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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엄마

by 나도모

독감에 걸렸다. 감기는 내 몸에 있는 바이러스가 면연력이 낮아진틈에 치고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지만 독감은 거의 대부분 전염이라고 한다. 내 경우는 송년회였다. 작년 하반기 내내 아이에게 감기를 옮기고 싶지 않아 나름 조심해왔는데 연말의 술 자리에서 그걸 잠시 놓아버리는 바람에 걸려버렸다. 아이에게는 아직 옮기지 않고 있는데 그래도 혹시 몰라 독감 증세가 완화된 지금도 집에서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다.


새해라고 엄마에게 연락을 드렸다. 마스크 쓴 내 모습에 걱정하실까 싶어 마음이 쓰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말고 함께 영상통화를 하려 했던 것인데 엄마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목감기가 된통 걸려버린 것이다. 나는 송년회를 탓하지만 엄마는 자식을 탓해야겠지. 우리를 키우면서 고생한 엄마의 체력을 모르지 않다. 면연력이 낮아져 감기가 걸려도 오래가는 것 같다. 나는 아이에게 옮기지 않으려고 마스크를 썼지만 엄마는 손주 얼굴 조차 보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하셨다. 내 마스크 쓴 모습은 보여드리지도 못했다.


엄마는 필시 송년회가 아니었을 것이다. 걷기 운동도 매일 하신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그냥 면연력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날이 춥고 건조해졌다는 것이다. 평소 목 관리를 하기 좋은 환경도 아니었다는 얘기였다. 최근 내가 좀 힘들고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전화도 잘 안드렸다. 전화 저 편에서 들리는 엄마의 갈라진 목소리가 문득 문득 생각이 났다. 면연력이 약해지셨구나. 나이 한 살의 무게가 더 무거워졌다.


독감이든, 목감기든 사람이 아프면 고생을 한다. 고생을 한 후에 드는 것은 성숙이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부모가 되어 드는 생각은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는가, 그리고 나는 엄마만큼 아이에게 헌신적일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엄마에게 갚아야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내 아이에게 잘해야겠다는 마음이다. 울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됐어. 그렇지만 엄마도 좀 생각해주면 좋지.' 마음 깊이 있는 서운함을 그대로 드러내진 않으시지만 숨기시지도 않는 엄마가 얼마 전에서야 나는 좋아졌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아빠 생각을 많이 했다. 나이가 40을 보는 지금도 아빠는 아빠가 맞다. 아버지라고 하기엔 당신도 너무 젊었다. 좋은 아빠는 아니었는데 그래도 나한테만큼은 잘 하는 아빠가 되려 했다는 건 안다. 나만큼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그랬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나니, 엄마 생각을 많이 한다. 울기도 한다. 나이 먹고 뭐하나 싶으면서도 내 아이를 보면서 나는 평생 아버지일 게 뻔하니 엄마도 내게는 계속 엄마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까이 있을 때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을만큼 어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의 목감기가 어서 끝나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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