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우리
평일 저녁 7시,
두 아이의 저녁을 준비하고 앉을새 없이 바쁜,
가장 분주한 시간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울렸다
항상 모르는 번호는 스팸이나 광고 전화가 너무 많아 대부분 넘겨 버리는데
오늘따라 유독 찜찜함에 번호를 한참이나 쳐다보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OO 대학병원입니다 OOO님 대기했던 언어수업 순번이 되어 연락드렸습니다”
아,, 정말 오래 잊고 있었다
첫째 아이가 41개월쯤 나는 애매하게 나만 아는 아이의 느림을 느꼈다
그렇게 동네 맘카페에서 정보를 얻어 가까운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에 갔고 언어검사를 진행하였다
정보 검색부터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그리고 교수님의 언어 수업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에 대기가 긴 걸 알지만 혹시 몰라 병원 언어수업도 대기했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 그 순번이 되었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그때는 아이가 4살이었을 때였다.
그랬던 그 아이는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이다
언어검사와 센터 수업들,
현재도 현재진행형이지만
그때의 대학병원 언어수업은 모든 엄마들의 염원 같은 것이었다.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고,,,
하지만 대기순번은 너무 길고 아이의 시간은 계속 흐르니 급한 대로 집 근처 센터들을 다니며 이렇게 시간이 지난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초1이 되었고 그 사이 동생도 태어나고 이사까지 하여 새로운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적응하며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옛 동네, 그때의 기억들을,
선생님께는 이젠 다닐 수 없어 대기명단에서 취소해 달라 얘길 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 후 그때의 나와 아이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정말 힘들었고 우울했고 정말적이었다
첫 아이고, 아들이라 그저 힘든 거다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확실히 또래에 비해 느렸고 또 예민하면서 둔했고 내가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활동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낯선 동네서 독박육아를 하며 내 마음 같지 않은 무언가 고립된 육아 속에서 우울감은 점점 커졌었다.
그때의 아이는 뭐랄까, 참 미세하게 또래보다 조금씩 느렸다
많이 느린 것도 아니었고 발달지연도 아니었다
영유아 검진에서도 딱히 느릴 게 없었다.
하지만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게 재활의학과에서 언어검사를 받았고 모두 정상이지만 표현언어만 느리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발음이 좋지 않아 언어수업을 받을 것을 권유받았다.
그때만 해도 아직 어리고 단순언어지연으로 발음교정과 언어확장만 되면 된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어수업은 몇 개월만 하면 될 거라 생각했고,
그렇게 몇 개월만 하면 날 힘들게 하는 모든 상황들이 달라지고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해답을 찾았다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반은 맞고, 반은 아니다.
그렇게 우리의 조금은 더 길고 느리게 돌아가는 육아의 서막이 열렸다
아니, 나와 아이, 또 우리 가족의 조금 더 깊고 단단한 성장스토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