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질질 끌고 가는 것들
우리의 일본 유학 생활 이야기를 듣는 누군가는 ‘지지리도 궁상이다.’라고 생각 할지도 모른다. 남편과 나는 결혼 자금을 최대한 아껴 유학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데 보탰다. 우리는 결혼식을 올린 후 일본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그때 우리에게는 뚜렷한 지향점이 있었기 때문에 궁상맞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젊으니까, 이때 아니면 언제 우리가 이런 것을 경험해 보겠냐는 생각이었다. 만약 유학 후의 진로가 뜻대로 잘 풀리지 않더라도 ‘뭐, 적어도 절약하는 삶의 태도는 배워오겠지.’라는 무한 긍정의 마인드로 똘똘 뭉쳐있었다. 남편과 나는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고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때 그 시절이 내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시간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어쩌다 보니 쎄뚜쎄뚜 – 바닥 3중 스테인리스 냄비
공주 알밤을 삶다가 태워버린 냄비를 식초와 베이킹소다로 박박 씻으며 이 냄비를 들인 어느 반짝반짝 빛나던 여름날이 떠올랐다. 회생 불가능할 것 같던 이 냄비를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일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후 동네 상점가 잡화점에서 이 냄비를 발견했다. 최대한 절약하며 살던 시절이라 대부분의 식기들은 100엔 숍(다이소)에서 사들인 싸구려들이었다. 그러던 중에 조금 큰 냄비가 필요해 주방용품점에 들렀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가게에서 제일 싼 냄비를 골랐다. 그래도 다이소에 비하면 엄청난 사치를 한 것이었다. 까만 손잡이가 달린 바닥 3중 스테인리스 냄비. 사실, 그때는 바닥 3중이니 스테인리스니 하는 것은 아무것도 몰랐다. 당연히 스테인리스 제품은 연마제 때문에 첫 세척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조차 몰랐다. 아주 만족스러운 쇼핑을 했다며 가지고 와 제일 열심히 부려먹었다.
맛있는 파스타가 많은 일본에서 살게 되니까 집에서도 파스타를 자주 해 먹었다. 그러다 보니 파스타면을 삶기 편한 파스타 용 냄비를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과 다른 동네에 볼일 보러 갔다가 그 동네의 주방용품점에 들러 파스타 냄비를 구입했다. 거기서도 우린 여지없이 제일 저렴한 파스타용 냄비를 골라왔다. 이제 이 냄비가 있으니 우리가 좋아하는 일본식 간장 소스 파스타를 실컷 해 먹자며 룰루랄라 가지고 왔다. 집에 와서 보니 전에 사놓았던 그 까만 손잡이 스테인리스 바닥 3중 냄비와 똑같은 모양이었다. 알고 보니 같은 라인이다. 어쩌다 보니 세트 냄비를 갖게 됐다. 갔던 가게에서 제일 싼 것만 골라왔더니 아이러니하게도 스테인리스 냄비 세트를 갖추게 되었다. 비싼 돈 들여 세트를 갖추지 않아도 이렇게 짝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니 웃음이 났다. ‘넌 다 계획이 있구나.’
이제 이 냄비들은 허드레 용으로 전락해버렸다. 지금 나는 바닥 3중 스테인리스보다 더 고급인 통 3중 스테인리스 냄비 세트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어찌 바닥이 새까맣게 타버린 옛날 냄비를 버릴 수 있겠는가. 비록 삐까뻔쩍한 냄비 세트는 아니지만 빛나던 신혼 시절 소박한 양식들을 책임져 주던 일꾼을.
잘 지워지지 않는 탄 자국을 다시 한번 식초와 베이킹소다를 들이붓고 끓여도 보고 박박 문질러 보기도 했다. 반짝반짝 빛나던 내 청춘의 시절을 돌리고 싶은 마음인가. 나는 이 냄비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성공의 상징 -해리포터 버터 비어잔
수저를 씻으면 탈탈 털어 ‘해리포터 버터 비어잔’에 꽂아 놓는다. 우리 집 수저통으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커다란 플라스틱 컵이다. 이 컵에 수저를 씻어 꽂아 놓을 때 한 번씩 문득 나의 소박했던 성공 기준이 떠올라 빙긋이 웃음이 난다.
이 컵은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해리포터 존에서 구입했다. 버터 비어를 맛본 것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비싼 컵을 사 가지고 왔다. 해리포터 팬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굿즈다.
일본에서 디즈니랜드에 갈 일이 몇 번인가 있었다. 해마다 친구들이나 친지들이 찾아오면 으레 디즈니랜드나 디즈니 씨에 갔다. 그곳에서는 넉넉지 못한 유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디즈니 안의 잘 갖춰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 추로스나 팝콘 정도의 간식으로 허기를 때우며 하루 종일 놀다가 마지막 퍼레이드와 불꽃까지 다 본 후에 늦은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싼 가격인 만큼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 가족들이나 연인들을 보면서 ‘나중에 디즈니에서 저렇게 지붕이 있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땐 나는 정말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라는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래곤 했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홍콩 디즈니랜드로 가족 여행을 갔다. 드디어 그곳에서 제대로 된 ‘지붕이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때 그 기분을 잊지 못한다. 아마 남편은 내가 그렇게까지 지붕이 있는 레스토랑에 대한 집착이 있는지는 몰랐을 것이다. 밥을 먹는 내내 “난 정말 성공한 것 같아. 진짜 꿈만 같아. 내가 디즈니랜드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게 되다니.”라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딸과 남편은 입맛에 안 맞는다며 투덜거렸지만 비싼 밥을 먹으면서 그런 투정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너무나 성공한 모습인 것 같아서 그조차 흐뭇했다. 그 순간들을 맘껏 즐겼다. 나는 그날부터 이미 성공한 삶이었다. 아주 소박한 성공의 삶.
