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아냐?
나 : 몰라요
아빠 : 할아버지 생일이야. 모여서 제사는 못 지내지만 집에서라도 혼자 지내거라. 남쪽으로 소주 한 잔 놓고 절 두 번 하고.
나 : 아빠 근데 내 생일은 아세요?
아빠 : 너 X월 XX일 아니냐?
나 : 아닌데
아빠 :.....
나 :.....
아빠 : 근데 결혼 안 하냐? 아주 그냥 부모 속을 너무 썩이는 거 아니냐?
나 : 생활비 끊어요.
아빠 :.....
나 :......
아빠와의 통화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늘 아빠가 먼저 전화를 건다.
용건이 있는 건 언제나 아빠이기 때문에. 대화는 짧은 단답형.
일방적인 요청, 미끄러지는 대화. 마음 한켠 '끼익' 흠집 나는 소리.
동생은 나와 3살 차이다. 동생이 동네 친구에게 맞은 적이 있었다. 동생은 사과를 받고 싶어 했지만 방법을 몰랐고, 그래서 울었다. 나는 동생 손을 꼭 붙잡고 동생을 때린 아이 집으로 찾아가 벨을 눌렀다. "무슨 일이세요?" "XX가 내 동생을 때렸습니다. 사과받으려고 왔습니다."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나도 살짝 같이 울었다.
엄마는 중풍으로 쓰러진 지 20년도 더 됐다. 너무 이른 나이, 50대에 쓰러져 인생의 1/3을 침대에서 보냈다. 어떤 위로도 엄마에겐 먹히지 않았다. 엄마는 그저 끊임없이 자신의 고통을, 통증을 호소했다. 동생은 재수를 포기하고 엄마를 간호하기 시작했다. 동생 나이 스무 살에 시작된 간호는 마흔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동생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동생 옆에 서려고, 그저 간신히 노력한다.
아빠는 서울에 이사 오고 나서 육체가 허락할 때까지 인생 후반전 내내 막노동을 하셨다. 80년대 건설 경기가 한참일 때는 이란-이라크에도 4년간 나갔다가 오셨다. 배운 게 없었고, 밑천도 없었고, 그래서 고생을 많이 하셨고, 언제나 누구도 믿지 않았다. 아마도 아빠 인생을 지배한 건 8할이 피해의식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아빠를 위해, 기꺼이 아빠가 원하는 대로 살 마음이 없었다.
아빠가 마침 동네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할 때였다. 학교 마치고 친구들과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빠랑 마주쳤다. 아빠는 나를 보자마자 골목으로 숨었다. 나는 일부러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골목을 향해 아빠에게 큰소리로 아는 척을 했다. "아빠, 나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야." "어, 어, 어...." 담배를 피우다가 당황한 아빠.
누나는 우리 삼남매 중 유일하게 결혼했다. 조카는 우리 모두의 조카이자, 유일한 조카다. 마지막으로 조카가 가족에 합류해서 우리 가족은 아무튼, 6명이다.
가족이란 뭘까? 일생을 두고두고 고민했지만 답을 내리지 못했다. 원래부터 답이 없는 질문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답은 찾지 못할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혼인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가족이라고 나오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나에게 가족은 태도다. 어느 때는 구속이고, 어느 때는 부채감이고, 어느 때는 책임감이고, 어느 때는 연민이다.
우리 가족은 어느 정도 평범하고, 어느 정도 특별하다. 감정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때로는 아주 심하게 갈등할 때도 있었다. 지금은 오랜 시간이 누적되면서 각자의 포지션을 찾아 균형을 잘 이루고 있는 편이다. 나의 경우에는 나이가 들고, 돈을 벌게 되면서 가족과의 많은 갈등이 해결되었다. 특히 살면서 좀처럼 마음이 통한 적 없던 아빠, 늘 내 선택을 못마땅해하던 아빠. 그런 아빠가 마음을 연 것까지는 아니어도, 태도가 조금 누그러진 것은 대개 아빠들처럼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고 나서다.
나름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수십 년간 노력해왔던 가족들의 마음을 떠올리면, 가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다. 구구절절 설명할 순 없지만, 이 모든 노력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무조건 다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이 삶의 조건을 모두 선택할 순 없지만 분명히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도 있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두 가지는 확실하다. 하나는 좀 더 가볍게 살고 싶었다는 것. 또 하나는 평생 사랑하고 싶었다는 것. 사랑을 주고받기 위해 당연한 것은 없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섬세하게 돌봐야 한다. XX니까 당연히 이래야 하는 것은 없다. 누나나 동생을 좋아하는 건 그들이 누구보다 좋은 친구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그 골목길에서 일부러 큰소리로 아빠를 불렀던 것은 아빠의 삶이 조금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조건 가족이어서 그런 게 아니다.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비혼이면 연애도 관심 없는 거냐고. 아니오. 평생 연애하고 싶습니다.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행복하고 싶습니다. 어떤 이유 없이, 정말 사랑하고 싶어서 비혼입니다.