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엄마의 부엌이 아닌 나만의 주방을 가지게 된 것이 내년 3월이면 19년째다. 결혼하며 독립한 것이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20주년 기념으로 책을 내는 것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19년 차에 쓰게 됐을까. 19는 20보다 꽉 채워지지 않은 느낌. 여전히 허술한 내 살림살이에 대한 핑계를 댈 수 있는 마지노선 같은 이 느낌이 좋다. 결혼 생활 거의 20년은 충분히 무르익어 내공이 엄청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주부 생활 20년이면 엄마처럼 온갖 것들을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여전히 나는 김치도 담글 줄 모르고 갈비찜 한번 내 손으로 해 본 적이 없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각종 잔치 음식들을 할 수 있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것들도 관심과 노력 없이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요리의 레시피나 살림 비법 같은 것을 기대하고 이 책을 펴는 분이 있다면 ‘당장 책을 덮으세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건 하나도 없다. 그저 지극히 평범한 아줌마가 집 안의 섬 같은 주방을 표류하며 겪은 개인적인 단상들을 모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며 나는 나를 조금 더 깊이 알게 되었다. 나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찾고 그것들의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는 시간들이었다. 늘 ‘나도 이제 작은 후원이라도 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막상 그런 광고를 보면 사기일 것 같아서, 혹은 지금은 알아보기 귀찮아서 다음에 해야지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채널을 돌리곤 했다. 한참 너무 많은 식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나서 우연히 월드비전 후원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 순간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몰랐는데 나는 가진 게 참 많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던 후원 신청을 그 자리에서 바로 했다.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미뤄버렸을 것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나를 바로 알려고 노력했고 그것에 진심을 담았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쓰다듬어 주었다.
설거지가 싫고 살림이 체질에 맞지 않아 미뤄두고 쌓아두던 일상을 이야기하려니 많이 부끄러웠다. 이런 글도 책으로 낼 수 있나? 설거지가 싫다고 징징대는 글로만 보일까 봐 고민도 많이 했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히 나 같은 사람도 있어서 공감해 줄 거라 믿었다. 영화 ‘작은 아씨들’중 가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누가 관심을 두겠냐는 조의 질문에 자매들은 이런 말을 했다. ‘그런 글을 안 쓰니까 하찮게 보이는 거지. 자꾸 써야 중요해지는 거야.’ 내가 자꾸 쓰다 보면 주방 일기 장르가 생길지 누가 아는가.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