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도영 / 출판: 위즈덤하우스 / 발매: 2021년 7월 7일
좋은 책을 읽다 보면 그 책에 나온 행위나 방법을 똑같이 따라하고 싶어지는 경우가 많다. 운동하기 싫을 땐 운동 관련 책, 감성이 메말라서 입술 갈라지는 듯 아픈 게 일상이라면 사랑으로 가득한 글들, 심지어 책이 읽기 싫을 때에는 책을 읽는 주제의 책을 읽으면 해소가 된다. 기획자의 독서를 읽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책을 찍고 글을 필사해보게 되는 것만 봐도 이 책이 좋은 책, 그러니까 조금 막혀있던 나의 생각들을 뚫어주었다는 증거였다. 그러니까 나름 열심히 살려고 혼자 끙끙대는 게 습관인 사람한테는 강압적인 누군가의 추천이나 활력이 도움이 된다는 얘기.
김도영의 <기획자의 독서> 는 회사 독서 모임에서 추천 받아 읽게 된 책이었다. 세 명이 책을 돌려보는 것을 컨셉으로 하고 있는데(말이 컨셉이지 수다 모임이다), 하다 보니 나를 제외한 두 명에게 모두 책을 빌려주는 형식이 되어, 일주일에 4권은 읽어야 수지가 맞는...정말이지 가혹한 글 읽기를 하는 중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주는 책 한 권이 주는 힘을 알고 있어서, 그들에게도 도움 되는 책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 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책이다. 그렇게 이 책도 만났다.
저자는 독서를 하나 할 때도 기획자라는 마음가짐으로 하는가보다. 말이 쉽지 그 긴장감을 가지고 사는 건 좀피곤하지 않을까. 늘 집돌이를 꿈꾸고 빠르게 움직이는 이유는 얼른 게으르기 위함인 나 같은 사람에게 늘 기획자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한 때 DSLR을 사용해보겠다고 난리친 적이 있었다. 당시 카메라 쪽 일을 하기도 했고 사진을 찍는 건 나의 데스티니가 아닐까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근데 카메라라는게 바디도 비싼데 사실 렌즈가 더 비싼 제품이라는 걸 그 때는 몰랐다. 결국 나는 렌즈 2개, 바디 1개를 사고 몇 번 찍지도 못한 채 그래도 서랍에 놓여있는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가끔 가져나가서 찍어보고 싶다지만 아마도 나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싶은지' 정의가 세워지지 않아 렌즈를 고를 수 없이 못 찍고 있는 것 같다. 기획일을 하건 관리일을 하건 커뮤니케이션 일을 하건간에 나의 바디는 있어도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 시선은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니 기획자라는 시선을 가진 그가 부럽고, 대단해보였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책을 읽는 종반에 이르러서야 이 책이 '기획자'라는 기획 아래에서 독서를 바라봤다는 걸 알았다. 좋아했던 단어는 '독서'였는데, 그의 '기획자'라는 렌즈가 부러워진 것이다. 책의 끝에서 저자는(의도했든 아니든) 나는 어떤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묻고 있었다. 역시 카메라는 바디보다는 렌즈가 어려운 것이지.
자신의 직업을 '기획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는 건 어떤 걸까? 자신의 글이나 결과물을 기획자라는 시선에 담는 건 어떤 걸까. 아니 그렇게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유려한 글과 사상과 얘기들이 나온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나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그 동안에도 어떻게 나를 바라봐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도, 여전히 하나의 직업군이나 카테고리에 나를 묶을 용기가 없다. 겸손이란 자기를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덜 하는 것 이랬는데, 아직도 나를 이렇게나 많이 생각하는걸 보면 겸손은 좀 멀리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최근에는 나만의 방식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 감상을 돌리기 시작했다. '기획자' '에디터' '직장인' 같은 포괄적인 단어에 포함되기엔 여전히 부끄러워서 그냥 아주 개인적인 것들을 꺼내보고 있다. 개인적인 만큼 공감 받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조금 관종인 것이겠지. 그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들을 다 뱉어내고 나면, 나한테 메여 있던 마음이 그렇게 좀 풀리고 나면 그 만큼의 빈 공간이 되어, 낯선 것들이 좀 채워졌으면 한다. 그 때는 나도 '기획자' 와 같은 어떤 카테고리에 좀 묶일 수 있을까.
나이를 먹어도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독서'를 좋아하는 것 같아도 누군가의 독서에 기가 죽기도 하고 '사랑'을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안주하고 편안한 걸 사랑한다. '컨텐츠'에 푹 빠진다 하더라도 익숙한 것들이라서 또 금방 질리고... 그래도 늘 무언가를 좋아했다는 건 변함이 없는데 말이다. 그냥 스스로는 이름은 모르지만 좋아할 수는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한 때 [몰입]이라는 단어를 다이어리나 책상에 계속 붙여 놨던 시절이 있다. '기획자'가 독서하는 것처럼 나도 하루 종일 '무언가'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핑계들이 몰입을 치운 것인지, 몰입과는 맞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놓고는 또 이 책을 읽고는 다이어리를 끄적이고 어딘가 쓴 글들을 다시 보고 폴더를 관리해보는 나를 보면서 참 욕심도 많다는 생각을 한다.
'난 요새 욕심이 없어' '즐거운 일이 없어' 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기획자'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독서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