경주를 하고 있다. 가끔 이직 면접을 보러 가거나, 헤드헌터의 연락을 받을 때 이외엔 미래는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꿈도 없고, 돈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무한도전에서 정형돈의 모습이 기억난다.


꿈도 희망도 없이 지쳐 쓰러지는 평일 밤엔 주말만 기다려진다. 주말이 되면 정말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주말이 오면 하는 일은 침대에 누워있기 정도다. 약속을 억지로 만들면 겨우 나가지만, 코로나로 집에 앉아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우울하고 무기력한 직장인 아무개 씨는 이제 월요일에 회사 사람들의 예의상 묻는 질문에 답이 하나밖에 없다. 주말에 뭐했어요? 집에서 쉬었어요.


행복해야 할 주말에 정말 손가락도 꼼짝하기 힘들 정도로 우울감에 휩싸여 있는 날들이 많아지자 나는 내 무기력함에 이름을 달아주기 시작했다. 불안장애와 우울증으로 인한 무기력증! 나는 아픈 사람이다! 물론 불안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이름을 가진 무기력함은 사람을 좀먹는다. 정말 주말에 몇 시간을 침대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울기만 할 때도 있었다. 움직일 수가 없어... 엄마에게 전화해서 내가 이렇게까지 비정상이노라라고 토로할 때면 엄마는 아무 생각 없이 움직여야 해.라고 말할 뿐이었고, 나는 옛날의 싸구려 로맨스 대사처럼 엄만 내 맘도 모르고, 흥! 하며 서운함의 말을 내뱉곤 했다.


Sns 속의 세계는 너무나 명랑하다. 하지만 과도한 자기 과시 속에는 언제나 그 반대의 것들이 도사리고 있다. 욜로니, 플렉스니 하는 것들로 어떻게든 미래의 불안함을 현재 소비욕으로 충족시키면서 해소한다. 잘살고 싶어서 잘 사는 척한다. 근데 잘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점점 피곤하다. 사는 게 정말 너무 지친다.


지금 젊은 세대를 관통하는 사회적 무기력함은 사회가 정체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특별함을 꿈꾸다 평범한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는 시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나의 세대들은 보통의 존재가 되는 것도 힘드니까. 계층의 이동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내 몸 하나 건사할 만큼 돈을 벌 정도면 좋겠다. 매년 오르는 소비자 물가에 따라 내 월급도 좀 올랐으면 좋겠다. 내 집 마련이 너무 딴 세계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냥 좀 사람답게, 입고 먹고사는 게 이렇게나 지치는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더군다나 코로나 때문에 어디 놀러 가지도 못하니, 갇힌 청춘들이 애달프다. 언젠가부터 내 냉장고에는 가성비 넘치는 수제 와인이나 소주가 있다. 놀러 가는 건 금지당했어도 만원 지하철에 끼여서 회사 가는 건 허락되는 이 이상한 시기에 나에게 허용되는 도피처는 알딸딸하게 들어갈 꿈나라뿐이니까. 오늘도 한잔 마셨다. 강제로 경쟁 사회로 내몰려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불공평한 경주를 내일도 이어나가야 하는 내 삶이 참 고달프다. 밤 중에 쌓여있을 업무가 벌써 부담이다.


그래도 살아있는 목숨인데, 무기력함과 우울증을 꼭 안고 있더라도 살아가야 하니까. 사실 살기 위해 난 살아야겠다고 글을 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기 최면이나 다짐과 같은 맘으로. 어찌 됐든 난 좀 살아야 쓰겠다. 사회가 날 무기력하게 만든 거라면 무기력하게 좀 살 아내 보겠다. 그래도, 살아서 뭐든 해봐야지. 내일 업무가 쌓여봤자 내가 감당할만하겠지.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가능성도 뭣도 없는 거라면 내 맘대로 느리게 살란다. 느릿느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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