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 수필: 기질과 운명에 관하여]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운명은 변한다.
명리학을 배우면서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쉽게 내뱉어선 안 될 말이지만,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말을 수용하는 입장이다. 왜 그런 걸까. 오래전부터 나는 기질 연구에 관심이 있어, 양육 환경과 성격 형성 이론을 접해왔다. 초기 양육 방식이 대인관계 패턴, 감정 조절 능력, 자아상에 깊은 영향을 준다는 이론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동일한 부모 밑에 차별 없이 자랐다면, 성격 형성에 큰 차이점이 없어야 하지 않나. 물론 기질, 경험 등의 변수는 있지만, 한 부모 밑에 자랐다면 필시 통하는 게 많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열이면 열 모두 다르다. 동일한 교육 환경 속에서도 각자가 가진 세계관, 도덕성, 기질 등이 판이하게 다른 것.
물론 심리학에서도 '다름'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상담자가 대상의 결핍을 발견한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 결핍된 요소를 충족하고 보완하려는 당사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상담자의 조언이 변화로 이어지려면 수많은 노력과 지원이 필요한 것. 그러나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 있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알아야 한다.
천성은 바꾸기가 어렵다. 컵은 컵이고 장독대는 장독대일 뿐이다. 물을 담는 컵을 김치 담는 장독대로 사용할 수 없는 노릇이다. 유리컵에 배추를 구겨 넣어 본들 들어갈 리 만무하지 않은가. 유리컵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깨지고, 배춧잎은 짓눌려 상처만 남는다. 그러니 컵은 컵대로 존재하고, 장독대는 그 기능에 맞춰 사용하면 된다.
다만 컵은 대상을 달리할 때마다 용도가 바뀐다. 깨끗한 물을 담으면 음수용 그릇이 되고, 구정물을 담으면 오염된 그릇이 될 것이다. 게다가 꽃을 담으면 화병으로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렇듯 컵의 기질은 변하지 않아도, 컵의 운명은 바꿀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유리, 스텐, 종이 각 재질마다 성질이 다르듯이, 사람도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그 기질이 다르다. 같은 배에서 났다고, 한솥밥을 먹었다고 모두가 같을 수 없다. 가족은 각기 다른 기질과 성격을 가진 집합체로, "너는 누굴 닮아서 그러니"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어렵다.
누군가는 자식을 향해 "병원에서 뒤바뀐 것 아니냐"는 농담을 던진다. 아무리 봐도 닮은 구석(기질)이 없으니, 내 새끼가 맞냐며 불평한다. 이에 나는 농담처럼 건네는 말이 있다. 부모 자식 간에 닮은 건 외모, 버릇(습관), 질병뿐이라고. 생활 습관은 수년간 젖어든 것이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는 어쩔 도리가 없다. 그 외 것들은 각각 특성에 맞게 존재한다. 그러니 모든 존재는 다른 대상을 닮을 수도, 닮을 필요도 없다.
올초 두 명의 친구에게 하반기 운이 좋지 못하니, 늘 조심하라는 말을 일러두었다. 구설수, 사고, 직장 이동 등의 신변 변화가 있으니, 말을 조심하고 갈등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고 조언했다. 며칠 전 두 사람에게 전화가 왔는데, 설마 했던 일들이 현실로 일어났다. 인생에 큰 전환점이 찾아온 것. 다행스럽게 두 사람 모두 해결 방식이 남달랐다. 감정적 폭풍우에 휘말리지 않고 차근차근 해결할 수 있었던 것.
예기치 않은 파도에 휩쓸리기보다 코를 막고 머리를 감싸 쥔 채 마음의 준비를 한 덕분이었다. 생기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동안 문제 상황을 즉시 할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니 참 다행이었다.
명리학은 주어진 조건을 원망하지 않고 나답게 사는 방식을 찾는 데 유리한 도구다. 이에 미래를 점치는 학문으로 과신하면 안 된다. 사주는 삶의 재료를 보관하는 창고이며, 역술가는 창고 안의 재료들을 보여주는 창고지기일 뿐이다.
무엇보다 사주가 좋다, 안 좋다고 판가름하기 어렵다. 사주 원국을 좋게 타고났어도 운의 흐름이 좋지 않다면 힘들 것이고, 오행이 한쪽으로 치우쳐도 운대를 잘 만나면 무난히 살 수 있다. 그래서 사주팔자는 운의 흐름을 파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운명의 흐름은 제어가 어렵지만, 그 운명도 내 안에서 작용한다. 내 안의 기운과 환경적 기운이 충돌하여 벌어지는 것. 그러니 그 흐름에 몸을 맡기거나 역이용하여 기회로 삼으면 된다. 운명에 휩쓸리기보다 맞설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터득하면 될 것이다.
♡ 수필로 시작했으나, 딱딱하고 멋없는 글로 끝났습니다. 이 또한 나의 기질 덕분이지요. 아무래도 나는 재성(융통성)이나 식상(표현)이 부족해서인지, 잘 팔리는 글은 못 쓸 것 같습니다. 그저 진지함을 추구하는 몇몇 분들에게 닿았다면 성공입니다. 찾아봐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