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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May 24. 2020

비혼 40대, 어떻게 살 것인가

40대가 되었음을 인식하다


유난히 나이를 타는 해가 있다. 매일 보는 거울인데 노화가 두드러져 보이고, 사소한 일에도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수시로 이게 다 나이 탓인가 싶은 생각이 올라오는 그런 때.


서른 살이 되었을 때는 즐거웠다. 본격적으로 내 의지로 무엇이든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번 돈으로 집을 꾸밀 수 있고, 언제든 친구들에게 선물을 할 수 있고, 시간 맞춰 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다. 수많은 욕구에 순서를 매겨 설계하고 하나씩 실행하면서 내 의지만 충분하다면 무엇이든 현실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 모드는 30대 내내 그럭저럭 유지되었다.


물리적으로 마흔이 되었다고 갑자기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나이를 타는 시기도, 이유도 저마다 다르다. 오랜 연인과의 이별,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이별,  일자리에 대한 불안함, 일시적인 목표 상실... 본질적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으며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바닥 깊은 곳에 아주 진득하게 자리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평범하던 일상이 흔들렸다.


이 모든 게 전부 나이 탓일까? 같은 질문을 수도 없이 던져 봤다. 모든 게 나이 탓은 아니겠으나 대부분의 변화가 나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나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언제나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대로 계속 살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재조직해야 한다. 내 몸 안에서 경합하는 수많은 생각과 가능/불가능성을 재구조화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지루한 작업이 될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시간이 쌓여야만 드러나는 것들.


이런 책들은 절대로 해법을 주지 않는다. 다만 노력을 위한 수많은 목록 가운데 하나를 제공해 줄 수는 있다. 읽었던 관련 서적 중에 이 책이 가장 도움이 많이 됐다.


발버둥


집을 옮기고 인테리어를 싹 다 바꿨다. 게으른 습관들을 하나씩 고쳐 나갔다. 귀찮아도 집안일은 미루지 않으려 노력했다. 친구들의 조언과 평가가 큰 도움이 되었다.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약도 처방받았다.(지금은 끊었다.) 숙면을 위해 침구를 모두 바꾸고 가습기를 놓고 조명을 설치하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놓았다.


생전 처음 피부과에 가서 정기권을 끊었다. 17개의 점을 빼고 밤마다 재생크림과 멜라논을 바르며 피부관리를 시작했다.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집에 턱걸이용 풀업바를 설치했다.


역시 처음으로 중년의 마음 수양과 관련된 여러 서적을 사 읽었다. <마흔에 관하여>(정여울), <인생의 재발견 : 마흔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바버라 브래들리 해거티) 같은 책이나 <산책하는 마음>(박지원) 같은 책을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책모임에도 나가보고 등산모임 호스트도 하고 수영장도 다니고(지금은 코로나로 중단 상태) 산책을 통해 부족한 운동량을 보충하고 어쩌다 자전거 여행도 갔다.


그리고 책을 냈다. <수학의 눈으로 보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라는 제목을 책을 냈고 어느 정도 팔린 덕분에 다음 책도 계약을 했다. 원고를 써야 한다는 압박이 읽고 쓰는 동력을 유지시켜 줬다.


하지면 여전히 답을 모르겠다.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도 안다. 코로나로 일은 더 위태로워졌고 일이 줄어든 만큼 하루는 더 길어졌다. 의식적으로 갈무리해줘야 하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 중년의 감각이 가장 선명할 때, 판데믹이라는 시절을 만났다.


유명한 문구처럼,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질 수 있다면 걱정이 없겠네.' 하지만 종일 비슷한 걱정을 반복한다. 어느 순간 이 모든 것들을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내일이 오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한 채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그 감각을 되찾을 수 있다면 특별히 세상에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자의식이 희미해져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행복, 마치 우주 한복판에서 조난당한 사람처럼 방향감각 없이 부유하고 있는 그 말.


비혼


https://news.v.daum.net/v/20200331112334666


자체적으로 면역력이 생길 때까지 특별한 폐쇄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며 가장 개방적인 대응방식을 선택했던 스웨덴. 이 방식을 두고 논란이 많았지만, 정작 관심이 가는 건 1인 가구가 50%가 넘는 통계수치였다. 그들은 어떻게 존엄을 잃지 않고 혼자 살아가고 있을까? 이를 위해 개인은, 사회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호기심은 비혼 40대라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나이를 타는 방식도 각자가 처한 구체적 맥락에 따라 다 다를 텐데, 내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비혼이라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고 서른 이후 한 번도 수정해본 적이 없는 원칙이었다. 지금은 대단한 비장함 같은 건 없다. 그냥 내가 선택한 것이고 어쨌든 여기까지 왔다. 어떤 이들은 결혼을 하고, 애를 키우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렇게 한 시절을 보낸다. 각자의 역할은 태생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고 스스로 선택해서 부여하는 것이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의미를 잃었을 때 무엇으로 그 시간들을 견뎌내며 스스로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갈 것인가? 이 글쓰기는 이 답답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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