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영대 Jul 05. 2022

가평 계곡의 악몽

삶에 잡초는 없다.

날씨가 맑았다. 며칠째 내린 장맛비로 여기저기서 물난리가 난 것이 언제였는지 모를 정도로 하늘이 맑았다. 아침 일찍 출발을 하면서 같은 차에 함께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날씨 좋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전날 불금을 너무 늦게까지 즐긴 탓도 있었지만 아직은 이불속에 있어야 할 토요일 새벽에 우리는 피곤함도 잊은 채 가평으로 향하고 있었다. 7월 2일 토요일. 행복하고 아픈 기억의 날이었다.


한 달 전부터 토요일에 조기축구를 하는 모임에서 올해는 코로나도 많이 해제가 되었으니 야유회를 한번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운동을 끝내고 땀냄새가 폴폴 나는 옷을 입고 동네 남원 전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나온 이야기였다. 모두들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고 날짜가 잡혔다. 7월 초에 가는 것으로 정하고 장소는 코로나 전에 야유회를 갔던 가평으로 정했다. 사무국장이며 총무가 빠르게 예약을 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참석할 인원을 모으고 가족 동반 여부까지 확인을 하는 절차는 일주일 만에 끝냈다. 가족을 포함하여 20여 명이 참석하기로 했다. 특별회비를 모으고 협찬을 받았다.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워낙 놀러 다니는 것에 익숙했던 사람들인지라 어디든 장소만 정해지면 바로 떠날 수 있었다. 그렇게 준비하고 계획했던, 3년 만의 양유회를 떠나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며칠 동안의 장마로 도로 곳곳이 파여 있어 운전에 방해가 되었지만 목적지로 향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주말 차량이 몰릴 것을 대비해서 조금 일찍 출발했다. 우리가 가는 목적지인 가평이 강원도로 향하는 차들과 방향이 같아 조금만 늦으면 정체로 인해 도로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 것 같았다. 일부 구간을 빼고는 다행히 차는 막히지 않았다.


그렇게 2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밤나무골 유원지' 제법 밤나무가 있는 걸 보니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는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숙소 앞에는 바로 냇가가 있었다. 숙소에서 귀를 기울이면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청명하게 들린다. 어제까지 내린 장맛비 때문인지 물살이 세게 흐른다. 냇가 중앙에는 수심이 2미터가 넘는다고 하니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가끔 사고가 발생하는 곳이라 가평군에서 구급대원들을 배치하고 있었다. 왠지 든든했고 맘껏 자연을 즐겨도 될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청평 시냇물


숙소에 도착하고 먼저 간단히 먹을 것을 찾다가 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아직 다른 팀들이 도착하기 전이라 간단하게 해결하고자 했다. 물가에서 먹는 라면 맛은 일품이었다. 김치가 없어도, 다른 반찬이 없어도 냇물과 산들을 함께 즐기는 것이 최고의 밥상이었다. 이런 맛을 느끼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간단히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물건을 나르러 숙소와 평상을 오갔다. 시냇물을 바라보며 술 한잔 하기 위해 물건을 나르기 위해서이다. 작은 상자를 들고 평상으로 나가는 중에 작은 시멘트 계단을 밟는 순간 "악~~~~"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쿵~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손 쓸 사이도 없이 내 몸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오른쪽 팔이며 팔꿈치 그리고 무릎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순간 정신이 없었다. 어디를 다친 것인지, 머리는 괜찮은 건지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같이 갔던 우리 모임 사람들이랑 숙소 옆에 있던 구급대원들이 놀라서 달려왔다.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보니 팔과 팔꿈치에서 피가 많이 흐르고 있었다. 구급대원들은 피가 흐르는 곳을 빠르게 찾아 지혈을 하고 붕대를 감았다.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하면서 119를 불러준다고 했다. 우리는 119가 필요하면 우리가 부르겠다고 했다. 순식간에 일어나 일이라 모두가 정신없이 멍한 상태로 몇 분이 흘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다친 곳이 어제까지 물에 차 있던 곳인데 물이 빠지면서 지반이 약해져 있었다. 주인아저씨를 불러 상황을 설명하니 빨리 병원에 가지고 한다. 주인아저씨는 오늘 물놀이에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이런 곳에서 안전사고가 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차를 타고 10여분을 달리니 청평읍내가 나왔다. 주말이라 진료를 하는 곳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진료가 가능한 곳을 찼았다. 청평 시내버스 터미널 옆에 있는 '청평 연세의원'


의사가 상처를 보더니 놀러 왔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을 하니 '오늘 술은 못 드시겠네요.'라고 한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오늘 같은 날 술을 못 마시다니. 이래서 병원에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상처부위를 세 바늘 꿰매고 다른 부위는 소독을 하고 난 후 의사가 다시 한번 강조하듯이 말한다. '술 드시면 안 돼요.' 돌아오는 길에 그 말이 아픈 상처보다 더 아프게 다가왔다.




숙소에 돌아오니 일부는 벌써 흥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치료 상황을 설명하니 여기저기서 한잔하라고 술잔을 내민다. 의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거부했다. 사실은 받아서 넘기고 싶었지만 오늘만은 참아야 했다. 그들을 뒤로하고 냇가로 나가 발을 담그고 작은 낚싯대를 잡았다. 고기가 꽤나 있을 듯한 냇가다. 송사리며, 피라미며 냇가를 제집처럼 다닐 듯했다. 물이 시원하고 새로웠다.


  

청평 유원지

우리는 새벽까지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며 보냈다. 나는 대낮부터 멀쩡한 정신으로 새벽을 보내고 있었다. '내게도 이런 날이 있네.' 씁쓸하지만 함께한 그들이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술이 아닌 자연과 사이다에 취하는 듯했다. 여전히 세 바늘이 들어간 나의 팔꿈치는 아팠지만 마음은 저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통증이 더 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들과 함께한 가평의 밤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하나의 추억을 가지고 간다. 악몽과 행복. 그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조 해수탕, 명진 해수탕을 즐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