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더 쌓아볼까?”
“우와~ 잘하는데... 정말 잘하네.”
끊임없이 쏟아지는 칭찬에도 아이의 표정은 심각하다. 멋진 성을 만들겠다고 시작한 블록 쌓기는 성이 높아질수록 삐뚤빼뚤해지기 시작했다. 5번째 줄을 쌓을 때쯤 살며시 올려놓았던 블록 한 개가 떨어졌다. 모양도 많이 삐뚤어졌다. 아이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지만 나는 아이를 계속 칭찬했다. 4살 아이의 솜씨치고는 제법 잘 쌓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
소리를 지르며 쌓던 성을 부숴버렸다. 주먹을 휘두른 탓에 블록이 여기저기로 나뒹굴었다. 아이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고 순간 나도 당황했다.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고 블록을 모았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아~ 잘 만들었는데 왜 그래? 맘에 안 들어?”
“이상해!!!!!!!!!!!!!!!!”
“엄마가 보기에는 괜찮은데...”
“아냐!! 이상해!!!!!!!!”
아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블록을 두어 번 더 쌓았고, 한 번 더 부숴버린 후에야 아이의 마음에 흡족하게 성을 만들 수 있었다. 4살 무렵 아이는 블록을 쌓을 때마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를 냈다. 도화지에 색칠을 하다가도 조금만 선에서 벗어나면 화를 냈다. 그리고는 그림이 보이지 않도록 낙서를 하고 도화지를 찢어버렸다. 그런 일이 잦았다.
“아들아, 조금 삐뚤빼뚤해도 괜찮아. 엄마가 보기엔 너무 멋진데...”
“아들아, 색칠이 잘 안 돼? 삐져나가도 괜찮아. 화내지 말고 천천히 다시 해보자.”
아이의 성질에 나도 화가 나기 일쑤였지만, 좋은 말로 타일렀다. 그런 일이 반복됐지만 아이의 행동은 고쳐지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럴까?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할까? 도대체 얼마나 완벽하게 하고 싶은 것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완벽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은 유전이었나 보다. 나 또한 철저한 준비를 해야 모든 걸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비단 공부뿐만 아니었다. 기자라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던 당시에 모든 게 생소했다. 보도자료 쓰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쯤 국장님께선 유튜브를 시작한다고 하셨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 거리를 주제로 영상을 찍자고 하셨다. 좋은 방법인 것 같아 흔쾌히 찬성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영상을 내가 맡으라는 것이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에 많은 불편함을 느끼던 나였기에 차마 해보자는 말이 안 나왔다. 이런저런 계획을 짜는 국장님을 보며 나 또한 하기 싫은 마음과 해보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유튜브를 볼 줄만 알았지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몰랐기에 유튜브 채널 만드는 방법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촬영은 국장님이 하기로 하고, 그 외 업무는 나에게 주어졌다.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해야 할지 리스트를 적기 시작했다.
편집 방법을 먼저 배우기로 했다. 온갖 영상들을 찾아 비교 분석하며 제일 잘 가르쳐주는 채널 두 곳을 골라 편집을 배웠다. 그리고 소재를 찾기 시작했다. 좋은 글, 좋은 이야기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좋은 글이 넘쳐나지만 감동을 주는 것, 이야기거리로 만들기 쉬운 것 등 나만의 기준을 정하고 글을 찾기 시작했다. 조금 과장해서 수천 개의 페이지는 뒤진 것 같다.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 카메라를 보고 말을 해야 한다. 사람 앞이 아니라 조금 쉬울 것 같았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심장 소리가 사무실을 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떨렸다. 로봇의 말투가 쏟아졌다. 자연스럽게 하고 싶었다. 잘하고 싶었다. 실수하지 않고 완벽하게 하고 싶었다. 공중파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뉴스를 보지도 않던 내가 그날부터는 뉴스만 보게 되었다. 식당에 가도 버스를 타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뉴스 소리에 시선을 집중했다. 아나운서들의 말투, 손짓, 몸짓, 표정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전직 아나운서들이 알려주는 스피치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두어 달 동안 듣고 따라하고 반복하며 연습했다.
5개월 정도가 지났을까. 프리미어프로로 아주 기본적인 편집 정도는 가능했다. 유튜브 채널도 만들었다. 발음도 예전보다 좋아졌다. 이제 찾아놓은 유익한 글 들 중 몇 개를 골라 앞뒤로 나의 멘트를 작성하고, 중간에는 좋은 글을 넣었다. 자연스럽게 말이 되도록 글을 작성했다. 그 글을 수십, 수백 번 읽으며 손짓, 몸짓을 곁들어 연습했다. 카메라를 보고, 국장님을 앞에 놓고도 연습 다. 처음에는 터지기 일보직전 심장때문에 말도 못했지만 연습에 연습을 하며, 만족스럽게 첫 영상을 찍었다.
첫 영상 한 편을 찍기 위해 6개월을 공들였다. 100%는 아니어도 내가 만족할 만큼,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연습하며 완성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공들이지 않고 대충적 생산주의로조금 더 빨리 시작했더라면 더 많은 영상을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 더 완벽하게를 외치느라 진을 뺐다. 완벽하고 싶은 마음은 무엇을 시작하더라고 그렇게 시간이 걸려야 했다. 준비를 하다가 지쳐서 그만두는 일도 허다했고, 준비하는 시간에 다른 것을 시작하느라 돌고 돌아 시작하기도 했다.
삐뚤어진 블록을 보며 화가나 부숴버리는 아이를 생각하며 이제야 알았다. 나에게서 유전된 완벽주의가 이 아이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괜찮아도 아이가 생각하는 기준에 맞지 않으면 화가 났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첫 영상이니 조금 어설퍼도 괜찮아, 처음이니까 못해도 괜찮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처음 유튜브를 했을 때 이런 마음으로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아이에게 해 준 말처럼 나에게도 조금 삐뚤빼뚤해도 괜찮다고 말해줬더라면 어땠을까? 덜 겁먹고 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빨래를 널 때면 옷걸이 간격을 딱 맞춰 정렬하는 날 마주한다. 어쩔 땐 ‘참 가지가지한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이를 다독였던 그 마음으로 이젠 나를 다독여주고 싶다.
“조금 삐뚤어져도 괜찮아. 간격이 안 맞아도 빨래는 잘 말라.”
한껏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친절하게 말할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