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춥습니다. 얼마 전 승진을 하신 형님이 제게는 참 대단해보입니다. 그룹의 장이라는 직책이 결국은 해야 할 일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기에 계속되는 야근으로 힘들어 하신다는 형님이 참 대단합니다. 저한테는 형님이 본래 없었죠. 네 형님은 제가 결혼하면서야 갖게된 호칭입니다.
어릴 때부터 형이나 누나라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이 있었습니다. 내게 없는 것을 탐하는 것은 쓸데 없는 일이지만, 그로 인해서 상상력이 커지기도 했죠. 제 친구는 늘 형에게 맞아 분노를 했지만, 또 다른 친구들은 누나나 형과 꽤 잘 지내는 집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저 역시 좀 맞았을 확률이 높지만, 그래도 제 상상속의 형님은 절 나무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막상 생긴 형님은 다행히도 절 나무라지 않는 형님입니다. 늘 감사히 생각합니다.
형님은 저와 똑같은 터울의 여동생이 있지요. 지금은 제 부인이고요. 처음에는 저를 탐탁지 않았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듣고 매우 공감했습니다. '결혼하기 전이니까 무조건 반대지.' 라는 말. 그렇게 말씀처럼이나 형님은 결혼 후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해주고 계십니다. 늘 싸우고 별것도 아닌 걸로 트러블을 만들어가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어제는 형님이 딸기를 사주셨습니다. 부인이 딸기 좀 사주지 않는다는 제 불평거림에, 그걸 또 반박하는 부인이 저에게 하는 잔소리가 듣기 싫으셨을지, 아니면 그거 딸기 얼마한다고 너가 그냥 사먹지 내 동생을 괴롭히냐고, 아니면 딸기 이럴 때 내가 사준다 라는 마음이셨는지, 어떤 쪽에 가까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딸기값이 비싸다는 핑계와 동시에 제 눈에는 딸기 세 팩이 있었지요. 형님은 그렇게 제가 더 불평하지 못하게 막으셨습니다. 형님이라는 호칭은 있는데 그래도 오빠라는 호칭보다는 한참은 약하다는 걸 깨닫게 한 딸기 세 팩이었답니다.
그거 아세요? 어제 같이 마트에서 딸기를 사오는 길에 저도 모르게 이래저래 핑계를 댔다는 것을요. 부인이 뭐 어쩌고 하다가, 제가 뭐 어쩌고 하다가 딸기 가지고 제가 그렇게 너무 뭐라 한 것이 아니라 했는지, 아니면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했는지, 뭐 그런 소리를 했습니다. 저는 형님 소리를 얻었으니 되었습니다. 그 편안함까지 누리는 건 사치인지라, 이런 약간의 불편함, 스스로 해명을 하려 하는 제 모습도 그리 싫지 않습니다. 덕분에 아내는 저의 딸기 소리로부터 해방될 수도 있었네요. 담엔 형님 말씀처럼 그냥 제가 사보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장을 보는 건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남편이라는 존재는 잔소리와 허락 등에 꽤나 민감한 것 같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여튼 딸기는 맛있게 먹고 다음 불평 또 가져가겠습니다. 형님.
다시 한 번 승진도 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