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어깨며 무릎이며 관절이 너무 안 좋으시다. 이제 연세가 있으시니 몸의 각 부분들이 말썽을 부린다. 기계라면 기름칠이라도 할 텐데. 안타깝다. 몇 년 전 어머님이 어깨 수술을 하시며 내게 당부하셨다. 젊을 때 몸 아껴 쓰라고.
그 시절 어머니들은 집안일에 너무나 몸을 혹사시켰다. 마룻바닥은 무릎 꿇고 앉아 나뭇결대로 걸레질하고 추운 초겨울 날씨에 마당에서 바람을 그대로 맞아가며 몇 백 포기씩 김장을 하고 때가 되면 큰 장독에 장 담그고 남편과 많은 자식들 도시락 수발에 시부모 봉양까지 하며 살았으니 관절이 남아나지 않았겠다 싶다.
그렇게 힘들던 시절이 다 지나고 요즘처럼 살림이 편해진 때도 없다고들 한다. 식기세척기가 설거지하고 각종 조리 기계들이 부엌에 서 있을 시간을 줄여준다. 거실은 로봇 물청소기가 돌아다니고 김치는 필요하면 사시사철 언제든 구해 먹을 수 있다. 자식은 하나 아니면 둘인 집이 많고 어린이집부터 고등학교까지 급식을 먹으니 일 년에 한두 번 소풍 가는 날 도시락 싸는 것도 신경 쓰인다.
이렇게 몸이 편해지려면 얼마든지 편할 수 있는 시대에 나는 왜 그 무거운 무쇠 솥과 무쇠 팬들을 사들였을까. 설거지할 때마다 손목이 시큰거린다. 무거운 무쇠 덩어리를 들었다 놨다 하며 씻는 것은 ‘내 손목을 줄 테니 맛있는 음식을 다오’와 같은 주술적인 의식과 같다.
시작은 르크루제였다. 그것이 나를 무쇠의 세계로 이끌었다. 처음 백화점에서 본 르크루제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예쁜 색색깔의 냄비가 있지? 호기심에 들어봤더니 어이쿠야, 내게는 그냥 비싼 무쇠 덩어리였다.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알고 지내다가 일본에서 르크루제를 사 모으는 주부를 보고 막연히 좋은 건가 보다라고만 생각했다.
한국에 들어와서 이제 진짜 내 살림을 장만하기 시작하니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쇠로 음식을 하면 깊은 맛이 나고 빨리 식지 않는다고 했다. 오랜 시간 동안 끓여내는 조리 방법이 많은 한국 음식에는 무쇠가 제격이라고 했다. 대형 아웃렛에 가도 비싼 르크루제를 들었다 놨다만 하다가 라벤더 색깔 그릴 팬을 들고 왔다. ‘이제 우리도 집에서 고급 레스토랑처럼 고기에 선명한 선이 그어져 있는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거야.’
사람의 마음으로 너무 푸른 꿈을 꾸었나 보다. 매번 고기는 거기 굽고 가니시를 곁들여 식탁에 올릴 생각을 했지만 무쇠를 잘 다루지 못해 고기는 구울 때마다 들러붙고 설거지는 불편했다. 올록볼록한 요철마다 부드러운 수세미로 꼼꼼하게 닦아야 했고 바짝 잘 말리지 않으면 녹이 난다고 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몇 번 쓰다가 고이고이 수납장에 자리를 잡고는 잊힌 존재가 되었다.
그러다가 스타우브를 만났다. 스타우브는 존재 자체가 완벽한 내 취향이었다. 명도가 낮아 깊은 색감을 띤다. 어쩜 이렇게 고급스러울 수가. 깊고 어두운 색감 때문인지 미역국을 끓이면 더 잘 우러나올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실제로 무쇠 냄비에 미역국이나 김치찜을 하면 푹 고아져 정말 맛있게 완성된다. 스타우브의 매력에 푹 빠져 손목이 아픈 것도 참고 스타우브를 하나둘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16cm 꼬꼬떼(스타우브에서는 냄비를 꼬꼬떼라는 이름으로 판매한다) 바질색부터 시작해 그레이 베이비 웍, 블랙 더블핸들팬, 20cm 꼬꼬떼 석류색, 아시아볼 등.
흰쌀밥을 좋아하는 딸아이에게 급히 쌀밥을 해 줄 때는 작은 스타우브 냄비에다가 냄비밥을 한다. 뚜껑을 열면 뽀얀 쌀밥이 아주 맛깔스럽게 새초롬한 자태로 나를 보며 ‘오늘도 밥이 하나도 안 타고 맛있게 됐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무쇠의 매력에 빠져 있던 내게 동네 동생이 무쇠 프라이팬 이야기를 했다. 여기에 기름을 두르고 전을 구우면 가장자리가 바삭바삭해서 무척 맛있다는 것이다. 전을 좋아하는 나는 또 그 이야기에 혹해 무쇠 팬을 들였다. 처음 왔을 때는 열심히 각종 전을 부쳐먹으며 ‘좋지? 좋지? 맛있지?’라며 끊임없이 가족들에게 내 무쇠 팬의 실용성에 대한 동의를 얻어내려고 했다. 이 무쇠 팬은 다른 무쇠 브랜드들과 달리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 조금만 소홀히 해도 금방 녹이 슬고 만다. 내가 주기적으로 기름칠하며 길들여야 하는 전통 방식의 무쇠는 어렵다. 지금은 한쪽 구석 프라이팬 정리대에 기름만 덕지덕지 묻힌 채 꽂혀있다.
‘젊어 게으른 년, 늙어 보약보다 낫다’라는 말을 내 인생의 좌우명처럼 여기고 살고 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란 나는 저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른다. 실제로 젊을 때 고생했던 사람들이 부는 이루었는지 모르겠지만 몸은 다 망가진 것을 많이 봤다. 무쇠 주방용품들은 이런 내 가치관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무거운 것을 들고 넣었다 뺐다 하거나 설거지를 하면서 무쇠의 무엇이 좋길래 내 손목과 어깨를 혹사시키고 있나, 생각할 때가 있다.
무쇠 냄비는 천천히 끓어올라 깊은 맛이 나는 미역국을 내게 준다. 젓가락으로 푹 찌르기만 해도 김치가 쭉쭉 찢어지고 고기가 부들부들 잘리는 김치찜을 준다. 허기진 딸아이의 피와 살이 될 하얀 쌀밥을 빨리 준다. 보들보들 잘 부풀어 오른 달걀찜을 준다. 골고루 잘 익었지만 가장자리는 특히 바삭바삭해져 딸아이가 너무 좋아하는 김치전을 준다. 내 손목이 아파도, 비록 ‘젊어 게으른 년’에 어긋난 삶이더라도 무쇠는 내게 많은 것을 준다. 내가 손목과 어깨를 힘들게 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라는 결론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