또 한 몇 년이 지난 후, 해리포터를 너무 좋아하는 딸아이 때문에 오사카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찾게 되었다. 거기서는 뭐 시시때때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사고 싶은 굿즈가 있으면 별로 고민하지 않고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사 온 해리포터의 버터비어 잔을 수저통으로 쓰고 있다. 이보다 더 성공한 삶이 있을까. 수저통을 볼 때마다 되뇐다. 나는 성공한 사람. 더 이상의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이미 충분하다.
-내 인생 첫 사치품 – 빌레로이앤보흐 디자인 나이프 접시
내가 가장 아끼는 접시인 빌레로이앤보흐의 디자인 나이프 접시를 씻을 때는 유난히 조심한다. 절대로 박박 문지르지 않는다. 동그란 접시 안에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들이 혹시나 벗겨질까, 아기 다루듯이 씻어낸다.
그 당시, 나에게 여윳돈이 이 접시를 딱 한 장 살 만큼 생긴 때가 있었다. 그 돈으로 다른 것들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이 디자인 나이프 접시를 꼭 사고 싶었다. 늘 다이소 접시들을 써 왔지만 이 고급 브랜드의 접시가 갖고 싶었다. 세트로 사들이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돈이 생길 때마다 한 장 한 장 사 모아서 세트로 만들어줘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생각을 했다면 실행에 옮겨야지. 바로 지유가오카에 있는 빌레로이앤보흐(이하 ‘빌보’) 매장으로 갔다. 어찌나 으리으리하던지 남편과 나는 들어갈까 말까 몇 번을 망설였다. 꾀죄죄한 외국인 커플이 들어와 이것저것 둘러보는 것을 보며 점원들은 긴장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주눅 들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당당하게 행동했다.
한참을 고르고 골라 시골의 풍경 속에 결혼식을 하는 장면이 그려진 접시 한 장을 골랐다. 이 접시를 달라고 하고 값을 지불했다. 일본 특유의 극진한 포장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너무너무 기뻤지만 없어 보이면 안 되기 때문에 태연한 척 허세를 부렸다. 그렇게 내 손에 들어온 첫 빌보.
귀국한 한참 지나자 각종 그릇 카페들에서 빌보 디자인 나이프의 열품이 불기 시작했다. 심지어 홈쇼핑에서 세트 판매도 했다. 어마어마한 가격이었지만 모두들 세트를 사나 보다 했다. 그렇지만 나는 조금도 부럽지 않았다. 내게는 절대 사치품인 접시 한 장이 있었으니.
그 후로 여러 기회가 닿아 같은 라인의 머그컵 세트를 샀다. 게다가 내가 그 브랜드를 좋아해서 접시를 한 장만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 친구에게 나머지 접시들을 선물 받아 세상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 외에 몇 가지 아이템들을 더 구비했다. 접시 한 장으로 시작한 사치였는데 지금은 뭐 그럭저럭 세트 기분으로 갖추게 되었다. 접시를 한 장만 살 수 있었던 찬란했지만 빈곤의 시간을 지나고 있던 내게도 이런 날이 온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다.
무슨 일이든 원하는 게 있다면 한발 내딛고 볼 일이다. 그게 물건이든, 운동이든, 공부든, 일이든. 시작한 것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애쓰지 않아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간다. 내가 그때 당장의 생활비에 전전긍긍해 꼭 필요하지 않은 접시 한 장에 돈을 쓰지 않았다면 그 돈은 별 흔적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았고 외면하지 않았고 실행에 옮겼기에 지금 그 시절을 반짝거리던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힘들고 고된 일들도 많았지만 접시 한 장이 내게 위로를 건넸다.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모월모일』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카페에서 ‘로망스’를 들을 때면 옛날에 기타를 배우고 싶다던 시인에게 아버지가 기타를 사주고 로망스를 연주해 보이던 그 시절로 질질 끌려가고야 만다는 이야기. 이 부분을 읽으며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껏 추억은 ‘불러온다’는 표현만을 써왔다. 그러나 사실은 어떤 물건을 보거나 상황이 생기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질질 끌려가 그곳에 놓이고야 만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지 않을까.
얼룩진 바닥 3중 스테인리스 냄비, 별 볼일 없는 플라스틱 해리포터 버터 비어잔, 손바닥만 한 빌레로이앤보흐 디자인 나이프 접시가 나를 찬란했던 빈곤의 시절로 질질 끌고 간다. 그러면 나는 사정없이 끌려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어느새 도쿄의 어딘가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