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수채화, 수필 속을 걷다

[명리 수필: 쓸모 있음에 관하여]

by 구덕골 이선생
[파브리아노워터칼라, 신한 물감, 모작 중간 과정]


수채화를 시작한 지 꼬박 15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1주일에 한 장, 대략 40 그린 듯싶다. 소재는 주로 꽃, 과일 등의 자연물인데, 그중에서도 장미가 가장 난해하다. 멀리서 보면 그럴듯하지만 가까이 보면 어딘가 서툰 듯, 가깝고도 어려운 대상이 바로 장미다.


최근 나는 상징계의 이름(자식, 엄마, 선생님)으로 사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를 그림에 쏟아부었다. 활활 타는 불길이 감당이 안 돼 선택한 길인데, 그런 나를 지켜보던 아들이 조심스레 한 마디 건넨다.


"엄마, 그림 그리는 거 재밌어요?

"재밌지."

"그래요? .. 뭔가 생산적인 걸 하는 게 낫지 않아요? 주식을 하던가. 뭐 그런.."

"엄마에게는 예술이 생산적인 활동이야. "


사실 아들은 관성(규칙, 질서)과 재성(돈, 결과)이 강한 아이다. 임자 일주 양간으로 상황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와 다르다. 인성(공부, 문서)이 강한 나는 배움 자체에 관심이 있지만, 아들은 본인이 만든 결과물을 인정받는 데 만족감을 느낀다. 내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


[파브리아노워터칼라, 신한 물감, 모작 완성]


반면 나는 인성 혼잡에 편인 기운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부터 종이를 들고 놀았다. 공교롭게도 중년이 되어서도 종이 만지는 일을 하고 있으니, 사주팔자 무시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낙서하고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에 만족할 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하면 길이 보인다. 아들이 새로운 과제를 던져준 것. 뭔가 생산적인 일이라니, 완성된 그림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다시 글을 써야 하나. 명리에 관심이 많았으니, 사람의 기질을 글감으로 삼으면 좋겠지. 이런저런 고민 끝에 다시 브런치 문을 열었다. 아들의 말 한마디로 시작된 일이지만, 쓸모 있음을 실천할 기회가 되면 좋겠다.


이번 연재는 사실 수필이라 불릴 정도의 글은 아닙니다. 그저 일상의 에피소드를 명리적 측면에서 해석한 짧은 생활문 정도가 되겠네요. 간간이 수채화 보시면 좋으실 것 같아 그림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